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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11. 2022

160921-08

이사 다음 날


석현 #3     


집에 들어오기 전에 옆집을 한번 슬쩍 본다. 앞으로 최대한 옆집 여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지민은 아직 자는 건지 안 보이고 주연만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꼿꼿하게 세운 등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주연은 주연대로 화가 나 있지만 참고 있다는 것을.


아침을 먹고 나서 쓰레기도 버리고 어제 다 못한 정리도 해야겠다 생각하며 거실로 가는데 주연이 묻는다. 쓰레기 버리는 데가 어디냐고. 그 말이 마치 왜 쓰레기를 안 버리고 왔냐고 따지는 것처럼 들린다.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누군가 아직도 그걸 왜 안했냐고 하면 기분이 확 상해 아예 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학창 시절 만화책 한 권만 더 보고 숙제를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공부 안 한다고 잔소리를 할 때, 군대에서 바닥을 먼저 쓸고 대걸레질을 하려고 했는데 시간 없는데 대걸레 질부터 하라고 선임이 호통을 칠 때, 회사에서 보고 자료를 만들 때 큰 틀을 정하고 세부사항을 보려고 했는데 맞춤법 따위를 상사가 지적할 때, 숙제도 청소도 자료 만들기도 다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군대 선임에게도 직장 상사에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주연에게도 마찬가지다. 쓰레기고 뭐고 정리고 뭐고 모두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참고 어제 연결만 하고 잘 나오는지 확인을 못한 티비를 켜본다.


주연이 아직 주방에 서 있는 걸 보니 음식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확인하고 있는데 주연이 한 번 더 말을 한다. 이미 알고 있고 잠깐만 확인하고 가려고 하는 그 순간, 주연이 입고 있던 앞치마를 내팽개치더니 문을 확 열고 나가버린다.


나는 다툴 때마다 지민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연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 사실 아이 앞에서 다투는 것 자체, 그리고 다툰 상태를 드러내는 자체가 싫다. 그런데 주연은 나에게 화가 나면 꼭 지민에게 티를 낸다. 물론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둘 만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은 알지만, 그렇더라도 아이 앞에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왕 티를 낼 거면 차라리 나에게 직접 말을 하면 좋겠는데 항상 “지민아~아빠 보고 00 하라고 해~”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조금 전에도 여지없이 그러는 모습에 나 역시 화가 났는데 주연이 먼저 온 몸으로 화가 났다는 티를 팍팍 내며 나가버렸다.  


나도 오늘은 안 되겠다 싶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이렇게 되는 악순환을 오늘은 어떤 식으로든 끊어내야겠다 싶다.


“지민아~아빠 엄마랑 얘기 좀 하고 올게. 먼저 아침 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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