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히어 Jun 03. 2021

잘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얼마 전 운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 ‘나도 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날따라 정말 궁금해서 내가 트랙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재어보았다. 한 바퀴를 걷는 데는 약 6~7분, 두 바퀴를 뛰는 데 약 7분. 그렇다면 나의 뛰는 속도는 걷는 속도의 두배. 500m 트랙을 3분 30초 만에 뛰는 속도는 약 1분에 140m. 42.195km를 2시간 10분에 주파하는 마라토너들의 속도는 42195 나누기 130이니까... 음 엄청 빠른 거구나.. 이런 숫자와 생각들이 뛰는 동안 머릿속을 막 돌아다녔다.     


또 내 머릿속에 숫자들이 막 돌아다닐 때는 가끔 운전할 때, 아니 더 정확히는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갈 때, 앞에 있는 다른 차의 번호판에 적힌 숫자들을 내 나름대로 조합해가며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1단원 자연수의 혼합계산에 나올 법한 다양한 식을 만들어보곤 한다.     


숫자와 관련된 어린 시절 에피소드가 문득 떠오른다. 아마도 7살 때, 유치원이 끝나고 동네 친구 집에서 놀다 집에 저녁 6시까지 오기로 엄마와 약속을 했는데, 내가 딱 6시 정각에 집으로 들어오자 엄마가 기특해하며 나의 철저한 시간 및 숫자 관념을 두고두고 칭찬했었다. 돌이켜보니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을 때였고, 이 또한 나의 기억이 잘못된 걸 수도 있지만 친구네 집에서 우리 집은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으니 나는 친구와 놀면서도 몇 시 몇 분에 그 집을 나서야 우리 집에 6시에 도착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때 이후로 나는 죽 시간 약속을 웬만하면 지키려 노력하는 편인대, 혹시라도 못 지킬 것 같으면 아예 약속을 미리 깨버리는 것으로 나 스스로 시간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으로 포지셔닝 해왔다. 하지만 이런 나도 정말 한수 위다 느끼게 한 친구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반에 만화를 잘 그리는 친구가 그 친구의 캐릭터를 그린 후 얼굴 근처에 말풍선을 달아 “서둘러~7분 남았어!”라고 남긴 글은 우리들 사이에서 꽤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살던 그 친구의 하루는 남들보다 더 알찼었겠지?     


다른 글에서 몇 번 썼듯이 나는 24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자의 또는 타의로 꽤나 자주 직장 또는 하는 일을 바꿔왔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올해로 3년 차 인대 왠지 더 오래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수학을 가르친다는 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근무시간을 내가 정할 수 있어서.      


일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 평일 낮시간대는 초등학생들 방문수업, 평일 저녁 및 주말에는 중고등학생 및 해외 거주 학생들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아이가 등교하는 월화수는 나도 수업이 하루에 5~6개로 많은 편이고, 온라인 수업을 듣는 목금에는 하루에 3~4개, 주말에는 하루에 1~2개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내 스케줄러에는 일주일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업 일정이 등록되어 있는데 그렇게 빽빽한 나의 일정을 보면 묘하게 뿌듯하기도 하고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한때 틈만 나면 주식 어플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제는 스케줄러 어플에 들어가곤 한다.


5월 일정

     

이 일이 좋은데 필요하기까지 한 이유도 있다. 나의 성향상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아이의 공부에 지금처럼 관여를 안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식의 인생을 결정해 줄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같은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인생을 먼저 살아온 선배이자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항상 지켜보고 지지해줄 수는 있지만 최종 선택은 결국 본인이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내 삶이 더 중요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을 전적으로 맹신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부도 본인이 하는 거지 하라고 한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나라고 생각해왔지만, 매일매일 내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왜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어떻게든 안 하려고 꾀를 피우는데 집에서 그런 자녀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강압적으로 누르기만 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다 보니 어찌 되었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주양육자의 역할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중학교 때 학원에서 인수분해 진도를 나가는데 이해를 못해 집에 돌아와 승질을 부리자 화이트보드를 사 와 인수분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줬었다.


그 정도의 정성과 실력을 동시에 갖춘 엄마의 영향을 나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나 보다. 내년이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의 수학 실력이 요즘 들어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제집 한 권을 더 사서 틈틈이 풀리고 틀렸거나 모르는 문제를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참,,, 나는 다른 아이들 수학을 이렇게나 많이 가르치고 있으면서 내 딸의 수학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아니면 우리 팀의 다른 쌤에게 우리 애 과외를 맡겨야 하나 요즘 고민 중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딸이 내 말에 큰 거역을 안 하고 따라와 주는 편이다. 어젯밤 자기 전, 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오늘 있을 수학 서술형 평가에서 나올 예상 문제를 몇 가지 집어 주었다. 다 듣고 난 딸이, “역시, 수학 선생님!” 하며 뿌듯해했는데, 오늘 평가를 잘 보았을지 궁금하다. 딸만 잘 따라와 준다면 수학은 내가 죽 가르쳐도 되겠다 싶은데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10년이 지나서야 와 닿은 “무리하지 말자”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