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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17. 2020

2020년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 1


2020년이 딱 15일 남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2020년은 특별한 아니 특별할 거라 기대했던 해이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영화 중에 2020 원더키드라는 것이 있었다. 정확도를 기하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정식 명칭은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로 1989년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내 딸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만화를 보며 아주아주 먼 미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막연했지만 나는 2020년이 되면 무언가 새롭고 신나고 멋진 일들을 하게 될 거라고 항상 기대하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새롭기는 하지만 신나고 멋지진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나의 아니 우리 모두의 2020년이 도둑맞은 것처럼 훌쩍 지나가버렸다.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1년의 끝자락에 부랴부랴 2020년이 나에게서 어떤 것을 빼앗아 갔고 또 어떤 것을 가져다주었는지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가져간 것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의 양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테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즉 그 시간의 질 역시 개인이 선택할 수 있기에 각양각색일 것이다.


주로 오후에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코로나 이전 혼자만의 시간은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교한 오전 시간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아이와 남편은 오전뿐 아니라 오후를 지나 저녁까지, 다시 말해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혼자만의 시간은 사라져 버렸다.

오전 시간에 주로 내가 했던 것은 1) 운동 2) 독서 및 글쓰기 3) 간단한 업무 처리 4) 집안일  크게 4가지였다. 이 중 3번과 4번은 안 할 수가 없으니 사라진 혼자만의 시간과 상관없이 지속했지만 1번과 2번은 지난 1년 동안 정말 거의 하지 못했다.

흔히들 계획이나 목표를 세울 때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흰 종이에 가로줄 하나 그 가운데를 관통하는 세로줄 하나를 그어 공간을 4개로 나누고 각각의 공간에 1) 중요하면서 급한 일 2)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3)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4)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을 분류하여 적은 다음 네 번째는 과감하게 버리고 첫 번째를 우선순위에 놓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중에 인생을 길게 본다면 두 번째를 먼저 하라는 식으로 조언해준다. 나도 그런 조언을 많은 이들에게 해왔다. 하지만 2020년의 나는 내가 내뱉은 말을 실천하지 못한 채 외부의 환경에 끌려다니며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에는 손을 놓고 지내왔다.

어쩌다 보니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을 졸업한 지 약 15년 만에 그 전공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나’이니만큼 전년 대비 내가 얼마나 1번과 2번을 못(안)했는지 수치적으로 파악을 해보려 한다.

먼저 운동. 2019년에 나는 일평균 4,291 걸음을 걸었는데, 올해는 2,143 걸음을 걸었다. 5걸음은 오차범위에 들어간다 치면 딱 반토막이 난 셈이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고 난 뒤 잘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 덕에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고 왕복 약 5킬로미터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오면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나는 신체적으로 건강해졌을 뿐 아니라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오후에 있을 업무도 정리해보고 글감도 생각해 봤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아니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내지 못해서일까 올 한 해 나는 최근 5년 동안 중에 가장 바쁘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무엇을 두고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두 번째 독서. 2019년에 나는 40권의 책을 읽었는데, 올해는 23권을 읽었다. 역시 거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나, 내가 블로그에 따로 분류해 놓은 범주가 수학/죽음/글쓰기인데 이 분야의 책들은 2019년에는 12권을 읽었는데 올해는 2권밖에 못 읽었다.

남다른 취미가 딱히 없는 ‘나’이기에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독서를 하기는 했지만 내가 좀 더 집중해서 깊이 파고들며 읽어야 하는 책보다는 조금은 쉽고 대중적인 책들을 위주로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업무와 관련하여 수학 분야의 책을 읽고 정리해 필요한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도 실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많이 읽어야 많이 쓸 수 있는데 적게 읽었고 하나도 쓰지를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글쓰기. 정말 제로다. 2019년에 나는 총 43편의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렸는데, 올해는 단 한 편의 글도 올리지 못했다. 브런치의 내 마지막 글은 Dec 01.2019에 업로드되었다.


작년 말인가 올해 초에 회사에서 2020년 목표를 발표하는 시간에 나는 개인적인 목표로 올해 브런치에 100번째 글을 올리겠다고 했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은 목표를 기억하고 있다가 왜 그것을 단 1도 달성하지 못했냐며 다그치는 사람은 없겠지만 뭔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거겠지. 나에게 글쓰기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아직 나도 잘 모르겠는 뭐라고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내 안에 있는 어떤 기억, 어떤 아픔, 어떤 상처, 어떤 기분, 어떤 느낌, 어떤 생각, 어떤 좌절, 어떤 기대, 어떤 희망, 어떤 의견, 어떤 기쁨, 어떤 슬픔, 어떤 말, 어떤 거짓, 어떤 진실, 어떤 것들을 내 스스로 꺼내어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나의 글쓰기이다. 그래도 2020년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 1~5, 2020년에 나에게 준 것 1~5 총 10편의 글감은 마련해두어서인지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아주 허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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