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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Aug 26. 2021

다시 시작한 걷기

<두 발의 고독>을 읽고


몇 달 전 아침 라디오에서, 뇌전증 판정을 받은 중년의 남성이 그날 이후 걷기 시작해 많은 곳을 걸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책, ⌜두 발의 고독⌟을 소개하는 내용을 들었다. 그때 한창 아침마다 걷기에 빠져있던 때라 당장 도서구매사이트 장바구니에 그 책을 담았고 6월 4일에 다른 책들과 함께 주문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이 책을 다 읽었다. 어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다짐을 했다. 다시 걷자!     


그동안 야외 운동을 하기에 날씨도 너무 더웠고 (그래서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필라테스 강좌에 등록해 나름 주 2회 실내 운동이라도 하기는 했다), 여름방학 기간이라 나도 오전에 수업이 있거나 딸과 시간을 보내야 했었고 (방학 동안 딱 한번 아침에 딸과 함께 운동을 하기는 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늦잠을 잤다), 이번 주 월요일 드디어 기다리던 개학을 했지만 코로나 4단계로 2주 동안은 전면 원격수업이어서 딸이 집에 있는대다 3일 동안 비까지 내려 걷거나 뛰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잠시나마 사라졌었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 정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잠자고 있던 내 안의 방랑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 발의 고독, 1부 도보여행길 중


그래서 오늘 무려 두 달여 만에 걸었다.      



기준에 따라서는 매우 적은 양이지만, 나 스스로는 다시 걸음을 시작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심지어 걷고 돌아오는 길에 집으로 가는 왼쪽 길과 트랙으로 가는 오른쪽 길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을 선택했고 뛰기까지 했다. 두 바퀴는 뛰어보려 했으나 한 바퀴밖에 못 뛰었지만, 뛰었다는 데 역시 의미를 부여해보련다. 내일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뛰면 되니까.      


두 발의 고독, 3부 정신적 우회로 중


작가는 걷기와 달리기를 비교했고, 자신은 걷기를 더 선호한다고 했다. 걷는 동안과 달리는 동안 생각의 차이를 비교해보기 위해 나도 신서유기의 강호동처럼 (전날 저녁 많이 먹고 잤을 때와 적게 먹고 잤을 때 중 어떤 것이 다음 날 아침 더 배고프게 만드는가?) 임상실험을 해보았다.      


걷는 동안 내가 하는 생각들과 달리는 동안 내가 하는 생각들을 비교해보았다. 걷는 동안에는 주로 3가지 생각을 했다. 집에서 줌으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을 딸 생각, 월요일 팀회의에서 발표할 자료 만들 생각, 걷고 돌아가 쓸 글에 대한 생각. 그 생각들 사이사이로 무작위로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에 계속 내린 비로 나름 촉촉해진 공기와 땅이 참 상쾌하구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왜 운동할 때 음악 또는 뉴스를 다른 사람들 다 들리게 틀어놓는 걸까, 내가 스트레칭을 하는 정자(반환점)에 오늘은 사람들이 있을까 없을까 (사람들이 있으면 스트레칭을 마음껏 못하게 된다), 반환점 이후에 어떤 코스로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 볼까 등등.    

  

반면 달리는 동안은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호흡과 동작에 집중하느라 실제로는 숨이 차서 다른 생각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트랙 바로 옆의 중학교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아 한 학년씩은 등교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조용한가 수업시간이라서 그런가 정도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옮긴이는 번역을 마친 후 배낭을 꾸려 홀로 설악산 등반을 떠났다. 설악산 등반에 비할 바 아니지만, 나도 오늘 아침 짧게나마 지구 반대편의 작가와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한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소박한 바람 중의 하나는 동네 뒷산 말고 우리 동네에 있는 제대로 된 산 정상을 홀로 가보는 것이다. 예전에 주말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갔던 적이 있는데 정상까지 못 가고 반 정도 되는 지점에서 돌아왔었다. 이제 다다음주부터는 딸이 주 3일 등교한다고 하니 그때 중에 하루 꼭 실행해보리라.      


두 발의 고독, 에필로그 중


책의 마지막까지 나와 딱 일치하는 생각을 활자화해준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월요일에 있을 팀회의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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