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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08. 2022

160921-06

이사 다음 날



지민 #2        



오늘도 하루 종일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해야 되는구나 싶어 왠지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평소보다 늦잠을 자서인지 소변도 마렵고 밖에서 풍겨오는 버터 바른 식빵 냄새를 맡으니 배도 고프다.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소변을 보고 휴지걸이를 보니 휴지가 안 걸려 있다. 아 어제 이사 왔지, 엄마가 아직 화장실에 휴지를 안 걸어놨구나.


“엄마~” 하고 불러본다.


방문이 닫혀있어서 안 들렸는지 아무 소리가 안 들린다. 좀 더 크게 불러본다. 그래도 아무 소리가 없다. 한 번 더 있는 힘껏 불러본다. 그제야 대답이 돌아온다.


“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엄마는 화가 나 있다. 엄마의 기분은 내가 엄마를 불렀을 때 돌아오는 대답에 따라 바로 알 수 있다. “응~지민아~”라고 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고, “왜!”라고 하면 기분이 나쁜 것이다.


“화장실에 휴지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키친타월 한 장을 뜯어 가지고 들어왔다. 아직 안방 화장실뿐 아니라 바깥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휴지를 꺼내놓지 못했나 보다.


“손 씻고 나와 아침 먹게.”


잘 잤어? 같은 안부인사 없이 바로 용건만 말하는 걸 보니 이번 메신저 역할은 하루 이틀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지난번 이사 때는 나의 갈색 가방을 찾다가 아빠와 엄마가 다퉜다. 이번에는 왜 때문이지? 아까 잠결에 밖에서 들린 소리를 떠올려보았다. 쓰레기가 다 나왔다고 한 것 같았다. 쓰레기.


그러고 보니 아빠와 엄마가 크게 다투는 때는 항상 이사할 때였고, 작게 다투는 때는 주로 쓰레기 때문인 것 같다. 큰 다툼인지 작은 다툼인지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기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가장 큰 다툼은 지난번 이사한 이후였다. 그때 거의 일주일 정도를 메신저로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짧게는 반나절에서 하루 이틀 정도의 메신저 역할도 종종 있어왔다.


열대야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던 작년 여름, 저녁을 먹고 해가 졌는데도 집이 더웠다. 아빠가 집 앞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신이 났다. 엄마는 복숭아를 좀 잘라서 가지고 나갈 테니 먼저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놀이터에 있으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에 복숭아에 놀이터까지 나는 너무 신이 났다. 킥보드를 챙겨 나가려는 나와 아빠를 엄마가 불렀다.


“나 이따 음식물 쓰레기 버려야 하니까 지금 나가는 길에 분리수거 좀 해줘.”

“그럼 그 통 다시 집에 갖다 놓고 마트 가야 하잖아.”

“난 근데 이따가 음식물 쓰레기 들고 복숭아 통 들어야 해서 손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분리수거는 낼 아침에 해.”

“아니면 분리수거 통 들고 마트 가도 되고.”


결국 아빠는 아빠대로 저녁 먹고 아이스크림을 제안했다가 생각지 않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그 통을 들고 마트를 가야 해서 기분이 상한 것 같았고, 엄마는 엄마대로 가끔 부탁하는 분리수거를 흔쾌히 해주지 않는 아빠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결국 아빠는 분리수거를 한 후 통을 집에 다시 갖다놓지도 통을 들고 마트를 가지도 않았다. 대신 그 통을 분리수거장 한 구석에 놓고 나와 마트로 갔다.


조금 있다 엄마가 복숭아를 들고 놀이터로 왔다. 바람이 불어 그래도 집보다는 시원한 놀이터에서 아이스크림과 복숭아를 먹고 기분 좋게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을 열기 전에 엄마가 분리수거 통을 찾았다. 아빠가 놓아두었던 곳으로 가보았으나 그 사이에 누가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그걸 거기다 두면 어떡해. 산 지 얼마 안 된 건대.”

“그걸 들고 마트를 어떻게 가? 새로 하나 사. 얼마나 한다고.”

“2만 원 넘어서 고민하다가 큰맘 먹고 산거란 말이야.”

“그냥 싼 걸로 다시 사. 만원 안 되는 것도 많잖아.”

“싼 건 사면 금방 또 망가지니까 그렇지.”


“그래서 분리수거 낼 아침에 하자고 했잖아.”


그때 엄마의 어이없어하는 표정과 아빠의 짜증 내는 표정을 보았고, 이틀 정도 메신저 역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이사와 쓰레기가 겹쳤다. 왠지 가장 큰 싸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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