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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May 17. 2021

10년이 지나서야 와 닿은 “무리하지 말자”의 의미


무려 보름 만에 아침 운동을 하게 되었다.    

  

오전 10시부터 화상회의가 있는 날이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4월 마지막 주부터 5월 둘째 주까지 나름 바빴다. 5월 초 4박 5일의 일정으로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 맞이 부산 친정엘 다녀왔고, 그 일정을 위해 4월 마지막 주에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 바빴고, 다녀와서도 시댁 행사 및 궂은 날씨 탓에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4월까지는 아침에 겨울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갔었는데, 5월이 되니 그건 너무 더울 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 자신은 없었지만 그나마 있는 좀 얇은 운동복이 그것뿐이라 딱 달라붙어 하체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레깅스 운동복을 입고 나갔다. 등교 준비를 하던 딸이 “엄마, 딱 달라붙는 거 오랜만에 입네?” 하고 변화를 알아봐 준다.      


그 레깅스 운동복이야말로 실로 오랜만에 입는 거였다. 한동안 몸은 참 여유롭던 시절, 아침마다 필라테스를 하고 아는 언니와 커피도 한잔 하던 시절, 즐겨 입던 그 운동복은 역시 운동복답게 오랜만에 입었지만 몸에 착 달라붙어 마치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걸 입고 뛰어서일까 그래도 보름 만이라 몸이 많이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뛰어졌다.     

 


잘 뛰어져서 그랬는지 한 바퀴를 뛰는 동안 그동안 많이 못했으니까 ‘오늘은 좀 무리해볼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그전에 뛰었던 페이스대로 1바퀴 걷고 1바퀴 뛰고를 유지했다.      


“무리하지 마”라는 말은 나로 하여금 항상 어떤 이를 떠올리게 한다. 대학원 동기이자 나보다 2살이 어리고 내 또래의 딸과 그보다 2살 어린 아들을 키우며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로 인해 육아휴직 중인 그녀는 10여 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인생의 좌우명이 “무리하지 말자”였다.   

   

처음 그녀의 좌우명을 들었을 때 나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이었는데, 인생의 좌우명 치고는 너무 밋밋하다 내지는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좌우명은 대부분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그녀를 어느 정도 아는 나로서는 그 좌우명이 참 그녀답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큰 틀에서 보면 평화롭고 안정적인 무리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 그 자체이다.      



최근에 오랜만에 단 둘이 그녀를 만났다. 아이들 학교 보내 놓고 3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아이 엄마들은 그런 시간을 참 좋아한다. 처음 만난 후로 어느덧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그래도 꽤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기분으로 나를 만났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00아, 이제는 너가 말한 ’무리하지 말자‘의 의미를 나도 조금 알 것 같아.’     


당시 함께 공유했던 나의 좌우명은 ‘죽어야 끝난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흠칫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좌우명이 마음에 들고, 날이 거듭될수록 더 와 닿는다. 심지어 최근에 듣고 있는 회사 교육에서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는 문구를 들었을 때 나에게는 그것이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로 들리기도 했다. 나의 죽음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공개되어 있지만, 나에게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죽음은 열심히 살기 위한 원동력이라고나 할까. 이 내용은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보다 소상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내 블로그 속 about DEATH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글


아무튼 그런 좌우명을 말하는 나였으니 “언니, 저는 ‘무리하지 말자’가 제 좌우명이에요.” 했을 때 사실 속으로 어쩌면 겉으로도 “넌 너무 안정추구형이야.” 그랬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40줄에 들어서고 보니 무리라는 걸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뭐 이제는 그럴 기회 자체가 코로나 덕분에 거의 사라졌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지기 싫어 새벽 3~4시까지 술을 마시는 무리를 하면 그 다음날 하루 종일 몸도 마음도 괴롭다. 또 넷플렉스로 재밌는 드라마를 볼 때 1회만 더 1회만 더 하다가 동이 터오는 걸 보면 역시 다음 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요즘 주식이다 코인이다 안 하는 사람이 없다지만 나는 작년 가을에 얼마 되지 않던 주식을 다 처분했는데,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내게 맞지도 않는 투기를 조금 더 하는 무리를 했었다면 아마 지금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원금을 다 날리지 않았을까 싶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운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을 위한 것이지 급격한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 와서 내가 한여름이라고 핫팬츠나 초미니에 하이힐을 신고 가로수길을 갈 일은 없지 않겠는가. 아침마다 걷고 뛰면서 가끔 등산도 하고 계단도 오르내리면서 기초체력을 높이고 더불어 군살을 빼는 정도면 나에게 충분하다. 그리고 그 정도로 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매일 운동을 2~3시간씩 한다면? 아마 오래 못할 게 뻔하다.      


현실적으로 나는 내 인생에서 이제 반(또는 그보다 조금 적게) 정도를 살았다고 본다. 앞으로 남은 반 또는 그 이상을 지금까지 보다 더 젊고 건강하고 활기차고 나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든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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