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 머더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고 영화 시월애의 여주인공이 말했는데, 그즈음 그에게 숨길 수 없는 것은 통증이었다. 여름에 있을 힙합 페스티벌의 오프닝 공연에 서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오프닝이라 솔로 공연뿐 아니라 그룹 공연도 같이 해야 해서 공연 시간이 길었다. 손목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입대 연기를 위해서는 공식적인 스케줄이 있어야 했다.
몇 년 동안 솔로 공연만 하다가 팀워크를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특히, 같이 공연하는 멤버 중 예전에 크루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의 예리한 시선이 계속 느껴져 의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제일 힘든 것은 무엇보다 손목의 통증이었다. 그의 통증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은 역시 예전 그의 모습을 잘 아는 크루 멤버였다.
“너 왼쪽 손목 괜찮은 거야?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괜찮아.”
“우린 몸 상하면 끝장인 거 몰라? 병원 가 봐. 아니면 마지막 동작을 다른 걸로 바꾸든지.”
“야, 크레이지영 하면 마지막 프리즈인 거 몰라? 내가 제일 오래 하잖아 이거.”
“어 알지, 근데 그러다가 손목 나갈까 봐 그러지.”
“괜찮아. 인마.”
다행히 오프닝 공연은 멋지게 끝났고 크레이지영의 정말 미친 것 같은 프리즈로 객석에서는 함성이 쏟아졌다. 온몸을 한 팔에 의지한 채 손목을 꺾고 버티는 그 동작은 관객의 호응이 가장 큰 만큼 최상의 난이도를 요구하는 동작이다. 비보이들 중에서도 다른 동작은 다 잘해도 이 동작은 자신 없어하거나 오래 못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할 당시 경쟁자와 다른 동작에서는 거의 점수 차이가 없었는데 마지막 프리즈를 크레이지영이 더 오래 해서 이길 수 있었다.
그날 손목이 부러지기 직전까지 버티다 발로 무대를 디디는 순간 그는 기다리던 아빠의 편지 대신 입영통지서를 받은 이후 오랜만에 춤을 추며 자유를 만끽한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가을에 있을 R16 코리아 솔로 배틀 비보잉 부문에 접수를 했다. 세계 대회 우승 타이틀만으로도 공연 섭외는 계속 들어왔지만 섭외나 이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공연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무대보다 열심히 동작을 구상하고 연습에 연습을 더하며 마음속으로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이 무대를 끝으로 비보이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그만해야겠다는 것과 아빠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도 그만해야겠다는 것. 이 무대가 끝나면 군대를 다녀오고 군복무를 할 동안 제대 후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리라 다짐했었다. 손목의 상태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리고 7살 때부터 시작해 인생의 2/3 이상을 춤과 함께 보냈기에 미련도 없었다.
엄마는 7살 때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비보이 활동을 싫어했다. 위험하니까. 행여나 그가 다칠까 봐 항상 노심초사했었다. 가끔 연습이 끝나고 집에 와서 파스라도 붙일 때면 큰 상처가 난 것도 아닌데 병원을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그런 엄마였기에 한 번도 그가 공연하는 것을 보러 온 적이 없었다. 매일같이 일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의 몸이 무대 위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을 보는 것이 걱정되고 불안해서였을 것이다. 그도 엄마가 보러 오지 않는 것이 섭섭하기보다는 오히려 엄마나 또는 아빠가 보고 있지 않아야 무대에서 더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R16을 앞두고는 그가 용기를 냈다.
“엄마, 이번 공연은 꼭 보러 왔으면 좋겠어.”
“아유~엄마는 무서워서 못 가. 무서워서 못 봐.”
“나 근데 이번만 하고 그만할 거야. 군대 가려고.”
“왜 너 어디 안 좋냐?”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비보이를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도 알아. 그래서 군대 가서 앞으로 뭐 할지 생각 좀 해보려고.”
“그래, 잘 생각했다. 앞으로 뭘 하더라도 제발 몸 쓰는 건 좀 하지 마라. 엄마가 하루하루 불안해.”
“나 근데 머리 쓰는 건 자신 없는데. 암튼 그러니까 이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꼭 와서 봐. 그래도 아들 공연 한 번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