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한 권쯤은 다 있잖아?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6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근대의 역사에서 소극적 자유의 협소함에 맞서, 그리고 자기 결정에 관한 근대적 이해의 도래와 함께 새로 등장한 자유에 관한 사고를 반성적 자유 (Reflexive Freedom)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새로운 사고 속에서, 자유는 더 이상 한 개인 외적 방해를 받지 않는 임의적으로 행동할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제 자유는 주체성에 관해 내적으로 지향된 숙고와 긴밀히 결부되면서, 개개인의 본능이나 욕망에 의해 동기화된 행위를 너머, 이들의 행위가 전적으로 자신들만의 의도로 인도될 때만이 그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호네트에 따르면, 근대 속에서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는 루소가 사회 계약론(The Social Contract)이나 에밀(Émile)에서 자기 진실성을 기반으로 한 자유 개념 (행위자의 의지)을 말할 때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루소에게 영향을 받은 칸트와 헤르더는 반성적 자유 개념을 각각 도덕적 자율성 (자기 입법)과 자기실현 (의지의 정화)의 관점에서 재구성합니다.
칸트는 자유 개념을 보편성의 가능성과 같은 방식으로 도덕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 입법의 자유', 보편적 존중의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성의 합리적 '자기 제한의 자유'까지 확장합니다. 칸트적 전통에서 반성적 자유는 (도덕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이해됩니다.
헤르더는 주체들이 언어와 같은 몇몇 일반적인 매개체들을 통해 스스로를 형성하고, 발견하며 표현하는 행위들로 자유를 설명합니다. 헤르더적 전통에서 반성적 자유는 자기실현의 관점에서 이해됩니다.
이후 칸트와 헤르더의 자유 개념은 '반성적 행위의 산물'과 '좋은 삶'의 관계에서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당대 정치 철학의 주요한 사상적 토대가 됩니다.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에서 그랬던 것처럼,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에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를 추적합니다.
이 새로운 자유 개념은 개개인을 자유의 실현을 통해 스스로 좋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범주 속에 적법한 (혹은 정당한) 사회 질서는 무엇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지표들로 인도하게 되는데요.
사회 정의의 개념들, 즉 '사회가 조직된 방식들이 그 구성원들의 관심과 욕구를 정당하게 다루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소극적 자유 속 주관적 권리를 너머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이나 자기 결정에 관한 원리들과 결코 분리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호네트가 설명하는 반성적 자유에 관한 주요 사고 속에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칸트와 헤르더를 따라, (도덕적) 자율성과 자기실현은 각각 서로 다른 정의의 원리들을 품고 있습니다.
먼저 (도덕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정의의 원리는 상대적으로 분명합니다.
개인의 자유는 칸트적 전통에서 "보편적 존중의 원리로 인도된 일종의 자기 결정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사회 정의의 원리들은 개인적 자유 행위자의 전체성 사이에 협력의 결과로써 이해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37).
따라서 기본적으로 (도덕적) 자율성에 관한 사고는 '정의의 절차적 개념 (procedural conception of justice)'이 됩니다.
즉 반성적 자유를 통해 (도덕적) 자율성의 개념을 선취하게 된 개개인은 정당한 사회 질서와 관련된 원리들을 숙고하기 위해 공유된 의사 형성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지요.
소극적 자유에서 개개인이 자기 이익에 기반한 사회 체계를 도모하는 정의의 개념에 머물러 있다면, (도덕적) 자율성에서 이들은 협력이나 민주적 숙고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체계로서 정의의 절차적 개념으로 향하게 됩니다.
(도덕적) 자율성에서 도출된 정의의 절차주의적 이론들을 대표하는 학자들로는 롤스나 하버마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집단적 결정의 적법성은 결국 이 결정이 집합적 협력을 구성하기 위한 이상적인 절차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가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이 결정은 각 개인들이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여겨지는 것을 보증하는 절차적 과정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것이지요.
'무지의 베일 (the veil of ignorance)'이라는 사유 실험으로 잘 알려진 롤스의 정의론은 (이후 그는 다소 간 개정을 시도합니다) '원초적 입장(the original position)' 속 개인이 서로의 배경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합의에 이르게 되는 사회-정의의 원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그리고 Apel은) 소극적 자유에서 고립돼있던 개개인의 자기중심적 행위를 의사소통적 공동체 안으로 편입시키면서, 담화 공동체 구성원의 의사소통적 산물로서 담화-이론적 전환을 강조합니다. 하버마스에게 (그리고 Apel에게), "합리적으로 정당화된 규칙들은 반드시, 그리고 이상적으로 모든 관련된 사람들이 상호 간 이해에 이르는 공개적이고 제약 없는 논증적 과정 안에서 맺은 정당한 합의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Zurn, Axel Honneth, 159).
