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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Oct 07. 2022

이권형 정규 3집 [창작자의 방] 작업기 #2

'창작자의 방'이 되기까지 ~ 파크라이프와 물과음 ~ 박준성과 서준호

 2022년 10월 7일, 이권형 정규 3집 [창작자의 방]이 발매 됩니다. 음반이 만들어진 과정을 돌아보며 작업기를 작성합니다. 다채로운 감상에 도움되길 바랍니다.


1 '창작자의 방'이 되기까지


2021년 10월 25일, 아주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고 찍은 오류동 자취방 책상 뷰


 2021년 8월, 전역 직후엔 오류동 원룸 전세집에 아직 지인이 머물고 있었던 관계로 동료뮤지션 파제의 집에서 한동안 머물렀죠. 10월 초엔 제 전세방에서 머물던 분은 이사를 하고 저는 파제 하우스에서 나와 제 자취방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 정돈을 끝내고 가장 우선으로 한 일은 기본적인 녹음 장비를 갖추는 거였어요. 홈레코딩 환경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는데, 2집 [터무니없는 스텝]을 제작하면서, 주안의 서준호 엔지니어의 작업실과 강남에 위치한 직장을 매일같이 오가면서 몸이 무리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선 이 패턴을 끊고 최대한 동선을 줄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11월 11일, <스와이프>의 첫 데모 작업

 기존에 쓰던 램 4G짜리 맥북을 보내드리고(저도 사양 확인하고 놀람), 배터리 이슈가 있는 2013년형 맥북과 <커피토크> 때 썼던 마이크 질감을 그대로 가져가기 위해 파제 하우스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같은 기종의 마이크(웜오디오 WA74), 그리고 좁은 방에 맞는 크기(64키)로 마스터 건반까지 전부 중고 구입했는데, 이렇게 비용을 최소화한 건 다름 아니라 이 방에서 과연 홈레코딩 음반을 만드는 게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평 남짓한 좁은 방인데다가, 조용하긴 해도 외부 소음이 없는 게 아니라서 도저히 변수가 파악되지 않는 상태였으니까요. 헤드폰은 기존에 쓰던 것(슈어440)을 쓰기로 했습니다. 장비를 갖춘 뒤로, <스와이프>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활용해 쓴 곡이며, 처음으로 녹음/편곡를 병행한 첫 곡입니다.

2021년 11월 25일, 편곡에 쓸만한 소스를 고르다가 가상 악기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스와이프>를 완성시키고 주변의 피드백을 받은 뒤로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퀄리티가 높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음원을 완성하는 게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비록 문제가 많은 환경이라도(오토바이와 비행기 소리를 비롯한 바깥 소음, 전기 문제로 인한 틱노이즈, 실내 냉장고 소리 등), 이번 음반 정도는 이 방에서, 이 장비들로 음반을 완성할 수 있고,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음반에 활용될 가상악기 소프트웨어와 소스를 갖추고 정리했고, 트랙리스트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열악하지만 접근성 좋은 여섯 평 방이 이번 음반을 쌓아올린 초석이었던 것이고, 음반의 열악한 DIY 환경을 컨셉으로 잘 살려줄 이려진 작가님의 신묘한 그림과 제목이 [창작자의 방]을 완성시킨 셈입니다. DIY 컨셉의 음반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큰 터닝포인트예요.


2 파크라이프와 물과음


 이제는 송라이팅이 관건이었습니다. <석촌호수(with. 예람, 천용성)>의 경우는 예람과 용성을 만나 콜라보를 제안한 뒤로 그들의 파트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기존에 완성한 <커피토크>와 <스와이프>가 각각 한 축을 맡고 있었어요. 기존에 발매한 적 있었던 <당신의 것>의 미디 편곡을 완성한 후에는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새로 쓸 곡들의 컨셉과 제목을 먼저 정했습니다. 도시의, 그러나 '시티'의 화려함보다는 근린, 근교 따위의 감성이 묻어있는 음반이었으면 싶었습니다. '파크라이프'라는 제목과 컨셉은 그때 정해진 거예요. 그런데, 다른 곡들이 하나둘 완성되는 동안, 곡을 아무리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치트키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2021년 12월 4일, 치트키로 싱어송라이터 '물과음'을 소환했다. 오래 전 클럽 빵에서 '오늘내일'이라는 포크듀오를 하실 때 공연하며 만났으므로 카톡 이름은 '오늘내일 김성훈'


"기다렸던 풍경, 지나치던 오후

눈에 비친 거리 마냥 지금 날 이대로 놓아줄래요.   


서로가 깃들 때, 사무치던 저녁

불이 켜진 거리 마냥 지금 날 이대로 품어줄래요.   


