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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an 26. 2019

그[람]사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안녕? 오랜만이네...잘 지냈어?

     

길을 걷다 우연히 너를 보게 된다면, 아마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나칠 확률이 제일 크겠지만, 혹시라도 알아본다면, 너무 식상하지만 저렇게 안부를 묻게 될 것 같아. 내가 너를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인 그 곳에서였지. 비행기를 탈 때는 여름이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니 겨울이었어. 어쩌면 한국 시간으로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면 네가 나를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다 싶어. 나는 보통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자존감이 높아지니까. 겨울이었던 그곳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기에 나는 너를 끌어당길 수 있었겠지.

     

최근에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었어. 이 작품에는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해. 폴과 로제, 그리고 시몽. 자신보다 15살 많은 폴에게 거의 첫눈에 반해 그녀만을 바라보는 ‘직진남’ 시몽. 나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시몽이 등장할 때마다 네 생각이 났어. 

     

“난 그래. 게다가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어. 산책을 하면서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생각하면서 혼자 점심을 먹고, 그런 다음 6시가 되기를 기다릴 거야. 알다시피 난 패기에 찬 젊은이는 아니거든.”
“당신 상사는 뭐라고 할까?”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106p)


거의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폴과 시몽의 이 대화가 나에게는 너를 떠올리게 하는 명확한 신호였어. 우리는 사귀기는커녕 그냥 네가 나에게 호감을 느꼈었고 그것을 꽤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꽤나 감상적인 방법으로 드러내는 바람에 한때 무리들의 관심을 샀던 관계였지. 하지만 난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가 사귀었다면 분명 저와 비슷한 대화를 했을 거라고 생각해.

     

그때의 나는, 물론 너보다는 나이가 많았지만 그 자체로 너무나 어렸던 나는 너처럼, 시몽처럼,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그 여자만을 생각하고 그 여자만으로도 충분한 남자보다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줄 알고 나보다 더 생각이 깊고 나와 함께할 더 나은 미래를 대비하는 남자를 바랬던 거 같애. 근데 지금은 네가, 시몽이 그리워.

     

나를, 나만을 바라보며 여러 사람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 올라가 책가방 속의 필통을 마이크 삼아 생목으로 휘성“안되나요”를 부르던 너의 목소리, 너의 표정, 너의 손짓. 거의 음치에 가까운 실력이었지만, 너의 그 용기와 패기에 잠깐 내 마음이 흔들렸었지. 그 노래의 주인공이 나인 줄 몰랐던 사람들은 노래가 끝나자 너를 둘러싸고 질문을 퍼부었지. 하지만 너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다행히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었지. 하지만 조금 눈치가 빨랐던 사람이라면 알았을 거야. 네가, 유독 내 옆에 자리 잡은 날들이 많았다는 것을.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얼마 전, 눈치를 챈 선배와 한참 어린 너는 주먹다짐을 했었지.

     

그 선배는 왜 너에게 주먹을 날렸을까? 그 선배 이야기도 언젠가 써봐야겠다.

     

아무튼 2달도 채 안 되는 그 짧았던 시간 동안 꺼내어 볼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옅은 회색 비니, 도수 높은 안경, 눈을 가리는 앞머리, 그래서 더더욱 보기 힘들었던 너의 눈.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수줍어하며 웃던 그 얼굴. 그리고 항상 한발 짝 뒤에서 나를 보고 있던 너. 너의 영어 이름 엘튼. 누군가 농담조로 ‘엘튼 존’의 성적취향을 얘기하며 너도 그러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지 사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너의 떨렸지만 단호했던 그 목소리.

     

참 이상하다. 거의 잊고 지냈는데. 잊어야할 만큼 많은 추억을 쌓은 적도 없는데, 혹시나 네가 이 글을 본다면 착각하겠다. 사실은 나도 널 꽤나 좋아했는데, 말하지 못했던 걸로. 오해하면 안 되니까 분명히 말할게. 그때는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네가 그리운가봐. 아니 이 말도 오해하면 안 되는데.

     

그래, 지금 딱 듣고 싶은 노래가 있어.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 - 어반자카파. “네가 그립거나 보고프거나 그런 쉬운 감정이 아니야. 난 그때의 우리가 세상에 우리밖에 없었던 그때가 그리울 뿐.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픈 가벼운 순간의 감정이 아냐.”

         

이제 조금 설명이 되겠니. 나의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는 건 죄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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