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달리기 2일 차
어제 오랜만의 달리기의 여파로 저녁부터 시작된 고관절과 허벅지의 근육통이 오늘 아침에는 더욱 심해졌다. 아침 기온을 보니 어제보다 2도가량 낮아 영하 8도. 아이가 내 방 화장실에서 씻는 동안 침대에 누운 채 나 자신에게 댈 핑계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작심삼일도 아니고 고작 하루 만에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건 정말 별로인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켰다.
막상 나가 차가운 아침 공기를 느끼니 역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걸을 때도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통증이 느껴져서 이 상태로 뛰어도 될까, 또 자기합리화를 위한 약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해서 한 바퀴 걷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내일 더 악화되는 것은 방지하기 위해 어제보다 속도와 보폭을 줄여서 뛰었다.
550미터 한 바퀴 걷고 한 바퀴 뛰기 한 세트를 마친 후, 다시 걸으며 또 고민을 시작했다. 오늘은 그냥 걷기만 할까? 아님 더 느리게 뛰어볼까? 그때, 내 뒤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겨울 아침에 뛰는 사람이 또 있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걷는 나를 금세 앞지르며 뛰어가는 사람은 얼핏 봐도 젊고 가벼운 남자였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는데 손은 시린 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성큼성큼 뛰어갔다. 복장이나 뛰는 폼이 늘상 뛰는 사람 같지는 않았고, 왠지 그냥 오늘 아침 즉흥적으로 나왔다가 뛰어보는 폼이었다.
나는 승부욕을 타고난 편이라 등산을 할 때나 걷거나 뛸 때 누군가 내 뒤에서 오는 소리가 들리면 일부러 페이스를 높여 그 사람이 나를 앞지르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기에 순간 뛸까 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그 사람이 앞지르건 말건 나는 숫자 500이 보일 때까지 마저 걷고 다시 뛰었다. 사실 더 뛸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던 순간에 그 사람이 나타나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고민 없이 이어서 뛰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나는 계속 한 바퀴 뛰고 한 바퀴 걷고를 반복하는 동안 그 사람은 역시 젊은이라 그런지 내가 보기에 4바퀴 아니면 3바퀴 정도를 연속으로 뛰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 올 때면 나는 항상 중학교 2학년 수학 문제 중 속력이 다른 두 사람이 트랙을 같은(또는 반대) 방향으로 돌 때 같은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한 후 처음으로 다시 만나는 것은 출발한 지 몇 분 후인지를 묻는 문제를 떠올린다. 오늘 그 사람과 나는 같은 방향으로 돌았고 속력이 달랐기에 중간에 두어 번 만났던 거 같다.
그렇게 나만의 4세트 중 걷기 단계일 때 나에게는 또 한 번의 고민의 순간이 찾아왔다. 오늘은 그냥 3.5세트만 하고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어제보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전체적인 속도를 줄인 탓인지 시간도 평소 운동을 끝내는 시간에 거의 다다랐고 10시부터 온라인 교육이 있으니까 무리하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등등.
그때 내가 본 이후로 계속 뛰고 있던 젊은이가 나보다 조금 앞선 곳에서 뛰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아 저 정도 거리 차면 내가 지금부터 뛰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고, 나는 얼른 4번째 뛰기를 시작했다. 그 사람도 누군가가 자기를 앞지르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유형인지는 몰라도 내가 따라잡는 순간 방향을 틀어 트랙을 벗어나서 내가 온전히 따라잡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그 덕분에 내가 무사히 4세트를 마치고 마지막 0.5세트까지 채워서 오늘도 어제와 같은 4.5세트의 아침 운동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그는 나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제대로 해 주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어제보다 운동을 덜 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최근에 애플워치의 페이스메이커 광고를 매우 인상 깊게 보았는데, 나는 애플워치는 없지만 오늘 아침 익명의 페이스메이커 덕분에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https://blog.naver.com/stussyblog/224133831175
내일 아침에도 이불의 따뜻함을 떨치고 아침의 러닝을 하게 되기를.
내친김에 매일 뛰고 매일 글도 한편 씩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