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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27. 2021

무엇이 되기보다 무엇을 하기

조금씩 천천히 스며든 드라마, <인간실격>



2018년, 페이스북에 시를 한 편 올렸다. 대학 동기가 댓글을 달았다. 시인되는거니. 내가 답을 했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지난주 일요일에 종영된 드라마 ⌜인간실격⌟. 마지막 회에 아부지의 마지막 길 위로 부정이의 담담한 목소리가 입힌다.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내내 눈으로 몸으로 삶으로 얘기해왔었다는 걸

아주 조금씩 천천히 깨달아 가고 있어요.”     


3년 전 페이스북에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라고 댓들을 달았을 즈음, 그것은 내가 읽고 있던 김동영 작가의 책 제목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블로그와 브런치를 뒤져보니 그 책에 대한 글은 2019년 10월에 남겨져 있다. 책을 알기 전에 내가 먼저 이 문구를 쓴 건가? 아니면 책을 먼저 사놓고 다 읽은 것이 2019년인 건가?      



아직도 채워야 할 네가 좋아 (brunch.co.kr)



2018년이면, 무엇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져버린 나 자신을 괴롭히다가 위로하다가 실망하다가 어이없어하다가 어쩔 수 없었다고 자조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가 그렇게도 와닿았었다.

      

3년이 흐른 지금 그때와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다. 이제 나는 나름대로 무엇이 되기 위해 바쁘게 살고 있다. 물론 그 무엇이 예전과는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를 위해 어딘가를 향해 목표도 세우고 실행도 하고 그러면서 어떤 누군가에게는 꽤나 멋지게 보일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최근에 <인간실격>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한줄평을 남기자면 아주 조금씩 천천히 스며든 작품이다. 7회에서 ‘가슴이 허하다’라는 기분을 심장에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느낌이라고 표현한 대사가 나오는데, 정말 시냇물처럼 졸졸졸 조용히 차분히 얌전히 끊임없이 내 맘속으로 흘러들어온 작품이다.  


    

부정이의 유서 중 일부가 드라마 초반과 후반에 등장한다.  

    

“언젠가 마흔이 넘으면 서울이 아닌 어느 곳에 작은 내 집이 있고

빨래 널어 말릴 마당이나 그게 아니면 작은 서재가 있고

아이는 하나 아니면 둘

그리고 운이 좋으면 내 이름의 책이 있는        

그게 실패하지 않은 삶이라고

그게 아버지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그냥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대사는 나를 위로해주기도 했고, 아프게 하기도 했다.      


마흔이 넘은 나는

서울에 자가, 경기도에 전세를 가지고 있고

빨래를 말려주는 건조기와 작은 서재를 가지고 있고

딸이 하나 고양이도 한 마리

그리고 내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브런치)도 있으니까

부정이의 기준에서는 실패하지 않은 삶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부정이처럼 실패든 성공이든 삶에 대한 기준이 있는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 무엇 일지에 대해 얼마나 고민해왔는지가 떠오르지 않아 심장에 시냇물이 흘렀었다.  

    

그동안 나는 사람의 삶을 성공이냐 실패냐로 나누는 것 자체를 부정해왔었는데, 그건 어쩌면 딱히 기준도 못 정했고 설사 기준을 정한다고 해도 이미 나 스스로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고 기준 따위 없는 우물 안의 세상에서 나 혼자 편하게 지냈던 건 아닐까.


 



의사나 변호사, 교수 또는 그들의 배우자가 되어 있는 내 친구나 지인들의 삶이 부럽지 않다고,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과 아픔이 있는 거라고, 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았더라도 내 삶이 제일 좋다고 했던 것이 과연 100% 진심이었을까?

      

밀레니얼 세대인 나는 언제나 나의 행복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왔다. 많은 여성들이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되는 모성애라는 감정도 내가 특별히 낮은 지는 모르겠지만 높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를 언제나 입에 달고 사며 자녀를 위해 나아가 남편이나 다른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을 어느 정도 비웃거나 얕잡아 보기도 했었다. 가족에게도 그러한데 가족이 아닌 타인, 내가 아닌 그 어떤 누구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절절히 고민해본 적이 있었는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개인주의의 탈을 쓴 이기주의자인 것이다.   

   

몇 년 전, 그 무엇이 되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도 나를 위한 결정이었지, 남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다. 남을 위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은 일방향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고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돌아간다고 과연 내가 다른 선택을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다른 행동을 할까? 아니면 또 다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경험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지나온 시간을 통해 앞으로 또 다른 비슷한 상황이 닥쳐왔을 때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왕 무엇이 되지 않는 삶을 선택했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을 하기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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