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히어 Dec 09. 2022

160921-07

이사 다음 날


주연 #3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면 석현의 기분이 나아져있겠지 기대하며 식빵을 굽고 과일을 씻으며 오늘 정리할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지민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게도 남편에게 기분이 상하면 덩달아 지민이까지 미워질 때가 있다.     

 

평상시에는 너무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남편과 냉전 중일 때는 유독 얄미운 딸이다. 남들은 딸이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 나이 들어서까지 엄마와 딸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평생 함께 늙어갈 수 있다고들 하지만 내가 보는 지민은 철저히 나와 남편 사이에서 중립의 입장을 고수한다. 딸이라고 해서 엄마 편을 들어주는 아이가 아니다. 아직 남편에게 화가 안 풀렸을 때도 지민의 냉철한 중간자 역할을 보는 게 서운해 남편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주방에서 혼자 분주한대 부르는 지민의 소리가 달갑지 않다. 화장실에서 부르는 이유는 한 가지일 것 같아 급한 대로 키친타월을 한 장 뜯어 주고 온다. 그러는 사이 남편이 들어왔다. 담배냄새를 확 풍기면서.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안 피울 수 없어?’ 아니면 ‘화장실 가서 씻고 나와.’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면 분명 싸움이 될 것만 같아 다시 삼킨다.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무얼까 생각해본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데가 어디야?”

“모르겠는데?”

“쓰레기 버리고 온 거 아니었어?”

“아니.”     


아니 대체 버리라고 말을 해야 버리는 건가? 아침에 내가 일어나서 분리해놨으면 담배 피우러 나가는 길에 알아서 좀 버려주면 안 되나? 그때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지민에게 남편이 뽀뽀를 한다. 담배 피우고 씻지도 않았으면서 지민을 안고 뽀뽀를 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인터폰 소리 때문에 단잠을 깬 이후로 불만은 자꾸 쌓여만 간다. 직접 얘기하면 분명히 인상을 쓰거나 말끝이 날카로워질 것 같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말한다.      


“지민아 아빠 보고 아침 먹게 손 씻으라고 해.”

“아빠~ 엄마가 손 씻으래.”     


남편은 분명히 들었으면서 화장실로 가지 않고 티비를 켠다. 프라이팬에 있던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옮겨 담으며 한 번 더 얘기한다.      


“지민아~아침 먹게 이리 와. 아빠한테 티비 끄라고 하고.”

“아빠~티비 꺼~아침 먹게.”

“잠깐만. 티비 잘 나오나 좀 보고.”   

 

저걸 꼭 지금 해야 하는 일인가 싶다. 식빵은 식어가고 사과의 색깔도 조금씩 변해가고 얼린 바나나와 우유를 갈아 만든 주스는 바나나와 우유가 분리되어 가고 있다. 참는 데도 기다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싶다.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놓고 현관을 열고 나와 버렸다. 아까 봉해놓은 그대로 잘 서있는 봉투들을 보니 더욱 화가 났다. 순간 저 봉투들을 다 발로 밟아 뭉개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지만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매거진의 이전글 160921-0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