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가장 젊은 날
시끌벅적,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던 마흔 살 생파가 끝나고 다들 한동안 조용했다. 하지만 효인이가 다시 초대된 단체 카톡방이 조용했던 것이지 각자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갔다.
은재는 블로그에 올린 글이 독립출판사 기획자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작가의 삶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륜은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남편의 두 번째 편의점을 물색하러 다니느라 바빴고, 유정은 미국 갈 준비와 그동안 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를 뒤늦게 하느라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랐으며, 수민은 남동생과 화해를 시작으로 늦었지만 아픈 엄마와 조금 친해져 행복해하며 슬퍼했으며, 효인은 정우의 새로운 사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20대 때는 40대가 되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을지라도 바라던 것을 어느 정도 갖추어서 조금은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었는데, 이제 막 40대가 된 그들은 모두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활기가 넘쳤다.
그런 와중에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50대 때는 또 어떤 모습일까, 60대, 70대, 80대 때는? 그러다가 또 어차피 지금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 생각을 멈춘다.
유정의 출국 전날에야 그들은 다시 모일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비행기라 함께 밤을 새우고 공항에 같이 가 배웅을 하기로 했다. 20대 초반 이후 5명이 한 공간에 누운 것이 처음이었다. 제일 편한 잠옷을 입고 머리는 모두 질끈 묶고 얼굴에는 팩을 붙이고 소파에 다리를 올린 채 바닥에 등을 누인 5명. 서로의 발가락을 건드리며 까르르까르르.
은재 : 우리 언제 또 이렇게 같이 1박할 수 있을까?
유정 : 뭐야~가을에 미국 다 같이 오기로 했잖아~그냥 하는 말이었어?
륜 : 아니 꼭 가야지. 그런데 또 솔직히 4명 모두 일정을 맞춰서 미국을 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
현실적인 륜의 말에 다들 조용해졌다.
효인 : 우리 너무 현실과 타협만 하고 살지는 말자. 나 봐. 십수 년을 한 가지 일만 주구장창 해왔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낀 적은 없어. 그런데 연하 남친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아보니 내가 그동안 참 바보같이 살았구나 싶어. 우리 좀 더 편하게 좀 더 세상을 즐기고 좀 더 가볍게 살자구. 그렇게 살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수민 : 그래, 나도 한마디 할게. 내가 이런 말 할 입장은 아니지만, 가족한테 잘하자. 가족은 뭐랄까 그냥 또 다른 나인 것 같아. 내 가족을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건 사실은 내가 나를 싫어하고 불편해해서였던 거라는 걸 알았어.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까 나를 대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편해지더라. 나보다 다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하기~
그렇게 그들의 살아있는 날 중 가장 젊은 날이 또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