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5일 의 나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말을 도대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주인이 없는 말들. - <딸에 대하여> 본문 중
여전히 내 안엔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내가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내가 있고,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내가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을 반복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일일이 다 설명할 자신도, 기운도, 용기도 없다. - <딸에 대하여> 본문 중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고 다시 보고 싶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구절이 있으면 연필로 밑줄을 그어놓고 일기장이든 수첩이든 홈페이지든 어딘가에 그 구절을 기록해 놓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지금의 노트북을 샀던 2년여 전(2016년)부터는 그 기록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독서노트라는 폴더를 만들고 국외작가/국내작가로 분류하여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파일이 많지 않아 국외/국내 만으로 관리를 하고 있지만, 읽는 책이 늘어나고 기록이 쌓이면 장르별 또는 시기별 또는 다른 카테고리별로 세분화하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가끔 기록해 놓은 파일들을 열어 다시 읽어보면 이 구절은 왜?라는 의문이 드는 것들도 있고, 이 책은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다. 작년 말, 너무나 직관적인 제목의 그리고 너무나 흔한, 심지어 나의 고등학교 친구와 동일한 저자의 이름에 끌려 주문했던 이 책. 이틀인가에 걸쳐 단숨에 읽었던 기억. 읽고 나서 분명히 나보다 더욱 가슴 아파하고 더욱 생생히 저자에게 공감할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올랐던 책. 그렇기에 엄마에게 이 책을 추천해줄지 말지를 오히려 고민하게 만들었던 책. 하지만 엄마의 감정을 내가 미리 차단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추천해 줬고 예상대로 격한 호응을 받았던 책.
6개월 뒤인 (2018년) 오늘, 이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오랜만에 파일을 열어 기록해 놓은 구절들을 다시 읽는데 어느 것 하나 버릴 구절이 없다. A4 용지 2장 분량의 기록이 내 마음을 또 후벼 판다. 가끔 그런 작품들을 만난다.
첫인상이 너무나 강렬하게 와닿거나 의미심장해서 그 첫인상을 훼손하고 싶지 않은 작품들. 다시 읽거나 다시 봤을 때 처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퇴색되거나 변질되지는 않을까 망설여지는 작품들(지금 떠오르는 것들로는 드라마로는 <나의 아저씨>, <인간실격>, 책으로는 리베카 솔닛의 모든 책,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등이다). 이 책 또한 그런 작품들로 오래오래 각인될 것 같다.
딱 한번, 나의 외할머니와 나의 엄마와 나와 나의 딸, 모녀 4대가 함께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의 딸이 3살 경이었으니 5년 전(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의식이 생생했을 때. 이 책을 읽으며 이제 외할머니는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계속 그때가 떠올랐다.
모든 여성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 내가 딸이기만 할 때는 알지도 못할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되는 순간 조금은 알게 되는 그 마음.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딸에 대하여⌟가 아니라 ⌜엄마에 대하여⌟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보다는 딸을 더 먼저 생각하게 되는 나와 같은 독자들을 고려하여 제목을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의 딸보다는 나의 엄마를 더 먼저 더 오래 떠올렸으니 내가 아주 이기적이고 철없기만 한 딸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