아, 아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다보면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정물 안에 휘감겨가네     

다시 한 걸음 내디뎌 그 속으로 비집고 가면

마치 그림과 같은 곳, 그 곁에서 살고 있음을     


그대와

그대와

 

다가오는 손길, 마주치던 아침

평범하게 맞이했던 이 하루처럼

지금 날 이대로 그냥 받아줄래요"

- '물과음' <파크라이프>


 제가 처음 송라이팅을 부탁드린 것이 2021년 12월 4일, 그리고 <파크라이프>의 첫 데모와 가사가 메일로 수신된 것이 2021년 12월 13일입니다. <파크라이프>는 9일간 그가 새로 쓴 곡이었고,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미 완성도있는 곡이었습니다.

 위의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발매된 [창작자의 방] 버전의 파크라이프와 가사의 토씨가 일부 다를 겁니다. 건반과 함께 직접 노래해서 보내주신 영상과 데모 음원 외에는 정보가 없었던 관계로, 일단 미디로 편곡할 수 있게 그대로 카피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저나 물과음이나 코드를 배워서 연주하는 게 아니라서, 녹음하면서 라이브하게 카피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사의 토씨가 조금씩 다르게 옮겨진 겁니다. 뭐가 다른 지 찾아보시는 것도 감상의 재미가 될 것 같아요.


 "지난 번 <험한 세상>때의 경험이 있어 이번 작도 어떻게 권형님 스타일대로 구현될지 기대가 됩니다."

물과음의 파크라이프 첫 데모를 받았을 때의 메일 내용 일부입니다. 2집 [터무니없는 스텝]에서 제가 받아 편곡했던 곡인 <험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좋은 시너지가 이번 음반으로까지 이어진 셈이고, 덕분에 음반의 흐름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오래 전 클럽 빵에서 함께 공연을 하며 만났고, [서울, 변두리] 컴필레이션을 통해 '물과음'의 첫 작업을 함께하며 가까워졌습니다. '물과음'의 탄생에 기여한 바 있다는 점이 제 음악 인생에 있어 하나의 큰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험한 세상>도 그랬지만, <파크라이프>는 이미 완성도 있는 곡이었고, 어떻게 음반의 흐름에 맞는 좋은 편곡으로 해석할 지가 부담이기도 했습니다만, 이 곡을 제가 해석한 (감사하게도 언제나 권한을 일임해주심) 편곡이 완료됐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말로 음반이 완성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이때 들었습니다.


▲ 물과음이 직접 불러 전달해준 <파크라이프>의 첫 데모 음원

2022년 7월 20일, 음원 작업 막바지에 이르러 안국동 단골 카페에서 송라이팅 명인 물과음과 커피토크.


3 박준성과 서준호(AKA 준스노우)


 파제(본명, 박준성)의 조언은 언제나 음반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음반을 만드는 기간동안 파제와의 술자리가 즐거운 건 언제나 그의 도움되는 조언이 있고 그것이 곧바로 조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너지가 최고로 빛을 발한 건 [터무니없는 스텝]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가볍고 속도감있는 (사실 기존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작업 방식 안에서 합을 맞춰본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가 바쁜 와중에도 이번 음반 [창작자의 방]에서 그의 연주 비중이 적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바쁜 일정과 빠르고 간결한 작업방식 덕에 본인은 자신이 이 음반에서 뭘 연주했는지 기억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2년 8월 8일, 파제 하우스에선 아이디어가 바로 연주로 이어진다. 곡은 <사랑에 관한 짧은 스케치>, 자유롭게 연주한 후 내가 맘대로 편집/배치한 소스가 음원에 실린다.

 본래 이 음반은 믹싱까지 제가 하는 데까지 욕심을 내고, 여의치 않으면 EP의 형태까지도 생각했던 음반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던 술자리에서 파제가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에 집중하고"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준호 엔지니어와 작업하게 된 것이죠.

2022년 8월 22일, [창작자의 방] 음원 믹싱 마무리 하던 날.

  모든 음원은 서준호 엔지니어와 작업하고, 결국 그의 손을 거칩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서로 얘기하고 조율할  적어집니다. 이번 [창작자의 ] 제가 전부 편곡해서 믹싱만 맡기는 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던 탓에 그가 보내준 믹싱에 대해 특별히 수정할 사항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전 작업들에 비해 직접 보는 날이 현저히 적었음에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가능했죠. 2022년은 그가 파제만큼 미친듯이 바쁜  해이기도 했기 때문에, 동선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손을 거쳐 완성시키는 방식은 결과적으로도 적절했던 셈입니다. 어쨌든 음반은 완성되는  중요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도전에 가까웠던 이번 음반의 컨셉과 태도를 설정함에 있어서,  정도로 수월한 디자인이 가능했던 것은, 수년  합을 맞춰온 동료들이 곁에 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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