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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19. 2020

2020년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 2


1년의 시작은 언제일까?    

 


달력상으로는 1월 1일이지만, 1년의 실실적인 시작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학생 및 교직원들에게는 보통 개학일인 3월 2일이 시작일 것이고, 직장인들에게는 시무식인 1월 2일이 시작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정 연휴 다음날이 시작일 것이다.      


2020년 구정 연휴의 어느 날 가족들이 모여 거실에서 뉴스를 보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도 코로나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여파를 생각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출근한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베트남 가도 될까?”     


우리는 올해 2월 초에 4박 5일의 일정으로 아는 가족과 베트남 여행을 예약해뒀었다. 그 전날 뉴스에서 코로나 얘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그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힘들게 날짜를 맞춰 예약한 해외여행이 취소될 수도 있음은 상상도 못 했다.     


부랴부랴 아는 언니와 남편과 동시다발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우리는 일단 취소가 가능한 지 알아보고 가능하다면 여행을 취소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항공편과 숙소 취소를 각자 맡아 알아보는 와중에 솔직히 나는 여행사에서 취소가 안된다고 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첫날 숙소 예약한 것만 빼고 나머지 다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고 하여 우리는 하루치 숙소비만 날리고 다음으로 여행을 기약하며 모든 예약을 취소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한두 달 뒤면 다시 또 금방 여행을 갈 수 있을 줄 알았지.     


코로나 전 마지막 여행, 2019년 여름 다낭


그렇게 실질적인 2020년의 시작일부터 코로나로 인한 대소동을 겪은 후 어느덧 2021년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가 아직도 더 심하게 진행 중인 2020년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 두 번째는 바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2월 초 베트남 여행 취소를 시작으로 올 한 해 가족을 제외하고 만난 사람 또는 그 사람들을 만난 횟수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다. 대학원 동기들 모임은 적어도 1년에 3~4번은 하는데 올해는 지난 10월에 딱 한번, 대학 동기들은 얼굴 까먹은 지 오래고, 고등학교 동창들도 다 같이는 지난 10월에 딱 한번, 그 외 개인적인 친구들 중 5월에 서로의 생일이 있어서 만난 친구와 아이의 나이가 같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를 제외하고는 얼굴 본 지 다들 오래다. 나이가 들면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친구나 지인이 점점 줄어드는 와중에 올해는 정말 ‘나의 인간관계가 딱 이 만큼이구나’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회식도 2번 많아야 3번 정도였다.      


2020년 10월 서판교 어딘가


베트남 여행을 함께 가려다 취소했던 그 가족이 올여름에 부산으로 이사를 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가족이 계속 서울에 살았다면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마 더 자주 만나 시간을 보냈을 텐데 멀어지다 보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 10월, 잠시 짬을 내어 1박 2일을 함께 했지만 24시간은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2020년 10월 부산 송정 해변


쓰다 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은 10월에 그래도 못 만났던 친구들과 연락하고 만났구나 싶다. 지금 같은 상황 - 코로나는 더 심해지고 춥기까지 한 - 이 되니 벌써 그때가 그립기만 하다.      


과연 아주 먼 훗날 2020년을 그리워할 날이 올까?     


예전에 브런치의 어떤 글에서 누군가가 자기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만은 않다’라고 했었다. 잠옷 바지만 입고 화상으로 하는 회의도 너무 좋고, 먹기 싫은 점심 부장님과 같이 안 먹어도 되고,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저녁 회식에 억지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고, 먼저 퇴근해도 되나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거래처 사장님의 아재 개그에 가식 웃음 안 웃어도 되고 등등.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아니 나는 코로나 이전으로 꼭 돌아가고 싶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출근하고 싶고, 사람들과 의논해 점심 메뉴를 정하고 싶고, 저녁 회식자리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3차로 노래방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 싶고, 가끔 상사가 5시쯤 전화 와서 외부에서 바로 퇴근한다고 하면 회사 컴퓨터로 항공권 검색도 하고 싶고, 누군가 아재 개그 날리기 전에 내가 먼저 신박한 넌센스 퀴즈로 분위기를 휘어잡고 싶다.      



무엇보다 마스크를 벗고 상대방의 눈코입을 모두 보며 가끔은 침을 튀기며 미친 듯이 수다를 떨고 싶다. 때로는 바로 옆 테이블이 너무 가까워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우리의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하고, 사람 바글바글한 지하철에서 우연히 예전에 알던 사람을 만나 반가움에 격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맛집 앞에서 다닥다닥 붙어 한참을 기다려보기도 하고, 연말 분위기 나는 공연에 가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기도 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2020년이 딱히 그리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더 최악의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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