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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27.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이 나에게 준 것 2


아마 3월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구 지역뿐 아니라 수도권으로도 퍼져 학생들의 개학이 연기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연히 접한 인터넷 기사가 떠오른다.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집안일이 늘어난 부인이 남편에게 “설거지 좀 도와”달라고 했다가 맞았다는 기사.   

   

그 기사를 보고 나는 내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화를 내거나 때리지 않고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전까지 집안일에 있어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기대는 앞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며느라기》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같은 대학을 나와 비슷한 수준의 회사를 다니는 남녀가 결혼 후, 아내가 어쩔 수 없이 특히, 시댁 가서는 집안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996420


꼭 설거지, 빨래, 청소로 연상되는 집안일이 아니더라도 임신과 출산에서 육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양쪽 집안의 대소사 및 분위기를 챙기는 일 등 그 안에서 발생하는 남녀의 갈등을 다룬 콘텐츠는 많다. 최근작 중에는 《고백부부》와 《VIP》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난다.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결혼으로 가족이 생기고 특히나 자녀가 태어나 비로소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 남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막중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결혼 전과 후, 변화되는 특히 희생해야 하는 부분의 가짓수는 여자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딸에게 결혼을 강요할 마음은 없다.   

   

아무튼, 10여 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내가 겪고 들은 부조리한 측면들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이 나에게 준 것 2 - 줄어든 집안일”에 대해 써보겠다.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집안일이 줄어들었다니요?

가족들이 참 많이 도와주나 보네요.      

아니요. 가족들 말고 물건들이 저를 도와줘요.     


나의 늘어난 집안일을 줄여준 것은 바로 건조기와 식기세척기이다.   

   


건조기는 작년 9월 이사할 때, 10년 쓴 세탁기를 바꾸면서 큰 맘먹고 지른 물건이다. 타인의 평가 특히, 물건에 대한 평가에 크게 휘둘리는 편이 아닌 나는 주변에서 다들 건조기를 쓰면 너무 편하다고 할 때도 속으로 ‘큰 차이 있겠어’ 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써보니 “안 먹어(써)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써) 본 사람은 없어요.”라는 요즘 광고에서 자주 나오는 문구가 딱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건조기가 있어 가장 좋은 점은 빨래를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조대에서 빨래를 말리던 시절에는 주로 날씨가 화창한 날 이른 오전에만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다. 그래야 세탁기에서 꺼낸 젖은 빨래를 햇빛에 뽀송하게 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건조기가 있으니 시간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빨래가 쌓이는 양과 내 스케줄에 의해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건조 후 필터를 거쳐 나오는 먼지를 보며 그동안 얼마나 많이 먼지가 그대로 붙어 있는 옷을 입어왔던 건가, 이제라도 먼지까지 탈탈 털어낸 옷을 입게 되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건조기로 인한 편리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제품이 있었으니 바로 식기세척기였다. 광고에도 자주 나오고, 정수기 필터를 교환해주러 오신 분이 하도 권하기에 지난 10월에 또 확 질러 버렸다. 물론 정수기처럼 렌탈로 월 일정 금액만 내고 이용하는 것이라 큰 부담은 아니었다.   


   

예전에 살던 집에 식기세척기가 빌트인 되어 있었는데, 그때는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 때라 쓰고 난 그릇을 모았다가 식기세척기를 돌리기보다는 엄마가 (가끔 내가) 바로바로 설거지를 해서 사용한 횟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지금 식기세척기의 기능과 디자인 모두 훨씬 업그레이드가 되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정수기 밑의 주방 서랍을 통으로 드러내고 그 자리에 식기세척기를 설치했는데 결과적으로 대 만족이다. 3명뿐인 식구에 설거지가 뭐 그리 많다고 식기세척기냐 할 수도 있지만 하루에 2~3번 개수대 앞에서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를 하다 보면 괜히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솔직히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일에 크게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그래도 먹는 거 빼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더 좋지 다 먹고 난 그릇을 씻는 건 좀 별로다. 그래서일까. 치우는 시간과 횟수를 아예 없애주지는 않았지만 확 줄여준 식기세척기가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식기세척기 안에 넣을 수 없는 프라이팬, 플라스틱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보통 우리 가족이 2~3끼 정도 밥을 먹으면 식기세척기에 그릇이 꽉 찬다. 가루 형태가 아닌 고체 형태로 업그레이드된 세제를 통에 쏙 넣고 안심살균+고온건조 기능을 추가한 후 시작 버튼을 누르면 건조기에 넣었던 빨래가 새 옷이 되어 나오는 것처럼 기름때에 찌들어 내가 설거지로 할 때는 깨끗이 씻기지 않았던 그릇들이 새 것이 되어 나온다.      


따뜻한 스팀으로 깨끗하게 새단장을 하고 나온 빨래와 그릇을 다시 정리하여 원래 자리에 넣는 것은 여전히 내 몫이지만, 뭐 그 정도는 해야겠지.      


앞으로 사고 싶은 가전제품이 한 가지 더 있다. 로봇 물걸레 청소기. 이미 편리함에 길들여진 '나'이기에 아마도 조만간 지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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