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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2. 2024

160920-06

결혼 10주년


어른 8명에 아이 7명, 총 15명이라 아내와 친구들은 미니버스를 대절해 함께 떠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버스 회사가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가 선발대로 버스를 몰고 친구 집들을 차례로 들러 모두 태우고 강화도로 가게 되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포함한 황금연휴라 첫날 오전부터 차는 막혔다. 펜션에 도착하니 4시가 다 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쉬기는 했지만 10시부터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오랜만에 큰 차를 운전했더니 피곤이 확 몰려왔다. 다행히 그날은 별다른 일정은 없었다. 아내 친구의 부모님이 펜션 마당에 대형 튜브를 설치해 놓아 아이들은 이미 물놀이를 시작했고 어른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를 시작했다.


6시에 고기 냄새에 눈을 뜨기 전까지 누구도 나를 깨우지 않았고 덕분에 장시간 운전의 피곤을 잠깐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나도 오랜만에 정말 여행을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당에서 늦게까지 고기와 술을 먹으며 아주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또래의 남성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내도 친구들과 함께여서인지 특별히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중간중간 아이들만 챙길 뿐이었다. 이런 여행이라면 아내와 올 만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 생각은 여지없이 사라졌다. 아내는 친구 부모님이 짜준 일정에서 2개를 더 추가해 다음 날은 하와이에서의 넷째 날을 떠올리게 했다. 사실 나 말고 1종 면허를 가진 사람이 1명 더 있었기에 미니버스를 대절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전날 술을 과하게 마시는 바람에 오전까지 술이 덜 깬 상태라 그날도 운전대는 내가 잡게 되었다. 남들은 반나절이면 다 본다는 마카오를 이틀 동안 속속들이 봤던 아내는 역시나 ‘강화도에 이렇게 명소가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하루의 드라이브 코스를 촘촘하게 짜 놨다.


그날 저녁은 바닷가의 횟집에서 석양을 보며 해산물을 먹는 일정이었다. 펜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음식점이라 나는 그 좋은 안주를 앞에 두고 술도 먹지 못했는데, 어제 과음을 했던 사람은 오후부터 컨디션을 회복해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짠을 외쳐댔다. 분위기는 최고였지만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한 덕분에 다음날 아침, 또 나에게만 시련이 닥쳐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펜션 앞바다에 갯벌체험을 나가야 하는데 다른 남편들은 어제 술을 많이 마셔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다고 아내가 나만 깨운 것이다. 어제저녁에도 횟집 앞 바닷가에서 많이 놀았는데 또 굳이 바다를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지금이 썰물 때라 바다 멀리까지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마침 아이들이 “삼촌 갯벌체험 가요.”하며 몰려와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먹지도 못할 조개류를 잔뜩 바구니에 담아 아이들과 펜션으로 돌아왔는 대도 나머지 남편들은 아직 자고 있었고 아내와 친구들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제야 아내 친구들은 조금 미안한 듯 자기 남편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올 때 태웠던 것의 역순으로 친구들을 각자 집 앞에 내려준 뒤 버스 회사에 차를 반납하고 집으로 오니 휴일이 끝나 있었다. 아내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많은 역할을 했다 싶은지 운전하느라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고생했다고 했지만 그 말은 전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고 그때 나는 다시는 아내 친구들과 아니 아내와 여행하지 않을 것이라 또 다짐했었다.


매번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야만 그때의 과오와 그를 통한 다짐을 떠올리는 것이 인간의 아니면 적어도 나의 타고난 숙명인가 보다.


재작년에 거의 30년 지기 친구 중의 한 명이 급작스럽게 제주도로 발령을 받아 온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친구는 이사 간 지 1년쯤 되던 어느 날, 요즘 제주도가 한창 날씨도 좋고 우리들도 보고 싶다며 자기 집에서 지내면 되니까 비행기 표만 끊어서 내려오라고 했다. 그즈음 큰 아이도 제주도로 이사 간 친구의 딸이 보고 싶다고 조르던 때였고, 부서를 옮기며 승진한 지 얼마 안 되어 정신없이 바빠 따로 여름휴가를 계획하지도 못했던 때라 그러기로 했다. 아내에게 미리 말하면 또 일정을 세세하게 짤 것 같아 일주일 전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아내는 부랴부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친구 아내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일주일 내내 톡을 주고받았다.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집 근처 해변에서 놀고 상황 봐서 낚시도 하기로 했던 남자들의 계획은 여자들의 단톡방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3박 중 처음 2박은 독채 펜션에서 지내고 마지막 날만 친구 집에서 지내는 것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친구 아내는 1년 동안 제주도 생활을 하며 얻은 사람들에게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명소와 맛집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고, 아내와 다른 친구 아내 역시 오랜만에 가는 제주에서 새로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이야기하며 그들만의 3박 4일 일정이 새로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 보고 편안하게 쉬려고 했던 나의 생각과는 너무 다른 여행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날 친구의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3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힘을 얻었던 것일까. 결혼하고 처음으로 너무 다른 아내와 나의 여행 스타일에 대해 한번 얘기를 꺼내보고 가능하다면 조율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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