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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May 15. 2022

'전문가'라는 폭력성

오은영 선생님 사랑해요





왜 한국인은 "I"를 잘 드러내지 않을까 (못할까)? 나는 답을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한국인이니까. 이러한 "I" 숨기기는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통 이런 표현에 익숙하다: "어머 옷이 너무 예뻐요." "카페 풍경이 너무 좋네요." 이런 표현에서 "I"는 철저히 문장 속에서 타자가 되고, 대상이 주체가 된다. 그 외 다양한 표현에서도 "I"는 슬그머니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데, 보통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적 모임이 완화돼서 좋은 것 같아요." "이제 야구장에서도 치킨을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이러한 표현 방식은 분명 서구인들의 방식과는 다르다. 그들은 같은 표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I love it." 그들의 사고 중심에는 항상 "I"가 있다 (feat. 데카르트). 그래서인지 그들은 자기 의사 표현에 매우 적극적이고, 자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내가 유학 생활 초반에 가장 놀랐던 일들 중 하나는 이 친구들은 수업 시간에도 자신들의 의사 표현에 막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교수가 열심히 강의하는 중간에도 불쑥 손을 들어 자기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교수의 의견에 "I don't think so," 혹은 "I do not agree with you." 같은 (내가 보기에 겁나게 불경스러운) 말도 쏟아낸다.


나는 여기서 "그들이 옳다 그르다, 혹은 우리가 옳다 그르다"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는 그렇고 그들은 그렇다. 또 나는 여기서 우리가 그런 이유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이유를 논하려면 우리의 역사, 문화, 그리고 높임말, 존칭 등이 포함된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위계질서를 배우게 되는 우리 언어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이게 어디 한 섹션에 다 쓸 수 있는 문제이겠는가 (유사한 맥락에서 나는 "우리의 배경이 민주 공화국과 어디까지 어울리는지" 여부에 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오해 마시길... 나는 우리의 국가 체계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시도하는 불순 분자가 아니다).





그 보다, 한국인이 "I"를 잘 드러내지 않는 (못하는) 현상 자체에 대해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기 인식과 표현 방식에 있어 우선순위에서 밀린 우리의 "I"는, 많은 경우, "I"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타자에게 쉽게 종속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문가'라는 호칭으로 발화되는 모든 의견은,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지나치게 큰 권위를 가진다. 또 오해 마시길... 나는 '전문가'의 양식과 소양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인이 '전문가'를 한 개인의 관점이나 의견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한국인은 '전문가'의 의견에 큰 의심 없이 동조하게 되고, 이들의 의견은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다. 나는 '전문가' 역시 자신의 전공을 배경으로, 몸담고 있는 업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사안이라도 다른 의견을 가진 또 다른 '전문가'는 어디에든 존재하며, 그래서 학계에서는 관련된 논쟁과 논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문가' 한 명의 의견이 마치 해당 사안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진 양 이해되거나 수용되고, 한국인들은 빈번하게 판단이나 사고의 정당성으로 자신들이 접한 '전문가' 개인의 견해에 크게 의존한다. "TV에서 의사가 나와서 그러더라. 이거 먹어라." "변호사가 그렇다는데 네가 왜 난리냐." 등등.


늘 의아한 것이, 방송이나 매체에서는 왜 '전문가'들의 대립되는 다양한 의견보다 한 명의 '전문가' 의견만 주로 인용하거나 다루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은영 선생님을 사랑한다. 가끔 내가 상상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좋다. 그러나 자녀 교육에 있어 '오은영 선생님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는 다른 문제다.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가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을까? 아니면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오은영 선생님과 다른 의견을 가진 개인이 단 한 명도 없을까? 매체 속에서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한국인들이 "I"를 드러내는데 적극적이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드러난 "I"를 향해 늘 소극적이고 종속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I"이고, 그래서 다른 "I"가 자신을 드러내는 만큼 나도 자신을 드러내며 대칭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라고 해서, 자칭-타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에 상당한 권위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우리는 언제쯤 각종 보도들에서 다양한 분야의 자칭-타칭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루고 비교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그리고 언제쯤 해당 사안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비전문가인 많은 시민들의 의견도 유사한 비중으로 실리게 될까? 혹시 우리 사고의 중심에 'I'가 존재한다면, 아니면 적어도 그 부피가 확장된다면, 언론 보도는 달라지게 될까? 한국에서 여러 분야의 개선이나 개혁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드러나지 않은 "I"들의 존재 때문은 아닐까?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I"들이 드러난 "I"들에게 모든 지위와 자리를 너무 쉽게 내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 철학에는 인식론(Epistemology)이라는 분야가 있다. 인식론은 대상의 본성, 기원, 그리고 인간 지식의 정당성 등을 따져 묻는 철학적 연구인데, 가령 내가 믿고 있는 a를 정당화하는 b, 이 b를 다시 정당화하는 c... 이렇게 소급해 가는 일도 하고, 인간은 어떤 지점에서 이 소급을 멈추게 되는지 살펴보는 일도 한다.


# 나는 인식론의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 판단의 정당성을 '전문가'에게 너무 쉽게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전에 우리는 인식론에 얼마나 친숙했는지... 이런 물음에 한동안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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