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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24. 2020

2020년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 4



코로나 전, 나의 일상에서 활력소가 되었던 시간을 꼽으라면 일주일에 한 번 아침마다 꽉 막힌 강변북로를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달려 출근하던 때이다. 출근길 막힌 길을 운전하는 와중에도 활력을 느낄 정도로 내가 초긍정 마인드여서는 아니고,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누리는 나만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89.1에서 흘러나오는 DJ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음원 사이트의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최애곡들을 들으며 뚫렸다가 막혔다가를 반복하는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배우자, 누구의 딸이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물론 운전하는 것이 스트레스인 사람들에게는 편도 한 시간 반의 운전이 고역이겠지만 다행히도 나는 운전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에 그 시간에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에 혼자 웃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차가 잠시 멈췄을 때 문자를 보내 커피 쿠폰을 받을 때면 기분이 정말 째지는 것 같았다. 또 내가 회사 가서 발표라도 해야 하는 날이면 발표할 멘트를 조용조용 되뇌어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기도 하고, 어쩌다 5분 빨리 출발해서 차가 덜 막힌 날이면 일정이 시작하기 전에 근처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사실 내가 아침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운전해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 곳으로 이사 온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니 기껏해야 4개월. 짧아서 더 아쉬움이 큰가 보다.

     

이사 오기 전에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었다. 그 시간 또한 다른 의미에서 활력소였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10분 정도를 걸어가 6호선을 타고 중간에 5호선으로 한번 환승한 후 마포역 3번 출구에 내려 기나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 때로는 팀원들과 함께 나눠 먹을 빵이나 떡을 사들고 출근하는 그 기분을 느껴 본 지 오래다.      


출근 시간의 지하철은 자동차처럼 도로(철로)에서 막히는 일은 없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숨은 턱턱 막히곤 한다. 마스크가 얼굴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시절, 사람들이 꽉 들어찬 지하철 안에서 어쩌다 내 앞에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서게 된 나보다 덩치가 큰 사람이 내뿜는 숨을 어쩔 수 없이 들이마셨던 걸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또 자의든 타의든 내 몸에 누군가의 손 또는 다른 부위가 닿았던 그 느낌도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치가 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출근 시간 또는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내가 ‘나’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강력한 존재였다.   

   

지하철로 출근했던 기간은 작년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아침마다 출근했던 기간은 총 11개월이고,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으니 횟수로는 45회 정도였겠다. 그전에 매일매일 출근하던 때가 나에게도 더 오랜 기간 동안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삶에서 가장 큰 방황을 했던 시기 이후의 출근이어서 최근의 이 출근이 나에게 더 의미 있었던 것 같다.      


2020년 2월부터 출근이 온라인 회의로 대체되었다. 처음에는 온라인 출근도 잠깐만 하고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연장되고 또 연장되고 또 연장되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오히려 이 문화가 정착이 되어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던 우리들은 앞으로도 굳이 사무실에서 만나지 않고 온라인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마포역 3번 출구에 있던 사무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는 달리 온라인 출근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내가 코로나 이전의 출근 방식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단지 출근길의 그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코로나와 같은 불가피한 상황까지는 아니어도 만삭이었을 때나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이 “만나기 어렵겠지?”라고 지레짐작하고 나중에 만나자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무리해서 부른 배를 부여잡고 강남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평소보다 오래 맡기고 눈길을 뚫고 동료를 만나러 갔었다. 그러고 보니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도 직장 동료들이 우르르 만나러 왔었는데, 그때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다 기억난다. 누군가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다 임신 또는 출산 나아가 육아와 관련된 것만 떠오르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82년생 김지영’인가 보다.      


어쨌든 혼자만의 시간 이후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것이 지난 11개월 동안의 출근이 나에게 주는 의미였음을 이 글을 쓰며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사라지고 나니, 더불어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타인과의 만남 자체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니, 항상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고, 안 좋은 것인 줄 알면서도 가족 앞에서 가끔 한숨을 쉬거나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힘들고 답답했던 올 한 해를 그래도 탁 트인 스키장에 가서 조금이나마 기분 좋게 마무리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스키장 운영 중단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정말 올해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느낌이 1도 안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크리스마스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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