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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28.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이 나에게 준 것 3


며칠 전, 내내 집에만 있어 답답해하는 딸을 데리고 동네 네일아트샵에 가서 손톱에만 크리스마스 느낌을 조금 낸 적이 있다. 그날 샵에는 나와 딸 말고 20대(로 추정되는) 여성 1명과 직원 2명이 더 있었는데, 그 여성과 다른 직원이 주고받던 대화가 문득 나의 20대 시절을 떠올리게 했었다.      



여성 : 샵 위치가 바뀌니까 바쁜 시간대도 바뀌지 않아요?

(20대로 추정되는) 직원 : 네 맞아요. 예전 동네는 아기 엄마들이 많아서 애들 유치원이나 학교 보내고 오전에 예약문의가 많았는데, 여기는 오피스텔이 많아 직장인들이 많으니까 오전보다는 오후나 저녁에 더 바빠요.

여성 : 그럼 연령대로 다르겠네요?

직원 : 아무래도 더 낮아졌죠?

여성 : (아기 엄마들보다는 젊은 직장 여성들이 아무래도 돈을 더 많이 쓰니까-나의 추측) 그게 더 좋지 않아요?     


바로 옆이라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 없는 대화였다. 내 손톱을 관리해주던 실장님이 그 순간 대화가 더 이어지면 아기 엄마인 내가 듣기에 불편한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는지, 관리를 끝낸 내 딸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그죠, 확 낮아졌죠.”라고 했다. 그 말에 여성과 다른 직원도 내 딸을 보고 “그렇네요.” 하며 자연스럽게 앞선 대화가 끊어졌다.      


20대로 추정되는 여성과 직원을 비난하기 위해 이 일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정말 경험하는 만큼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정말 딱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 말고 또 내가 “아는 만큼 보인다.”를 실감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반려동물 키우기”이다.   

   

내가 기억하는 반려동물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집 안이 아니라 바깥, 정확히는 공용 마당 같은 곳에서 키우던 아주 큰 개가 유일하다. 공용 마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의 조금은 특별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그 당시 거의 내 몸집만 했던 큰 개여서 나에게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 보살펴줘야 할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니었다. 더구나 특별했던 어린 시절 덕분에 나에게는 개와 관련된 아직도 눈에 선한 끔찍한 장면이 하나 있어 여러모로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물을 좋아하고 키우고 싶어 하는 남편과 딸 덕분에(?) 작년 6월, 우리 집에 반려동물이 입성하게 되었다. 강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이  간다고 하여 선택한 고양이. 결론 먼저 이야기하면 고양이 정말 강추다. 그래서 지난달 우리는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들였다.      


어제 《동물농장》에 최초의 고양이 1마리를 시작으로 어쩌다 6~7마리를 키우게 된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러다 우리 집도 나중에 거대한 캣타워가 되는 건 아닐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우리 부모님은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 부류이다. 그래서 고양이 두 마리가 안방 침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진을 보내주면 “아주 고양이 판이구나~”하며 살짝 비난을 담은 반응을 보내오곤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다른 고양이를 보면 “조이(첫째 고양이)가 참 이쁜 고양이구나.”하며 팔은 안으로 굽는 면모를 보이기도 하신다. 지난 추석 때, 딸이 한 마리를 더 키우고 싶다고 하자 “고양이 두 마리 되면 너희 집에 안 온다.”라고 하셨지만, 로이(둘째 고양이) 사진을 보내주면 막상 귀여워하시고, 다가오는 설날에 우리 집에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다.

     


직접 키우지 않는 부모님도 고양이에 대한 반응이 우리가 키우기 전과 후로 이렇게 다른 걸 보면 반려동물의 힘이 꽤나 큰 게 분명하다.      


나에게 반려묘는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소파에 앉아 있으면 가끔 조이가 다가와 얼굴을 들이대며 애교를 부리다가 내 배 위에 턱 하니 자리를 잡는다. 털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면 가르릉 소리를 내며 눈을 감는다. 그때 나는 내 몸이 따뜻해짐과 더불어 내 마음도 따뜻해짐을 확실히 느낀다.      


마른 멸치를 좋아하는 조이는 내가 멸치 국물을 내려고 냄비에 물을 받는 순간 귀신같이 알고 구석에서 쫓아 나온다. 멸치의 머리와 내장과 뼈을 제거하고 반으로 갈라 먹기 좋은 각도로 입에 가져다주면 헥헥 소리를 내며 잘도 먹는다. 멸치를 쥐고 있던 내 손가락에 조이의 혀가 닿을 때 까끌까끌 거리기도 하지만 부드럽기도 하다.    

  

로이의 발바닥은 귀여움의 극치이다. 분홍분홍한 색깔하며 말랑말랑 젤리 같은 감촉에 동글동글한 모양, 그 사이로 비죽비죽 자리 잡은 새하얀 털, 그리고 가끔 기지개를 켤 때 쫙 펴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사료와 간식 외에는 마른 멸치 밖에 안 먹는 조이에 비해 로이는 잡식성이다. 우리가 식사할 때면 어김없이 식탁 밑에서 “냐옹 냐아옹”하며 우리의 관심을 끈다. 생선을 구운 날은 당연히 뼈를 발라 따로 주고 간이 덜 된 부드러운 음식은 먹나 안 먹나 궁금해 몇 번 줘봤는데 주는 족족 일단 피하지 않고 입에 넣어보는 모습이 참 기특하다.     


처음에는 로이를 제법 경계하며 때로는 못살게 굴던 조이가 이제는 로이와  공간에서 함께 자기도 하고 자기 먹이통과 배변통까지 기꺼이 내어주기도 하고 그루밍을 해주는 모습을  때면 대견하고 흐뭇하기도 하다.            


반려묘들의 재롱과 가끔씩의 말썽 덕분에 가족 간의 대화거리가 생기고 외동인 딸이 집에서 조금이라도 덜 심심할 수 있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20년, 우리 집에 들어온 두 마리 고양이 덕분에 내 메말랐던 감정이 조금 더 짙어지고 깊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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