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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Aug 10. 2024

161021-09

터프 머더


그렇게 2015년 9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무대 위에 엄마는 객석에 있었다. 그에게도 엄마에게도 첫 경험이었다. 그는 엄마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도 되었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앞의 모든 동작을 정말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프리즈. 크레이지영을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그 동작. 세계무대에서 우승을 하게 해 준 그 동작. 그가 프리즈를 한 순간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마도 일어서서 그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더 힘이 났다. 그리고 그 순간 분명히 아빠도 객석 어딘가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프리즈를 하고 있는 동안 머릿속으로 초를 샜다. 손목이 안 좋아진 이후로는 2초 정도만 지나도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보통은 5초 이상만 해도 객석과 사회자와 심사위원의 인정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날 그가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은 그들이 아닌 엄마와 아빠였다. 그래서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팠지만 더 버텼다.


1초만 더 아니 0.5초만 더.


그 생각을 한 게 마지막이었다. 눈을 떠보니 아니 의식을 찾고 보니 병실에 누워있었다. 매번 꿈에서 듣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아마도 사고 이후 무대 뒤편으로 옮겨져 있다가 곧이어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나갈 때 무대 앞쪽에서 들렸던 소리인 것 같다. 비록 마지막에 부상을 당했지만 그 앞 동작들도 완벽했고 그 어떤 프리즈보다 길었기에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우승은 그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 마지막 우승컵은 그의 하체와 맞바꾼 셈이 되었다. 그 스스로 멋지게 은퇴를 하고 입대를 하려고 했는데 멋진 은퇴도 입대도 모두 무산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남아있는 사람은 엄마와 레옹 둘 뿐이다.


레옹은 올 때마다 그에게 휠체어를 타보자고 권한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휠체어 타고도 얼마든지 원하는 곳을 다 갈 수 있다고 한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면 집 앞까지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차가 오고 집안으로 보조인이 들어와 차에 타는 것을 도와도 준단다. 심지어 그를 위해 레옹은 둘째, 넷째 일요일에는 요양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보다 더 심한 분들을 휠체어에 앉히고 함께 산책을 한다고도 했다. 너는 아직 젊기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했다. 일단 휠체어에 앉는 것부터 해보고 바깥공기도 좀 쐬고 그러면서 재활 훈련도 하면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걸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 레옹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그에게는 예전처럼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길을 걸을 때도 그냥 걷는 법이 없이 리듬을 타거나 새로운 동작을 구상하는 등 한 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았던 그인데 휠체어나 아니면 나아져도 기껏 목발에 의존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에게는  희망은커녕 절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예전처럼 가볍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면 그냥 움직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12시 30분~1시 30분 엄마와의 시간, 한 달에 두 번 레옹과의 시간을 몇 번이나 보냈을까. 누워만 있다 보니 시간이 정말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흰 봉투를 내밀었다.


“영욱아, 이거.”


말끝이 떨리고 코끝이 어쩐지 붉은 것 같다. 봉투를 열어봤다. 인터넷 기사를 출력한 종이 한 장과 손으로 쓴 편지 한 장, 그리고 그날의 사진. 사진은 이미 얼핏 봐버렸다. R16에서 마지막 프리즈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다. 손 편지는 이미 누가 쓴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기사를 먼저 보았다.


제목은 “전신마비 전직 럭비선수, 가장 험한 英철인 3종 ‘터프 머더’ 완주” 그리고 기사에는 사진 한 장이 같이 있었다. 어떤 남자가 일반 휠체어보다 더 크고 작은 기계들이 달린 휠체어에 앉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주변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힘들어 보이지만 웃는 얼굴로 같이 뛰고 있는 사진. 제목과 사진만으로도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손 편지를 봤다.


“영욱아~네가 아빠의 편지를 기다렸을지 아닐지 모르겠구나. 첫 편지 이후 너무 늦었지. 정말 미안하다. 너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미안한 걸 알면서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단다. 지금이 너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아빠가 감히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가장 힘든 때란 없어. 왜냐하면 그때가 지나면 또 더 힘든 때가 오거든. 너의 사기를 꺾으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생각에는 누워만 있으면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일은 생기지 않겠지 싶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러니 부디 힘을 내길 바란다. 니 옆에는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가 있잖아. 지금은 예전과 다른 몸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겠지만 너의 몸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일을, 어쩌면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도 할 수 있을 거야.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전 편지에서는 ‘함께 있지 않다고 해서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이라고 12살짜리가 이해하기에는 어렵게 표현했었는데 이번에는 명료하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게 그 말을 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 한때 그저 같이 술 마시고 노닥거리는 여자만 몇 번 만나봤지 진지하게 이성을 만나본 적도 없고 엄마에게 그 말을 한 적도 엄마가 자신에게 그 말을 해 준 적도 없다. 물론 편지에 글자로 쓰여 있는 것이었지만 사랑한다는 그 표현이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따뜻해진 그 마음 덕분인지 발가락 끝에서부터 다리 전체에 힘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엄마를 힘차게 불렀다.


“응 영욱아~여기 죽 다 됐다. 죽 먹자.”

“엄마……사랑해요.”


엄마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얼른 죽을 가득 떠서 입에 넣었다. 고기가 씹힌다. 엄마 월급날이구나.


“엄마, 오늘 몇 월 며칠이지?”

“잠깐만……. 오늘이 4월 25일.”

“몇 년?”

“응? 아~2016년.”


다행이다. 혹시 2018년이나 2020년 정도 되었을까 봐 걱정했다. 너무 오래 누워 있었을까 봐. 그래서 다시 일어나는데 너무 오래 걸릴까 봐. 그런데 7개월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레옹에게 문자를 했다.


“다음 주 일요일에 지난번에 말한 활동지원서비스 그거 예약 좀 해줘. 오랜만에 여의도 공원 가보고 싶어. 그리고 너가 나보다 똑똑하니까 ‘영국 철인 3종 경기 터프 머더’라는 것 좀 알아봐 주라. 고맙고 사랑한다.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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