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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08. 2022

나에게 한 거짓말 vs 남에게 한 거짓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괜찮을까요?” 내가 윌슨에게 물었다.
“해로울 게 뭔가요? 두려움을 잠재워주고, 미래에 적응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봐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Lulu Miller          



밤 12시가 다 된 시각, 연인과 굿나잇 인사를 주고받는다.  

    

잘 자~꿈에서 만나~♡

내 꿈 꿔~♥     


다음날 아침, 굿모닝 톡이 온다.      


잘 잤어?     


순간 고민한다. 그냥 잘 잤다고 거짓말을 할까, 아니면 못 잤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거짓말을 하는 게 지겨워서 사실대로 말을 한다.     

 

아니 어제 3시간도 못 잤어..

왜?

뭐 좀 보느라.

뭐야~ 잔다 그래 놓고 거짓말했네?     


아,,, 솔직하게 말을 했는데 결국엔 또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나면 반드시 바로 자야 하는 건가? 아니면 “잘 잤어?”라는 모닝 톡에는 그냥 실제 상황 말고 의례적인 답을 하면 되는 건가?      



문자로 잔다고 해놓고 또는 자는 척을 하고 나이트나 클럽에 갔다가 걸려서 싸우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연애의 참견> 류의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그 상황에서 상대방이 화가 나는 이유는 자신에게 잔다고 거짓말을 하고 안 잔 것 때문인 걸까, 아니면 몰래 다른 이성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 있는 장소를 간 것 때문인 걸까. 아무래도 후자가 더 큰 이유겠지.      


그런데 이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많다. 늦은 시각 나이트나 클럽을 가는 것이 꼭 다른 이성을 만나기 위한 것 때문인가? 그냥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거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또는 춤을 추고 싶어서 간 것이라면? 나이트나 클럽을 가야만 다른 이성을 만날 수 있나? 만약 잔다고 하고 24시간 스터디 카페 가서 공부를 했다면 그건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게 되는 것일까? 아 공부할 거면 굳이 잔다고 하지 않고 처음부터 공부할 거라고 얘기를 하는 건가?      


어쨌든 그런 면에서 나는 예전부터 쿨한 편이었던 거 같다. 대체적으로 만났을 때 서로에게 집중 또는 충실하자 주의니까. 같이 있지 않고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을 일거수일투족 확인하고 확인받고 그런 관계는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꼭 연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부하 직원이 자리를 비우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상사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자리에 앉아 있지 않는다고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면 반대로 자기 눈앞에 있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최근에 마기꾼 vs 마해자 관련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누군가가 마기꾼을 사기꾼에 비유하며 사기꾼도 머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처럼 마기꾼도 코 윗부분이 괜찮아야 할 수 있다는 얘기에 다 같이 빵 터졌었다.      



사기꾼 하면 자연스럽게 거짓말쟁이라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그래서일까? 마기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말 참 잘 만들었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래서 나는 마기꾼인가 아닌가 꽤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고 심지어 친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그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내 외모에 대한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내가 마기꾼(->사기꾼->거짓말쟁이)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몇 번의 거짓말을 했을까? 세어 본 적도 없지만 실제로 세려고 해도 셀 수 없을 것 같다. 뭐 남들도 다 그렇다고 하면 애써 아니라고 내 스스로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지는 않겠지만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사람들이 일생동안 하는 거짓말의 횟수에 평균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 그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아웃라이어라는 것을.      


그런데 내가 했던 거짓말을 나에게 한 거짓말과 남에게 한 거짓말로 분류해보면 어느 쪽이 더 많을까?

      

흔히들 거짓말을 분류할 , 선의의 거짓말에는 착한 또는 하얀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괜찮다고 하고, 정말이지 악의가 다분한 거짓말만을 나쁜 ,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여긴다. 나도 그동안 그렇게만 분류해봤던  같다. 내가 했던 거짓말을 돌이켜볼 .      


그 기준에 의해 나도 남을 해하고자 하는 엄청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했던 적은 없으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왔다. 그런데 오늘 저 문장을 읽고 나에게 한 거짓말과 남에게 한 거짓말로 분류를 해보니 나의 거짓말은 단연코 남에게 한 거짓말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거 같다. (급 의문? 나에게 한 거짓말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있는건가? 이건 다음번 글쓰기 소재로 킵해둬야겠다)


    

그렇다면 나는 왜, 어떨 때 남에게 거짓말을 할까? 그냥 딱 떠오르는 이유, 떠오르는 순간은 ‘나를 위해서’이다. 나 편하자고 나 좋자고 나 쉬자고 남에게 했던 거짓말들. 거짓말을 했어도 상대방이 모르고 넘어가면 그건 진실이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어떤 드라마였는지, 책이었는지, 친구와의 수다 중에 나온 말인지, 아니면 내가 쓴 문장인가? 모르겠다.      


자기기만, 가면, 페르소나, 두 얼굴, 양파 같은 사람, 볼매, 빙산의 일각... 내가 나를 설명할 때 또는 남이 나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곱씹어보니 결국 저 말들은 거짓말쟁이의 살짝 고급지거나 아니면 살짝 장난스러운 표현인 거 같다.      



나는 오늘 하루 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남에게 하게 될까? 저의 거짓말을 듣게 될 사람들에게 미리 사과드립니다. 악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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