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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12. 2022

160921-09

이사 다음 날


지민 #3     


이사와 쓰레기 때문에 아빠와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나니 내 기분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 나마저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아빠와 엄마가 더 힘들 것 같았다.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고 나갔다. 아빠가 웃으며 나를 안고 뽀뽀를 한다. 담배냄새가 확 풍겨 숨을 쉬기 힘들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다퉜을 때, 나를 대하는 방식이 정반대이다. 엄마는 대체로 나에게 평소보다 훨씬 차갑게 용건만 간단히 말하는 편이고, 아빠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포옹이나 뽀뽀를 더 진하게 하는 편이다.


아침 준비가 거의 다 되었는지 엄마가 나를 부른다.  


“지민아 아빠 보고 아침 먹게 손 씻으라고 해.”


드디어 시작되었구나. 메신저 역할. 엄마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다. 나는 주방과 거실 사이 중간에 서서 아빠에게 말을 전한다. 엄마의 말을 아빠도 들었겠지만 엄마가 전하라고 하니 엄마의 말대로 아빠에게 전한다. 내가 엄마의 말을 전할 때, 아빠가 그 말에 대해 대답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빠는 대답 대신 티비를 튼다. 나는 순간 긴장이 된다. 분명히 엄마가 다시 말을 할 텐데. 가슴이 떨려 혹시나 엄마 말을 놓칠까 걱정이 된다.


엄마가 한 번 더 말한다. 아까보다 더 차갑고 더 화가 난 목소리다. 아빠가 그냥 빨리 식탁으로 오면 좋겠는데 평소에는 이런 경우에 대답을 안 하던 아빠가 오늘따라 “잠깐만. 티비 잘 나오나 좀 보고.”라고 대답을 한다. 나는 중간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엄마가 몸을 돌려 현관으로 나갔고, 바로 이어 아빠도 나가버렸다.


갑자기 집에 혼자 남겨진 나는 무서웠다. 그리고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배도 고팠다. 아까부터 향기를 풍기던 버터 바른 식빵에 손이 갔다. 한 장을 금세 먹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 주스를 한 번에 들이켰다. 살짝 식어 먹기 딱 좋은 계란 프라이도 게 눈 감추듯 먹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이제 배는 안 고팠지만 불안함에 속이 아려왔다. 아빠는 엄마와 어떤 이야기를 할까? 두 사람은 다툼을 끝내고 함께 올라올까? 아니면 더 큰 싸움이 되어 둘 다 영영 안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내려가 말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빠가 먹고 있으라고 했으니 그냥 있는 것이 나을까?         




에필로그


10년 뒤.      


주연과 석현 그리고 지민은 마지막으로 이사 왔던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들이 가족이 되고 처음으로 가장 길게 한 집에서 살았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10년 동안 주연과 석현은 큰 다툼을 하지 않았고 지민도 하루 이상의 메신저 역할을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두어 번 이사를 하는 것이 나을까 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은 그들이 큰맘 먹고 이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지민이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고, 주연과 석현은 기나긴 아파트 생활을 끝내줄 주택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사 가기 하루 전날.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그들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 말이 없다. 보통 이사 전날 이렇게 여유 있게 저녁을 먹었던 적이 없다. 식탁 위에는 이미 박스가 올려져 있었고 최종적으로 싸야 할 짐과 내일 아침까지 꼭 남겨둬야 하는 짐을 따로 분류하고 정리하느라 분주했던 예전이다. 이번 이사는 포장이사로 하기로 했다. 주연도 이제는 몇십만 원을 아끼기 위해 몸을 고생시키기에는 나이가 들었다.


10년 동안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따로 또 같이 잘 지내왔다. 지민은 원하는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합격했다. 주연은 긴 직장생활을 2개월 전에 마치고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석현은 몇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는 외국계 회사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석현이 아는 건축가를 통해 그들이 직접 설계에도 참여한 주택은 얼마 전 리빙 잡지에도 소개될 만큼 멋지게 지어졌다. 이사 준비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왠지 그들 마음 한 구석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지금이다. 이사를 앞두고 너무나 평화로운 이 순간이 마치 폭풍 전의 고요처럼 여겨진다. 과연 그들은 내일 무사히 이사를 마치고, 이사 다음 날 지금처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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