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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Apr 24. 2018

석가모니의 연꽃과 마하가섭의 미소

2018년 4월 23일 [인천In] 청년칼럼 기고


요새는 될 수 있는 대로 SNS를 자제하게 된다. 문득 뭐든 게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한 번 더 생각한다. 나는 왜 이걸 해야만 하는가, 이 행동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그게 보통은 아무 소용없거나, 긁어 부스럼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최근엔 많았던 것이다. SNS쯤이야 안 하면 그만이니까. 


그렇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밥 먹고 잠 자야 한다. 먹고 잘 집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는 부모 품을 벗어나야 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고, 상속받을 재산이 많지 않은 이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 누구나 살아있는 한, 살아있기 때문에 혹은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게 있다. 


나에게는 적어도 음악이 그렇다. 지면에 소개한 것처럼 나는 음악가다. 노래를 짓고, 공연을 하고, 음반을 만든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레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다. “어떤 음악을 하십니까?” 질문받는 순간. 이 숙명적인 순간에 어떤 대답을 해야 속이 시원할까. 소위 음악 한다는 사람들이 모이면 이 질문을 놓고 갖가지 장르와 시공간을 넘나든다. 하지만 어떤 말도 온전한 답이 되기는 어렵다. 그 답을 정해놓고 음악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고사성어를 좋아한다. 석가모니가 설법할 적에 대중들에게 연꽃을 들어 보였는데 그들 중 한 제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해하며 지었다는 미소를 이르는 말이다. 적절한 소통의 태도를 고민할 때 떠올리게 되는 격언이다. 마하가섭은 연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어떤 음악을 하십니까?”

음악을 계속하다 보니 대답하는 요령은 생겼다. 포크 음악을 한다고 대답하거나, 싱어송라이터라고 얼버무리거나, 그게 아니면 음원을 작업하고 유통해서 증명하는 게 비교적 속 시원한 대답이라는 것도 이제 안다. 내가 대답을 못 한다고 해서 당장 모든 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당장 나를 설명하지 못해 불안하고, 이해받지 못해 곤두박질치는 기분.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당혹감을 기억한다. 그래서 질문에 답하는 일은 때로 곤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 어떤 말도 실체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돌아봐야 한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을지, 난처함으로 다가오진 않았을지. 


물론 서로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긴밀한 소통의 기본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삶은 ‘나’로 살기 위해 자신를 증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당혹스런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우리 각자 마음의 연꽃을 떠올리면서 서로 조금 더 정중하고 다정한 소통의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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