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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흔_12

마흔살 생일파티

by 나우히어

자신까지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모두들 더 이상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음을 알고 수민이가 상황을 정리한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은재랑 륜이 남편 많이 기다리겠다.
유정아, 잘 마무리하고~오늘은 이만 헤어지자.

막상 말하고 나니 별거 아닌 것도 같은 각자의 고민들과 비밀들을 잔뜩 쏟아낸 뒤 어쩐지 그 누구도 단체 카톡에 글을 남기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각자의 상황들을 정리하고 수습하고 다음 스텝에 대비하느라 바쁘겠지 싶어 서로를 배려하는 거라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오랜만에 단체 카톡에 새 글이 올라왔다.


역시 그래도 우리 중에 제일 다정한 수민이었다.


얘들아, 다음 주가 그날이야.

우리는 30살 때까지는 1년에 무슨 일이 있어도 5일은 꼭 만났었다. 바로 각자의 생일날. 수민이 전학 온 고등학교 2학년 이후 13년 동안 잠깐이라도 생일날은 함께 모여 케익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빌고 고깔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고 케익을 얼굴에 묻히며 장난을 쳤었다.


13년 동안 5명을 제외한 등장인물은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졌지만 매번 5명이 환하게 웃는 사진은 꼭 남겼었다. 그러다 생일이 제일 늦은 유정이 서른이 되고, 은재부터 생일날 함께할 가족이 생기면서 1년에 5번은 무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생일 축하파티는 1년에 2번, 상하반기로 나누어하게 되었다.

상반기에는 1월생인 유정, 4월생인 수민, 5월생인 은재의 생일 파티를, 하반기에는 9월생인 효인, 10월생인 륜의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흔 살, 쉰 살, 예순 살 생일 때는 5명의 파티를 함께 하자고 했었다. 날짜는 수민이가 전학을 왔던 그리고 누구의 생일도 아닌 8월의 마지막 주말로. 그렇게 마흔 살 우리들의 생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생일이 별거냐, 매년 있는 건데, 싶다가도 막상 나이가 들수록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는 점점 줄어들고 ‘고객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늘어나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싶어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한 살 더 먹는구나 싶은 마음에 마냥 즐겁지가 않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그날만큼은 다른 생각 말고 고등학교 때처럼 케익 하나만 앞에 두고도 즐겁게 생일을 보내자고 약속했었다.

그런 우리들의 마흔 살 생파가 얼마 안 남았는데 효인의 전화기는 아직까지 꺼져 있고, 아무런 소식이 없는 상태이다.


효인이 없이 우리끼리 할 거야?

행동파인 륜의 질문에 다들 대답이 없다.

지금 오랜 친구가 연락이 끊긴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 생일파티가 중요한 건가, 이쯤 되면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래도 우리끼리라도 해야 나중에라도 효인이가 덜 미안해하려나, 효인이 어머니는 그래도 소식을 알고 있지 않을까, 혹시 성준에게는 연락을 했으려나, 역시 영양가 없는 잡생각들만 떠오를 뿐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그 누구도 답을 하지 못한다.


마흔 정도 되면 더 이상 갈팡질팡 하는 일 없이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앞에 두고 걷게 될 줄 알았는데, 이건 뭐 20살 때보다 30살 때보다 더 앞이 안 보이는 느낌이다. 도대체 인생에 정답은 언제쯤 알게 되는 걸까? 정답이 있기는 한 걸까?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 이해하게 되는 걸까?

다들 또 이렇게 헤맬 땐 의외로 심플한 유정이가 해결사다.


우선 뭐라도 하나는 볼지도 모르니까
메일, 문자, 카톡으로 시간이랑 장소 남겨두고
우리도 그날 모이자. 같이 기다려보자 효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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