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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01. 2019

오늘 아침에도 나는 같은 길만 걷다 돌아왔다

성장판 온라인 글쓰기 7번째 글



나는 길치다.

걸어서 어딘가를 갈 때, 같은 길을 최소 3번에서 많게는 5번은 반복해야 그 길을 기억한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첫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 나는 길을 잃었었다. 그래서 30여 명의 신입직원들이 모두 모여 허리를 곧추세우고 앞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대회의실에 혼자만 늦게 도착해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았었다. 면접 볼 때 한번 갔던 길이고 지하철 역에서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그날 아침 나는 마치 시골에서 상경해 높은 건물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머릿속이 뱅뱅 도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날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입사가 결정되고 출근하기 전에 사전답사를 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모르는 곳을 걸어서 찾아가는 경우보다 운전을 해서 가는 경우가 점점 늘게 되었다. 운전을  때도 나는 길치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그 누구보다 내비게이션을 잘 본다. 나에게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은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 아닌 이상 운전하기 전에 항상 내비게이션을 켠다. 그리고 그 안내대로만 운전을 한다. 그래서 가끔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약속 장소를 “뱅뱅 사거리에서 논현역 방면으로 오다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됐고. 그냥 주소를 알려줘. 내비 찍고 갈게.”라고 말한다.



요즘은 워낙 지도 어플이 잘 되어 있어 모르는 길을 걸어서 찾아가더라도 예전처럼 헤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내 입으로 굳이 밝히지 않으면 내가 길치인 걸 티 안 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아는 형님>에 아이유가 나와서 3년째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헷갈린다고 말했을 때 100% 공감이 되었었다. 그래서 해외에 갔을 때 감각만으로 목적지의 방향을 파악해 나와 딸을 데리고 다니는 남편이 항상 든든하기도 하다.

최근 들어 대외적으로는 건강관리 차원에서 대내적으로는 군살을 빼기 위해 아침에 걷고 있는데, 4킬로미터 남짓 되는 현재의 코스를 개발하는데도 며칠 시행착오를 겪었었다. 대부분의 길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고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거의 없는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직진하다가 우회전을 해서 죽 가다가 다시 돌아올 때 내가 방향을 전환했던 곳이 여기였는지 더 가서였는지 헷갈렸었다. 그리고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올 때 갈 때는 못 봤던 구조물에 혼자 흠칫 놀라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새로운 길과의 밀당 끝에 현재의 코스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지난 글에도 썼듯이 아침의 걷기가 제대로 운동이 되려면 같은 코스를 두 번 반복하든지, 더 긴 새로운 코스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성향상 같은 코스를 두 번 반복하는 건 지루할 것 같아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려고 마음먹고 2번을 시도해보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집에서 20분 거리의 동산 바로 옆이 한강공원 4호이다. 공원 입구의 안내도에 의하면 한강공원은 1호부터 5호까지 있고 1호가 우리 집 맞은편의 중학교 근처로 표시되어 있다. 느낌 상 집에서 동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한강공원 4호에서 3호, 2호, 1호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 딱 좋은 코스가 될 것 같다. 그래서 큰 맘먹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 이쪽저쪽을 둘러보았으나 내 눈에는 도무지 3호로 연결되는 길이 안 보였다.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농구코트를 지나 막다른 길이 있는 곳까지만 갔다가 연결통로를 찾지 못하고 다시 동산 입구로 와서 원래 코스대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그때 스마트폰 지도 찬스를 쓰면 되겠으나, 운동하는 길을 굳이 스마트폰에 의존해 찾고 싶지는 않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 혼자만의 코스이니 스스로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다음번에 또 어리바리하게 헤매다 결국 같은 길로 오고 싶지는 않아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 찬스를 이용해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한강공원은 1호부터 5호까지 모두 연결이 되어 있으며, 심지어 1~3호에는 볼거리가 아주 많다고 한다. 누군가 친절하게 아까 말했던 중학교 바로 옆에 1호와 연결되는 길이 있다는 글을 올려놓았다.

그 글을 믿고 다음번에는 중학교에서 길을 시작해보려 한다. 4호에서 3호로 연결되는 길은 못 찾았지만 1호에서 2호로 연결되는 길은 바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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