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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19. 2022

나는 여전히 하루만 산다

그리운 나의 술친구들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일 일 모레 일 어제 일 생각하지 않고
오늘 눈 감고 잠들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 일주일에 한 번 할머니, 조개, ⌜활활발발⌟ 중     

https://blog.naver.com/2gafour/222959704410



한때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서 운동도 같이 하고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술도 먹던 동네 언니가 있었다. 나보다 4살이나 위여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는 바로 언니라고 불렀고, 언니는 나에게 하대를 했었다. 각자 외동아이를 하나씩 두었고 당시에 남편들은 주로 늦는 날이 많았으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터라 오늘은 우리 집 모레는 언니네 집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었다. 가끔씩 일찍 온 남편들까지 합류하는 날이면 그날의 술자리는 다음날이 평일이어도 꽤나 늦은 시각까지 이어지곤 했었다.    

  

아무튼 그 언니는 친언니는커녕 친형제자매가 아예 없는 나에게 부모 말고 피붙이가 있다면 이런 마음일까 싶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나이가 들어서 만났고, 성향에도 꽤나 차이가 있어서 부딪히려면 부딪힐 수 있는 지점들이 가끔 있었다.      


대표적인 차이가 바로 나는 오늘만 살자! 주의이고, 그 언니는 나보다는 내일 어쩌려고~ 주의라는 점. 사실 우리끼리 만나서 내일을 걱정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술 때문이었다. 둘 다 여자치고는 술도 꽤나 잘 먹는 편이고, 술을 안주삼아 나눌 삶의 경험도 다양했고, 또 상대방의 말을 정성스럽게 듣고 그 상황에 적절한 촌철살인의 조언을 날릴 줄도 알았으며, 그러한 상대방의 피드백을 니가 뭘 안다고 그래~라며 고깝게 듣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기에 우리들의 술 한잔은 언제나 한잔으로 그치기에는 너무나 아쉬웠었다.    

  

술꾼 + 이야기꾼들의 행태가 그렇듯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소주에서 시작해 와인을 거쳐 맥주까지 집에 있는 술은 죄다 꺼내 먹고 다 떨어지면 바로 앞 마트에 가서 사 오거나 했다. 마침 그 시각 즘 남편이 귀가 중일 때는 더 사 오라고 하여 같이 또 먹고 그런 날들이 이어졌었다. 물론 매일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2~3번?     


아무튼 그렇게 마시던 술이 떨어질 때면 나는 매번 “에이~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오늘은 더 먹자!”를 외쳤고, 언니는 “야야, 오늘만 날이 아니야. 우리 주말에 또 먹자~” 했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언니가 나에게 져줬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았다.   

   

그랬던 언니와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난 이후(서울 살던 우리가 나는 경기, 언니는 부산으로 이사를 하게 됨)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나는 그 언니처럼 마음 편하게 내일 일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술잔을 기울이던 소중한 친구들을 잃어갔고 아직까지도 잃었던 친구들을 되찾거나 새로운 친구들을 거의 만들지 못한 상태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보던 사이에서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그래도 친정이 마침 부산이라 그동안에 친정에 갈 때 가능하면 시간을 내어 그 언니네서 1박을 몇 번 했었다)로 바뀌고 나니 아무래도 예전만큼 자주 연락을 주고받거나 매일매일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모두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언니를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의 두서없는 주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정신줄 붙들고 잘 들어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 목요일에 그 언니에 집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이제는 우리도 나이를 더 먹었고, 주량도 줄어들었고, 할 이야기도 예전만큼 많지 않아서 언니가 준비해둔 술만 딱 다 먹고 더 사 오거나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언니 앞에서 취한 척하며 “지금이라도 더 사 올까? 에이~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오늘만 살아~~”라고 주정을 부릴 것이고, 언니는 “야, 내일 힘들어서 안돼~오늘만 날이니?”하며 나를 말릴 것 같다.   

   

그리운 나의 술친구들이여~

나는 아직도 오늘만 살고

여전히 하루만 살고 있다.

너희들은 어떻게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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