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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8. 2024

160920-05

결혼 10주년


세 번째, 아이와 함께 한 가평 1박 2일. 마침 10월 3일 개천절이 월요일이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장 좋은 계절이어서 아내의 제안을 나도 흔쾌히 받아들였었다. 가평은 함께 왔던 적은 없지만 각자 대학 때 엠티, 회사 워크숍 등으로 최소 2번 이상 와봤던 곳이었다. 더구나 아이는 이제 겨우 두 돌. 이번에는 해외도 아니었고, 처음 가보는 곳도 아니었고, 1박이니까 설마 아내가 특별한 계획을 하지 않겠지 기대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당부했었다.



“일요일에 펜션 가서 좀 쉬다 바비큐 해 먹고 다음 날 한 군데 정도 구경하고 돌아오자. 애기 데리고 갈 만한데 알아봐.”


그래, 좋아!


같은 말이어도 이렇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인가. 아내는 역시나 일정표를 짰고 일요일 오전 9시에 집을 나서는 것으로 그 일정은 시작되었다.


마트에 들러 저녁 바비큐 거리와 다음 날 아침거리를 사고 가평으로 출발해 펜션에 가기 전 쁘띠프랑스에 들렀다. 거기서 펜션까지는 20분 거리였는데 메밀전병과 막국수 맛집을 들렀다 가느라 펜션에 도착하니 3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이는 카시트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대로 침대로 옮기면 두어 시간은 잘 것 같아서 다 같이 한숨 자고 바비큐 먹으면 되겠거니 했는데 짐만 빼놓고 마트에서 산 것만 냉장고에 넣어놓고 제이드 가든을 가자고 했다. 거기는 내일 들르자고 했더니 내일은 아침 먹고 남이섬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남이섬 얘기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남이섬은 많은 연인들의 당일치기 데이트 코스여서 아내도 연애할 때 꼭 남이섬을 가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나이다. 왠지 그 상황에 남이섬을 꼭 가야 하냐고 하면 아내가 정말 서운해하고 그러다 큰 싸움이 될 것만 같아 짐을 넣고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다시 차를 몰아 제이드 가든으로 갔다.


마침 도착할 때쯤 아이가 깼고 제이드 가든은 두 돌쯤 된 아이를 데리고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기는 했다. 펜션으로 돌아와 바비큐를 먹고 아이는 9시쯤, 우리 둘은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함께 보다 12시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여지없이 아내는 곤히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남이섬 들어가기 전에 레일바이크를 타러 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그날도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일정은 밤 9시 집에 와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그쯤 되니 대체 아내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쉬기 위해 떠나는 것인데 아내와 함께 한 4번의 여행을 돌이켜 보면 일상보다 더 쉴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일본 여행 때는 우리 가족들의, 홍콩 마카오 여행 때는 처가 식구들의 칭찬으로 여행이 마무리되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칭찬을 듣지 못해서인지 아내도 어딘지 시무룩해 보였지만 그런 아내에게 칭찬을 건네거나 서로 다른 여행방식에 대한 조율을 할 에너지가 나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었다.


서로 다른 여행 방식을 조율하는 것은 함께 사는 데 있어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둘째가 태어났고, 그로부터 1년 남짓이 지난 어느 날 아내가 오랜만에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여행이라는 말에 가슴이 조여옴을 느껴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남편들, 아이들 모두 함께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마침 친구 중에 부모님이 강화도에서 펜션을 하는 분들이 있어 숙박은 거의 공짜로 가능하고, 그 부모님이 강화도 토박이라 코스도 거의 다 짜주기로 했으며, 친구들끼리 매달 2만 원씩 10년 가까이 모아 온 돈이 있어 회비도 그 안에서 쓰면 된다고 했다.


듣다 보니 그동안의 여행과는 분명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남편들은 몇 번 봐왔는데 모난 사람들은 없어서 분위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5월 어린이날이 금요일이라 3일 동안 뭘 하나 싶었는데 여러 명이 어울리면 시간도 금방 갈 것 같았다.


또 그렇게 다시는 아내와 여행을 가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은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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