두 번째, 자기실현의 관점에서 정의의 원리는 - 호네트가 보기에, (도덕적) 자율성에서 도출된 원리보다 다소 간 모호하긴 해도 - 기본적으로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즉 자기 표명의 삶 전반의 과정에서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이 과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체계와 닿아있습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주체들이 자기실현의 과정을 (i) 배타적인 개인 행위의 관점에서 이해하는가, 아니면 (ii) 공동의, 협력적인 노력의 관점에서 이해하는가에 따라 두 가지 주요한 맥락으로 분기됩니다.
우선 배타적인 개인 행위의 관점에서 자기실현을 대표하는 이론가로는 J. S. Mill을 꼽을 수 있습니다.
Mill에게 주관적 자기실현의 자유란 다른 주체들의 동등한 권리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독창성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에게 정의는 개인의 삶 전반에 걸친 진정한 자기실현을 위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기서 최대 행복은 최고의 좋음, 즉 자유를 의미합니다)"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타협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공동의, 협력적인 노력의 관점에서 자기실현은 다양한 형태의 공화주의 (혹은 공동체주의)로 대표됩니다.
공화주의에 따르면, 개개인의 자기실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성취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들의 진실한 자아는 상당 부분 사회 공동체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화주의의 선상에서 진정한 자기실현은 집합적 행위와 분리될 수 없고, 여기서 자유의 개념은 집단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는 반성적 행위의 결과가 됩니다.
우리는 "가족, 공동체, 국가, 민족의 구성원이자 그 역사를 떠안은 존재로서, 이 공화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기실현은 이 집합적인 공동의 협력적인 노력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들에게 정의란 개개인이 스스로를 자기실현의 집단적 형태 속에서, 그리고 이를 통해서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학파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이론가로는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 샌델은 공화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에 다소간의 회의감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루소에서 시작하여, 칸트와 헤르더를 거치면서, 그리고 이후 여러 이론가들을 통해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는 각자의 입장에서 어울리는 정의의 원리들을 도출해 왔습니다.
(I) 자유주의적 절차주의 (liberal proceduralism) - 칸트적 전통을 따르는 롤스나 하버마스,
(II) 자유주의적 완전주의 (liberal perfectionism) - 헤르더의 영향력 아래 자기실현을 개인적 행위의 차원에서 해석한 Mill, 그리고
(III) 자유주의적 공화주의 (liberal republicanism) - 헤르더의 영향력 아래 자기실현을 공동의, 협력적인 노력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아렌트나 샌델.
하지만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호네트는 정의론에 관한 이 모든 이론들이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주요한 방법론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성적 자유를 토대로 - 그것이 (도덕적) 자율성 (혹은 자기 결정)이든 자기실현이든 간에 - 우리는 모든 개개인이 어떤 자유의 개념이든 실현할 수 있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배경들이 요구되는지에 관한 사고들을 추론한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40.
On the basis of reflexive freedom - whether as self-determination or as self-realisation - we deduce ideas about which institutional circumstances are needed to guarantee that all individuals can realise either notion of freedom.
Axel Honneth, Freedom's Right, 40.
요약해 보면, 소극적 자유에 관한 사고는 개인의 사적 이기심에 기반한 사회 질서를 도모하는 정의의 개념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와 달리,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는,
(도덕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협력이나 민주적 숙고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질서를 위한 정의의 절차적 개념을 요구합니다.
또한 자기 결정의 관점에서, 개개인이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요구되는 적법한 사회 조건들을 위한 정의의 사회 체계적 개념을 요구합니다.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와 비교하여 반성적 자유의 우월성에 분명한 확신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자유의 실현을 말할 때, 여기서 요구되는 외적 조건들 (혹은 사회 조건들)에 관한 내용이 반성적 자유 개념에 와서 비로소 풍성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호네트는 반성적 자유 개념과 여기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 역시, 소극적 자유 모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정치 철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당대 가장 지배적인 반성적 자유에 관한 개념과 여기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들을 호네트는 어떤 점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한국 사회가 아직까지 온전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상당히 빠듯해 보이는 이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와 여기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들을 호네트는 왜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자유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