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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06. 2023

161025-02

카페에서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데시벨


Y대학교 사회계열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되지 않아 H대학교 인문계열에 입학했다. 대신 1학년 때부터 언론고시 스터디에 들어가 Y대학교 근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Y대학교 사람들과 인맥을 쌓았다. 3학년 때까지 스터디를 하며 언론고시 필기시험을 위한 기초를 다지다가 4학년이 되었을 때 먼저 지상파 3사의 시험을 보기로 했다.


결과는 모두 탈락. 방송국 입사시험의 벽은 높았다. 3년 동안 탄탄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필기시험에서 모두 낙방하자 힘이 빠졌다.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졸업을 할 수는 없었다. 4학년 2학기에 휴학을 하고 내년도 시험을 다시 준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지상파 3사 외에 케이블 방송국도 알아보았다. 한 학기 휴학이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인천에 위치한 한 케이블 방송국의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송기자직은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면접 전에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사실 거의 7년의 시간 동안 필기시험만 준비했었지 카메라 테스트를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다. 같이 스터디를 했던 사람들 중에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사전에 많은 연습 및 외모 가꾸기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없었다. H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 테스트가 있는 날 난생처음 카메라라는 것 앞에 서보았다. 정장을 입고 나름 일찍 미용실에 들러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를 손질했다. 화장실에서 마주한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만 번도 넘게 되뇌었던 “ooo 뉴스 ooo이었습니다.”를 말해보며 용기를 모았다.


드디어 H 차례. 카메라 앞에 서기 직전에 A4용지 한 장을 받았다. 1분 동안 내용을 읽어본 후, 카메라 앞에 서서 카메라 바로 밑의 프롬프터에 있는 내용을 읽으면 되었다. 정해진 자리에 서서 카메라가 있는 쪽을 보았다. 순간 너무 눈이 부셨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처음보다는 좀 나았다. “수험번호 27번 시작하세요.” 명찰을 달고 있는 어떤 남자가 말했다. 시작하려고 했다. 조금 전에 읽었던 것과 같은 내용의 글이 카메라 밑 프롬프터에 큼지막한 글씨로 나와 있었다.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읽혀지지가 아니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머뭇대고 있는 그녀에게 명찰을 달고 있는 남자가 다시 말했다. “자 긴장 풀고 천천히 읽어보세요. 큰 소리로.” 긴장을 풀라는 말을 들으니 입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긴장해서인가 싶기도 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런데도 입이 열리지를 않았다.


그래도 수험생에게 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명찰을 단 남자는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자 그럼, 그냥 본인이 외우고 있는 문장이 있으면 한번 말해볼래요? 카메라 보고?” 외우고 있는 문장? 너무 짧은 것 같긴 했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 있었다. “ooo 뉴스 ooo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깐 뿐 생각한 그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담당자의 친절은 삼 세 번까지였다. 더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날 대기실에는 딱 봐도 100명도 넘는 수험생들이 있었다. 1:100. 100명 중에 H 아니어도 시험성적도 좋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당차게 문장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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