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 비판 - 너 말이야 자기 계발서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7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에 맞서 발전된 반성적 자유 개념의 우월성에 분명한 확신을 드러냅니다.
반성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에서 불분명했던 문제, 즉 소극적 자유 속에서 한 주체의 자유로운 행위의 내용물이 의미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따져 물으면서, 자유의 범주를 확장해 낸 것이지요.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에 이르러, 개인의 본능이나 욕망에 의해 동기화된 행위와 주체의 의도로 동기화된 행위가 분명하게 구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는 스스로에게 걸맞은 다양한 형태의 정의의 원리들을 도출해 냅니다.
(도덕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칸트적 전통의 자유 개념은 자유주의적 절차주의(Liberal Proceduralism)로 발전되고, 여기서 대표적인 정의에 관한 이론가들은 롤스나 하버마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자기실현의 관점에서 헤르더적 전통의 자유 개념은 각각 개인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자유주의적 완전주의 (Liberal Perfectionism)와 공동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 자유주의적 공화주의 (Liberal Republicanism)로 발전되고, 여기서 대표적인 정의에 관한 이론가들은, 전자에서는 J. S. Mill, 후자에서는 아렌트나 샌델을 들 수 있습니다.
호네트가 보기에, 반성적 자유에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들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방법론적 접근을 공유합니다.
이들은 모두 반성적 자유를 토대로 이 자유의 실현을 보증하는 적법한 제도적 배경들에 관해 숙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소극적 자유 모델 속에서 단지 개인의 주관적 권리만을 보장하는 사회 체계는 반성적 자유 모델 속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 반성적 자유는 우리 스스로를 "욕망의 즉시성"에서 멀어지게 하면서, 좋은 삶을 위해 주체성에 관해 내적으로 지향된 사고와 '우리' 사이의 협력에 관한 사고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 Chapter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 속에서 확립된 법적 자유 식별하고, 이를 승인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반성적 자유의 사례로서 도덕적 자유를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입니다.
호네트에게 도덕적 자유는 반성적 자유의 사회적 제도화 정도로 이해되는데요. 도덕적 자유 속에서 주체들은 보편적인 도덕성의 관점에서 사회적 요구나 상호 간 관계들이 정당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요.
도덕성은 우리에게 기존의 관계들이나 관습들, 규범들이나 통념들이 적법한 것들인지에 관해 판단을 허용하고, 혹시 이들이 그렇지 않다면 비합리적인 것으로 거부할 수 있는 역량도 제공해줍니다.
이러한 도덕적 자기 입법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사회 규범, 역할, 그리고 의무와 함께 행위의 상호 간 얽힘을 판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반성적으로 기존의 관습들을 승인하거나 개정하고, 새로운 관습들을 구성적으로 제안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호네트는 문화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고정된 도덕적 자유 개념이 사회의 제도화된 관계망 속에서 그 적법한 위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보기에, 국가가 도덕적 자율성 개념을 일종의 의무로써 법적으로 강제하진 않는다 해도, 도덕적 자유는 약하게 제도화된 문화적 패턴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소극적 자유와 비교하여 반성적 자유의 우월성을 확신하면서도, 그리고 반성적 자유 속 도덕적 자유를 승인하면서도, 호네트는 반성적 자유 모델 역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보기에, 반성적 자유와 여기서 도출된 다양한 정의의 원리들을 옹호하는 이론가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적절히 다루고 있지 않는데요.
이들은 자유의 실현을 위한 사회 조건들의 배경적 맥락이 충분히 정교화되지 않는다면 반성적 자유는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호네트가 보기에, 반성적 자유 모델 속에는 그 내용물을 실현시킬 수 사회적 (혹은 외적) 조건들의 이용 가능성이 불분명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주체들이 (도덕적) 자율성이나 자기실현을 통해 반성적 자유에 다다랐다 할지라도, 이 자유가 달성되기까지는 실제 실천적으로 실현되는 자유에 대한 참조점이 요구됩니다 (이 자유의 참조점은 모든 사회 제도와 체계, 관습이나 수단 등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반성적 자유 선상에 있는 모든 이론가들은 이 자유의 내용물이 실제 어디에 상응해야 하는지 파악해 내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지요.
반성적 자유의 내용물은 - 그것이 칸트적인 정언명령이든, 헤르더적인 진정한 자기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사회적 조건이든 간에 - 이를 촉진하고 실현하기 위한 잠재적 내용물을 제공하는 사회적 제도와 수단들의 배경적 맥락이 (그것이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그 이외 무엇이든 간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호네트에게, 반성적 자유 모델은 분명 개인의 자기 이익에 토대를 둔 사회 체계보다는 협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유의 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사회 조건들에 관한 숙고를 포함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성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 모델을 개선시킨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 개선된 자유 모델은 자유 자체의 요소들로서 자유의 실행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시야 안으로 포섭해 내지 못합니다.
그 결과, 반성적 자유에 경도된 주체들은 스스로를 객관성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데 실패합니다.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상기 내용을 좀 더 보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18세기 유럽의 여성들에게는 전문적 보상이 주어지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전문직 여성은 당시 사회적 관습에서 존재하지 않았고, 여성에게 어떤 분명한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성이 아무리 진실한 자기실현의 관점에서 전문직과 관련된 나만의 자유를 실현시키고 싶다 해도, 여기에 상응하는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여성의 반성적 자유는 거기서 멈추게 됩니다.
