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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20. 2020

2020년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 3


당신은 언제 씻는 유형인가?


아침? 밤? 아침저녁?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지금부터 이 글에서 말하는 ‘씻는다’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씻는 것, 즉 머리 감기+샤워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때로는 아침, 때로는 낮이나 오후. 정확히는 외출을 하기 전에 씻는다. 그리고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세수+발 씻기 정도로 간단히만 씻는다. 물론 아주 더운 여름이나 물놀이를 하는 날 등은 하루에 2~3번 씻는 경우도 있긴 하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 입장에서는 의외로) 자기 전에 씻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들은 자기 전에 씻는 이유로 크게 2가지를 든다.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그리고 하루 동안 몸 곳곳에 쌓인 먼지나 노폐물을 자기 전에 씻어내고 자는 것이 더 깨끗해서.


나도 예전에 몇 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미뤄보려고 밤에 씻고 자 본 적이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나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티비를 보든 책을 보든 핸드폰을 보든 눈꺼풀이 감기려고 할 때 딱 눈을 감고 잠이 들어야 하는데, 씻는 동안 잠이 확 달아나버렸고, 자는 동안 머리가 헝클어질까 봐 신경이 쓰여 힘들게 잔 잠을 설치게 되었다.



아침에 10분 더 일찍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온 몸에 물을 맞으며 서서히 잠을 깨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못 느끼겠지만 아침에 씻고 한 화장과 세수만 하고 한 화장은 차이가 있다.  


쓰다 보니 길어졌는데 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갑작스럽지만 나는 씻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씻는 것이 그중에서도 머리를 감는 것이 고통까지는 아니지만 썩 즐겁지는 않게 되었다.


머리를 감을 때와 말릴 때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4813520?lfrom=kakao


오늘 아침 “2030 탈모로 ‘한숨’”이라는 기사를 보아하니 비단 나만의 걱정은 아닌 듯해서 약간의 안도가 되기는 하지만 나도 이제 탈모인이 된 건가 싶어 우울하기만 하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아저씨가 “900만 탈모인”을 외칠 때는 그저 자신의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뼈그맨의 멘트에 박장대소만 했었는데, 이제는 한번 씻고 난 후 화장실 바닥에 흥건한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빠진 머리카락 수를 일일이 세어볼 만큼 한가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아 그저 나의 눈대중으로만 가늠한 것이지만 작년 대비 올해 확연히 머리숱이 줄었다. 직업의 특성상 머리가 단정해야 해서 주로 하나로 묶고 외출을 하는데, 같은 고무줄로 머리를 묶었을 때 똑같이 세 바퀴를 돌렸음에도 단단히 묶인 느낌이 안 들어 고무줄을 한번 더 돌려야 하나 라고 느낀 때부터 시작인 것 같다.


그 날 이후, 머리카락을 모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릴 때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몸의 일부가 조각조각나서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머리카락도 내 신체의 한 부분이니 뭐 실제로 그렇기도 한 셈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신체와 모발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고 길러서 상투를 틀고 다녔던 것이겠지. 부모님이 물려주신 머리카락 색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거의 20년 가까이 수없이 많은 뿌리 염색을 한 벌을 받는 건가?  


올해 들어 내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현상은 올해가 2020년이어서는 아니고 인정하기 싫지만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올해가 나에게 특별히 힘들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탈모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의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에게 제일 먼저 찾아온 나이 듦의 한 현상일 뿐이라고. 한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언니들이 아직 30대 중반이던 나에게 “너도 얼마 안 남았어.”라며 내 카톡의 글씨 크기를 보고 놀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나는 속으로 카톡의 글씨 크기 따위 키우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다짐했었는데, 장담은 못하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여기고, 아직도 주변인들 중에 내 나이를 알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음을 즐기는 ‘나’이지만, 나도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올 한 해 거의 매일 느꼈다. 어제 쓴 글에서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는 2020년을 그리워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머리숱 면에 있어서는 지금 현재가 가장 풍성할 것이므로 나중에 2020년의 머리숱만큼은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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