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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10. 2021

나이 듦에 대하여

인생은 직진만 가능하니까



최근에 남편의 신중함(또는 게으름)으로 인해 시부모님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 후 지난 주말, 오랜만에 시댁에 가게 되었다. 결혼 초였다면 시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뵐까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겠지만 이제 나도 어느덧 결혼 13년 차라 그런 마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집에 누가 사과를 한 박스나 보낸 게 있어 10개를 종이가방에 넣어 들고 가며 만에 하나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면 자연스럽게 이걸 드리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역시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여느 때처럼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시는 걸 보며 역시 가족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어머니가 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오셨다. 뭔가 하고 보니 예전 사진들이었다. 그냥 우연히 들고 나오신 걸 수도 있지만 같은 여성의 직감으로 내가 사과를 준비했듯 어머니는 이번에 우리가 오면 함께 예전 사진들을 봐야겠다고 혼자 준비하셨구나 싶었다.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본 것들이지만 딸이 신기해하며 관심을 보이길래 나도 더 오버해서 재미있어하며 이건 언제예요? 이건 누구예요? 질문을 쏟아냈다. 역시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주인공이니까 어느 정도의 연출과 연기가 필요한 거였다.      


남편과 3살 위 아주버님이 지금의 딸보다 어린 시절의 사진들 속 시부모님은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젊은 나이였다. 그 얘기를 꺼내자 시어머님은 새삼 내 나이에 놀라면서 사진 속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물끄러미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언젠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똑같이 “지금의 나보다 어릴 때네~” 하며 함께 놀랐던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인간이란 나뭇잎과도 같다.
무성함 뒤에는 반드시 쇠퇴가 따른다.
- 호메로스     



엄마도 시어머니도 이제는 무성함의 시기는 지나간 나이이다. 내 나이는 글쎄 엄마나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직 한창때이겠으나 20~30대 기준으로는 그렇지 않을 나이이다.      


어제 라디오를 듣던 , 무릎을  치던 순간이 있었다. 50 생일을 앞두고 우울한 마음을 위로해 달라는 청취자의 사연에 이제  50세를 넘긴 DJ  “50 생일 별로 슬프지 않습니다. 60 걱정하게  있습니다. 그렇때문에 50 일단 겁먹지 말고 가세요. 왜냐면 인생이 후진이 없어요. 직진만 해야 되기 때문에 그냥 앞에 나올 직진 길만 걱정하면 되지 방지턱 넘고 나면 다음 방지턱만 걱정하면 됩니다.”      


라디오는 오후 4~6시 KBS 쿨 FM의 <미스터 라디오>고 위 DJ는 개그맨 윤정수이다. 처음에 내 기억에 의존해 내용을 쓰다가 어플을 깔고 방송을 다시 정확히 들어보니 위와 같이 말했었다. 그동안 라디오를 간간이 들으며 파악한 바로 윤정수는 아주 깊이 생각하고 말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저 말이 더 와닿았던 거 같다. 그냥 청취자의 사연에 툭 하고 나온 말속에 인생의 진리가 들어있다니. 인생은 직진만 가능하다 돌이킬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는 표현은 많이 들어봤지만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시기를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순간에 비유한 센스가 좋았다.


                                                                                      

운전을 하다 과속방지턱을 만나면 순간 덜컹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다. 그 짧고 낮은 턱을 지나면 다시 또 평탄한 길이 당분간 이어진다. 내 인생의 과속방지턱은 언제였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9살에서 10살. 그때는 정말 아무 걱정 없던 시기였다. 19살에서 20살.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와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시기였던 것 같다. 29살에서 30살. 새로운 직장 그리고 결혼으로 기억되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였다. 39살에서 40살. 역시 새로운 직장과 함께 바쁘고 활기찼던 시기였다. 앞으로 다가올 49살에서 50살은 어떨까? 나는 그때 또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는 앞으로 몇 번의 9살이 남아있을까? 49세, 59세, 69세까지는 그려지는데 솔직히 그 이후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과속방지턱은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는 아니었던 거 같다. 일부러 맞추기도 힘들겠지만 돌이켜보니 약간 소름이 돋는다. 나는 지금까지 16살, 26살, 36살에 과속방지턱을 만났었다.  

    

중3에서 고1로 넘어가던 시절. 나름 외고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나 때부터 입시전형이 바뀌어 외고 자체 시험이 폐지되고 연합고사 점수로 외고를 가게 되었다. 물론 연합고사를 잘 보았으면 되었을 텐데 한 문제 차이(정말 정확하게 1점 차이)로 내가 지원했던 외고에 떨어지게 되는 내 인생의 첫 실패를 경험한 시기였다. 그렇게 일반고를 가게 되었고 학교의 분위기에 휩쓸려 나름의 일탈을 일삼던 시기였다.   

   

26살. 그때 나는 다니던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번역가가 되겠다며 번역시험 준비를 하다가 또 돌연 학부의 전공과는 1도 연관이 없는 전공으로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던 시기였다. 물론 다행히 대학원에 입학을 하게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26살 그 시기는 나름 암울했던 때였다.      


36살. 그때도 역시 좋은 조건의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석사를 전공했던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더 공부하겠다며 스스로 학생의 길을 선택했다가 한 학기만에 제 발로 걸어 나왔던 때이다. 이 3번째 과속방지턱은 내 인생에 꽤나 큰 타격을 입혔다. 과속방지턱을 넘기 직전에 차가 멈춘 상태로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그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어서 39살이라는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늦지도 않은 나이에 나에게 맞는 일을 할 기회를 맞이하게는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패턴대로라면 앞으로 5년 뒤를 나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얼마나 높은 또는 미처 예상치 못한 과속방지턱을 만날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앞으로 5년 동안은 평탄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인생이라는 게 또 꼭 지금까지의 패턴과 똑같이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시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과 라디오 DJ의 툭 던지듯 내뱉은 한 마디로 인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이제 슬슬 일 모드로 전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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