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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3. 2023

희랍어 시간

2018년 7월 11일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던 한강. 채식주의자는 글의 초반부에 비해 중후반부로 넘어갈수록 나에게는 다소 난해해서 거북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심오하고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더 궁금해져 그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희랍어시간.


눈꺼풀과 입술이 밖에서 닫혔거나 아니면 스스로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근 두 사람의 이야기.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보거나 접하게 될 때면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 그 어떤 손상도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나를 사랑으로 낳아 소중히 길러주신 부모님께 진부하지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딸을 낳고 기를 수 있음에 한 번 더 감사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해서 또는 경험할 수 없어서일까,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현장에서 7년 정도 일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무지와 무관심이 내 스스로를 사회복지사로 인정하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표현한 ‘장애’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장애뿐 아니라 역시나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난관으로 인한 마음의 장애.


이 부분에서 또 한 번 더 깊이 부모님에게 감사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가계에 부침이 있기는 했으나 돌이켜보면 타인이나 사회나 국가에 도움을 받을 정도로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또한 가족 내에서든 주변 사람들에게서든 어떠한 형태로든 학대를 당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 있으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최저생계비조차 벌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 아무리 노력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접하며 ‘내과 과연 진정으로 이들을 이해하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물론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로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클라이언트들의 삶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일을 오래 지속하며 그 속에서 내 스스로가 소진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작가 한강처럼 아주 세심하고 깊이 있게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장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관심’이 부족하다. 그 부족함이 현재의 나를 설명하고 있다.


자는 아이의 속눈썹, 눈과 비, 쉼표와 물음표처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것들에 자신만의 감상과 의미를 부여할 줄 하는 작가 한강처럼 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세심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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