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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Jan 15. 2019

스나크의 정체

2019년 1월 14일 [인천In] 청년칼럼 기고


 어떤 문장은 종잡을 수 없다. 어디로 뻗을지 모르니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잘 알려진 작가 ‘루이스 캐럴’은 어느 날 불현듯 이런 문장을 떠올렸다. “For the Snark was a Boojum, you see(보시다시피, 스나크는 부줌이었으니까.)”. 그는 자신도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 문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마지막 행으로 삼는 시 한 편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 그 시에 살이 붙고 붙어 결국 그 시를 마지막 연으로 하는 총 여덟 장의 연작시가 완성됐다. 루이스 캐럴은 자신의 작품 <스나크 사냥>의 탄생 비화를 그렇게 기록한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나크 사냥>은 루이스 캐럴의 ‘넌센스’가 집대성된 걸작으로 읽히고 있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열 명의 선원이 ‘스나크(Snark)’를 사냥하러 떠나는 모험 서사의 외관을 띄고 있다. 작중 ‘스나크’라는 존재는 정체불명의 짐승이며, 때론 (꿈속에서) 말을 하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고, 마지막 문장에서처럼 ‘부줌(Bujum)’일 때의 스나크를 잡는 자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게다가 선원들이 스나크를 잡기 위해서는 “골무로 찾고, 신중히 찾고, 포크와 희망으로 안심시키고, 목숨을 위협하고, 웃음과 비누로 유혹”해야 한단다. 이처럼 작중 ‘스나크’라는 존재는 한 번도 구체적인 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스나크의 정체에 대해 해석하고 질문했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사회적인 욕망을 뜻한다고 해석했고, 이 경우 스나크를 사회 풍자의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 주목했다. 루이스 캐럴은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이고, 고로 스나크를 잡기 위한 배의 선원들(원어 표기로는 전부 B로 시작한다-)이 대공황 시기의 경제 주체를 상징하며, 이 모험담 자체가 대공황 시기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다.
 작가 본인은 어땠을까. 스나크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라거나, 끽해봐야 “스나크는 부줌입니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루이스 캐럴, 본명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동화작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평생을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한 수학자였으며, 논리학자였다. 말과 숫자를 이용한 말장난 퍼즐을 즐겼다고 한다. 실제로 ‘스나크 사냥’을 비롯한 그의 문학 작품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없이 정교하게 맞춰진 운율과 알파벳과 수학을 활용한 말장난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내력으로 미뤄보아 ‘스나크’라는 존재는 단순히 알파벳 퍼즐을 하다 나온 (‘SNARK’라는) 무의미한 조합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에 대한 수많은 분석과 해석 역시 결국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게 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뭐가 어쨌든 간에 ‘스나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작가가 죽은 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듯 불현듯 이 칼럼도 끝나간다.
어떤 칼럼은 종잡을 수 없다. 어디로 뻗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불현듯 이런 문장이 떠오른다. “칼럼은 마감이다.”
어떤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보시다시피, 칼럼은 마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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