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인의 등장
효인이 목소리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아니 남자 목소리인 것도 같다. 우리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문이 열렸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효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효인이 아니었다.
효인은 직업적 특성상 거의 항상 정장 차림이었다. 강남의 잘 나가는 입시학원에서 강의를 개설했다 하면 빛의 속도로 마감되는 잘 나가는 강사로 10년 이상을 일하는 동안 효인은 우리를 만날 때도 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다른 옷은 사도 어차피 입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가끔 시간이 나서 쇼핑을 하러 가면 항상 정장만 고르게 된다고 했다. 또 실제로 정장이 참 잘 어울리는 몸이기도 했다.
머리는 항상 중단발에 매직기로 쫙 펴져있었고, 그 흔한 염색도 한번 안 했으며, 시력이 좋은 편이지만 알 없는 뿔테 안경을 착용했고, 귀걸이도 언제나 진주나 작은 큐빅 같은 귀에 딱 달라붙는 것만 했었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나타난 효인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효인이었다.
우선 머리는 탈색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오묘한 색깔에다 귀걸이는 저게 귀에 달려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늘어진 데다 심지어 양쪽의 모양이 달랐으며, 팔에는 주렁주렁 팔찌가 여러 개, 옷은 또 스. 우. 파에서나 보던 소위 말하는 힙한 스타일 그 자체였다.
다들 오랜만에 본 반가움보다는 180도 돌변한 모습에 대한 놀라움으로 말문이 막힌 채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새로운 상황에 항상 제일 먼저 적응하는 은재가 첫마디를 꺼냈다.
효인아~이게 얼마만이야, 걱정했잖아~!
미안해, 다들 신경 썼지.. 나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기존에 알던 사람들 연락처 싹 다 지웠거든? 근데 너네들 연락처는 못 지우겠더라. 말도 없이 카톡 나간 거 미안. 그리고 기다려주고 연락 계속해준 거 너무 고마워.
우리 사이에 오글거리는 감정 표현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고 생각할 즈음, 유정이가 질문을 쏟아냈다.
너 근데,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네?
뭐야 뭐야, 연하 남친이라도 생긴 거야?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우리랑 연락도 끊고 잠수 탄 거야?
역시 유정이가 이런 쪽은 촉이 참 좋아~
나 오늘 소개할 사람 있어, 들어오라고 해도 돼?
뭐야 일행이 있었어? 어차피 우리의 허락을 구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미 효인은 문을 열고 일행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우리 눈앞에 나타난 또 다른 사람은 쇼미더머니에서 갓 튀어나온듯한 스트릿 패션 피플 그 자체였다.
왓썹~누나들, 반가워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오늘 효인이 생파라고 해서 같이 왔어요,
제 친구들도 오고 있는데 괜찮죠?
왓썹이라고? 저런 말을 실제로 쓰는구나~효인이? 딱 봐도 열몇 살은 어려 보이는데 이름을 막 불러? 친구들? 그럼 걔네들도 내 이름을 막 부르게 되는건가?
남편 포함 3번의 연애 상대 모두 나이가 많았던 륜, 연하라고 해봤자 2~3살 연하 정도까지만 사귀어봤던 은재, 우리 말고는 심지어 가족과도 그다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연애는 그냥 적당히 비슷한 사람 하고만 했던 수민, 그나마 우리 중에 제일 자유로웠던 유정조차도 20여 년 전 홍대 앞 클럽에서 봤던 것 같은 비주얼의 청년이 이름을 부르며 자연스럽게 효인의 허리에 팔을 두르자 기분이 묘해졌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일단 멀쩡히 살아있음에 그리고 연하남(들)을 데리고 와 덩달아 우리까지 어려진 느낌을 만들어줌에 다들 기분이 들썩들썩거리고 있는 와중에, 륜이 정색을 한 채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우리끼리 있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