둘째, 만일 내가 (도덕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나의 자유 실현을 위한 보편적 존중의 원리를 절차적으로 추론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런 추론에는 자유 실현이 가능한 적법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이러이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해" , 혹은 "우리는 나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법칙이 되는 원리로 행동해야 해"라는 규칙이나 합의가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러한 규칙이나 합의는 내가 반성적으로 이르게 된 자유의 실행을 가능케 하는 '자유 그 자체'의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보다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 규칙이나 합의가 가능한 사회적 (혹은 외적) 조건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유 실현이 가능한 적법한 사회를 위해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해"라는 규칙이나 합의가 더 이상 현실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는 우선 자유의 실행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 결여된 채 거기서 멈춰 서게 됩니다.
반성적 자유는 반성 과정의 성공적인 완결을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제도적 배경들과 형식들을 인위적으로 자유 자체의 요소 외부에 위치시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가 Chapter 1에서 소개했던 "자유의 권리" 서문의 이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One of the major weaknesses of contemporary political philosophy is that it has been decoupled from an analysis of society, instead becoming fixated on purely normative principles. Although theories of justice necessarily formulate normative rules according to which we can assess the moral legitimacy of social orders, today these principles are drawn up in isolation from the norms that prevail in given practices and institutions, and are then ‘applied’ secondarily to social reality.
Axel Honneth, Freedom's Right, 2014, Introduction
당대 정치 철학의 주요한 결함들 중 하나는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들에 고정된 채 사회 분석과 분리되어 왔다는 점이다. 정의론들이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회 질서의 도덕적 적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규범적 규칙들을 형식화했지만, 오늘날 이러한 원리들은 기존의 관습들과 제도들 속에서 성행했던 규범들로부터의 고립에 빠져버렸고, 따라서 사회 현실에 2차적으로 적용된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2014, 서문.
이처럼 호네트에게 반성적 자유 모델과 여기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들이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들에 고정된 채" 사회 분석과 분리되어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반성적 자유 속에서는 자유의 실행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사회적 (혹은 외적) 배경들이 자유의 내용물 자체에 본래 갖추어진 것이 아닌, 사회 정의의 요소들로서 외적으로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더해진 요소들은 자유가 실현되는 현실을 분석할 때, 그 주변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호네트에겐, 자유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제도적, 관습적 형태들이 고려되지 않은 자유의 실현을 위한 모든 규범적 원리들이 나이브 해 보이는 것입니다.
현실과 분리된 채 그저 순수하게 자유를 위한 규범적 원리들만 고수하고 있는, 그리고 여기에 머물러 있는 당대 정치 철학의 세태를 호네트는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변에서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시도되는 다양한 노력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종종 자기 계발서, 격언, 혹은 명언들을 통해 우리의 반성적 자기 결정과 자기실현을 촉구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들이 우리의 좋은 삶에서 여전히 외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호네트가 지적한 것처럼, 이들은 자유의 실현에서 필수적인 도덕적 목적의 사회적, 제도적, 관습적 이용 가능성들을 그 자체로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러한 배경들의 실제적 이용 가능성이 작동되는 곳에서만, 우리의 모든 반성적 행위들은 그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자기 계발서 속의, 그리고 격언과 명언의 화려한 미사여구들이 우리의 반성적 행위와 일치되는 순간, 혹은 이를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반성적 행위가 갖는 가치를 확인하며 뭉클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차 호네트가 지적한 것처럼, 이 미사여구들은 그 내용물 안에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제도적, 관습적 배경들을 설명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남겨두면서, 단지 현실에서 자신을 적용하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호네트가 승인한 반성적 자유의 사례로서 도덕적 자유가 절대화되는 경우 발생하는 병리에 관해 짧게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호네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도덕적 자유가 갖는 고유한 역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보기에, 도덕적 자유를 통해 반성적 자유를 절대화하는 것은 병리적 관행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 병리는 '완고한 도덕주의'로써, '정치적 목적을 위한 집합적 투쟁'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적법한 세상을 위한 입법자로 여기면서 정치적 변화를 위한 모든 집합적 투쟁을 밀고 나갈 때, 자기 입법적 도덕성은 이러한 도덕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자신 만의 도덕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폭력이든, 전체주의든, 차별이든 무엇이든 간에, 모두 내가 상상하는 적법한 세계를 위한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 마을로 돌아갔는데요. 전임 대통령의 정치적, 국내외적 평가를 떠나, 그리고 개인적 선호도를 떠나, 최근 그의 사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집합적 투쟁' 역시 '완고한 도덕주의'의 한 사례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요약해보면,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가 가진 협소함을 극복하면서 나아가는 반성적 자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호네트는 반성적 자유와 여기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가 자유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혹은 외적) 조건의 문턱을 지칭하고는 있지만, 그 내용물 안에 이 문턱을 넘을 만한 사회적, 제도적, 관습적 배경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네트가 자유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에 맞서 자유의 실재로서 제안하는 자유에 관한 사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개념은, 호네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정의에 관해 가장 선호할만한 개념을 도출할 수 있는 자유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 다음 회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