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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Jun 07. 2022

나의, 우리의 단절된 역사

그리고 그 빈자리


나는 우리 모두가 아마도 지난 인류의 역사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열강들의 타 대륙 식민지화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양한 감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과 야만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것이고, 이런 아픔 속에서도 지난 인류의 희생을 통해 국제적 표준화에 이른 현재에 일정 정도 긍정적인 부분을 승인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당시 식민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여기서 각각의 약소국들의 식민지화 과정을 일일이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과정에서 모든 약소국들이 한 가지 현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근대화(Modernisation)의 이름으로 진행된 서구화(Westernisation)"로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유럽을 필두로 한 서구권의 국가들은 근대를 관통했던 '주체' 개념, 즉 자유 개념을 기반으로 근대화를 이룩했다.

'자유'라는 개념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완성시켰고,  근대화는 오늘날까지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지배적인 흐름은 '계몽'이라는 미명 아래 비서구권의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을 서구화시켰고, 특히 대한민국은, 아니 당시의 조선은 일본의 지배 속에서 이 과정을 더욱 모질게 겪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닌 탓에, 이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논평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관습들이 근대화의 이름으로 진행된 서구화 속에서 점차 옅어지면서 발생하는 특정한 '역사적 단절의 결과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불가피하게, 선택의 여지없이, 그들에게 가져다 쓴 각종 체제들과 아직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그 내용물.

그리고 이 결과들 속에서,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내가 보기에 유난히 그 빈자리가 도드라지면서, 나의 관심을 유별나게 더 끌고 있는 한 영역이 있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과는 별개로, 여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병리 현상들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영역 말이다: (민주적) 공론장.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구의 근대화 중심에는 '주체' 개념, 즉 자유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이 주체들이 이룩한 근대화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요소에는 (민주적) 공론장이 포함된다.

다양한 형태의 공론장을 통해 - 살롱, 카페, 심포지엄, 광장에서, 의회 같은 좀 더 권위 있는 장소까지 - 당시의 주체들은 서로를 참조하고 반박하면서 적극적으로 각자의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이렇게 교환된 의견은 여러 조건들을 충족하며 일반적인 시각에서 점차 공론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확산된 공론은 주체들이 스스로 공통의 의견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다주었고, 이 인식은 사회나 시대에 있어서의 어떤 특정한 전환을 가능케 했다.

# 참조: Jürgen Habermas,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1989.

Charles Taylor, Modern Social Imaginaries, 2003.



내가 이전에 발행한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서구인들은 자신의 의견 개진에 망설임이 없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6).

그리고 이 배경에는 이들의 근대화의 역사 속 핵심적인 요소인 (민주적) 공론장이 있다.

이 (민주적) 공론장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들은 공론에 이르는 법에 익숙하며, 이 공론장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잘 주지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역사적 유산은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교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도 그런 유사한 장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한국 사회에도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매개체를 가져다주었다.

각종 Social Media나 포털 사이트에서, 그리고 Youtube에서 각 주체는 자신들만의 의사를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외관만 가져다 쓴 그 체제와 아직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그 외관의 내용물 때문에, 우리 사이에서 교환되는 의견은, 서구 사회의 (민주적) 공론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러 조건들을 충족하며 일반적인 시각에서 점차 공론으로 확산되는 과정까지는 이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우리는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우리의 개인적 의견이 "공통의 의견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을 성취해 왔을까?

내가 보기에,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달성되었다고도 볼 수 없는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근대화의 주인인 그들의 공론장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 각자의 일반적인 시각이 공론으로 향하기보다는 (정치권에서는) 진영으로 분열되고, (일상에서는) 성별이나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상대는 적이 되고, 제거돼야 할 대상이 된 채 공존과는 멀어진다.

(정치권에서) 각 정당을 대변하는 인물들은 마치 모든 민심을 대변하는 양 행세하고,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게시하는 이들은 각자의 도덕주의에 빠져있다.

이렇게 공론장의 사례처럼, 근대화의 이름으로 진행된 서구화의 과정에서 내용은 생략된 채 그 외관만 가져온 것들에는 또 무엇이 더 있을까?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종교를 둘러싼 300여 년 간의 토론은 생략된 채,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종교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일 헌법을 가져다 쓰면서도, 그 헌법에 이르기까지의 치열한 합의의 과정을 우리는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또 어떠한가? (민주적) 공론장을 통한 규범적 합의나 공론에 이르는 방식은 생략된 채, 갈등과 증오만 남게 된 한국의 민주주의 말이다. 담론은 생략된 채, 생활 밀착형 정책만 이야기하는 그 민주주의 말이다.


나는 우리가 여전히 서구화 과정의 그 역사적 단절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단절 속에서, 그들에게 가져다 쓴 외관 속의 그 내용물은 아직 온전히 채워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단절된 역사, 그리고 우리의 단절된 역사 속의 그 빈자리는 어떻게 채워져야 할까?

우리는 앞으로 역사적 단절에서 생략된 모든 과정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모든 진중함이 '선비질'로 오도되는 그런 사회가 더욱 심화되지 않기만을 바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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