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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May 12. 2022

Prologue.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

 필로스와 소피아

제가 보기에, 어떤 학문이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추상성에 그 실체를 구체화하고 더해 나가는 일을 포괄적으로 담당하고 있고, 철학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할 중 하나로서 이를 충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이 과업에 한정해서 또 어떤 철학자들은(니체나 푸코 등) 반대로 현존하는 특정한 구체성을 계보학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구체성의 추상적 실체를 밝혀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필로스(philos-사랑함)와 소피아(sophia-지혜)라는 철학의 어원에 충실하면서, 역사 속 수많은 철학자들은 사랑, 인류애, 사회, 연대, 공정, 평등, 정의, 자유, 보편성, 특수성, 인식, 감각, 지식, 신 등등의 모든 추상적인 대상들을 설명하며 추상성에 구체성을 부여하고자, 또 반대로 다양한 구체성의 추상적 기원을 밝히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철학자들은 추상성에 구체성을 더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을까요? 또 반대로 구체성의 추상적 원천을 밝히고자 해 왔을까요?


저는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저서 "근대의 사회적 상상 (Modern Social Imaginaries")  질문에 여러 해 중 하나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일러는  저작에서 서구 근대의 주체들이 집합적인 사회적 삶의 모습에 관해 폭넓게 상상해 왔던 방식이(추상성)  가지 주요한 형태 속에서 현실이  과정을(구체성) 추적하고 있는데요.

즉 테일러는 서구인들이 오늘날 그들의 삶의 양식이 된 세 가지 주요한 영역들(경제, 공론장, 자기 통치-economy, public sphere, and self-governance [국내 출판된 번역본에서 self-governance는 인민 주권으로 번역됨])을 상상하고 실체화해 온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적 현실(구체성)이 된 사회적 상상(추상성)을 추적해 가면서, 테일러는 이전 서구인들이 "공동의 번영을 위한 장소로서 경제," "서로의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한 장소로서 공론장," 그리고 "선험적인 원리들에 의존하지 않은 채 세속적 행위들을 영위하는 것으로서 자치적 행위주체"를 상상했던 방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테일러는 근대 서구인들의 상상이 방향을 달리했다면, 우리가 사는 현실도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실 진단을 위한 자신만의 입장을 공고히 합니다.

테일러에게 사회적 현실(구체성)은 사회적 상상(추상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에게 현재의 사회적 (혹은 정치적) 상상은 이후 사회의 현실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이처럼 테일러는 추상성과 구체성 사이를 통해 우리 현실을 바라봅니다.

저는, 테일러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분석하기 위해 철학의 실천적 역할을 드러내고자 할 텐데, 이 목적을 위해 추상성에 구체성을 더해갔던, 혹은 반대로 구체성에서 추상성을 추적해갔던 다양한 철학자들의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를

i) 추상성에 구체성을 더하고자 했던 다양한 시도들 간의 차이, 그리고

ii) 구체성의 확장

으로 인도하는데요. 이 둘 모두는 우리 일상에서 은폐되어온 사실이나 서로의 관계망, 그리고 왜곡되거나 잘못 이해되고 있는 현상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낼 것입니다.


위와 같은 작업을 했던 철학자들을 소개할 때, 제가 이들 일생의 작업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피하게 저의 시도는 매우 선택적이고 파편적이 될 것이고, 이러한 한정적인 접근은 한 철학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어쩌면 철학이, 좀 더 정확하게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정치-사회 철학이 우리 모두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 사안들에 이렇다 저렇다 해설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치-사회) 철학은 분명 그동안 정치나 제도, 혹은 법이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우리 일상의 고통이나 병리들을 많은 이들이 상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조명해 냅니다.


저는 이 첫 번째 여정으로 동시대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이자, 프랑크프루트 학파(Frankfürt School) 제3세대의 대표주자인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악셀 호네트 (Axel Honneth, 1949 ~     )


제가 가장 먼저 호네트를 선정한 이유는,

첫째, 저는 그의 정의론을 소재로 University of Auckland에서 박사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둘째, 국내에는 이미 30년이 지나버린 그의 "인정 투쟁(The Struggle for Recognition)"이 주로 소개되면서 최근 그의 학문적 발전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그의 작업들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따라서 가장 긴급한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세대 간, 성별 간, 계층 간 갈등을 포함하여, 그 문제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혹은 우리 일상의 사소하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이든 간에 말이지요.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는 호네트의 2011년작 자유의 권리 (영문판은 2014년 Freedom's Right으로 발간되었고, 독일어판의 제목은 Das Recht der Freiheit)를 소개하면서 저는 "자유(freedom) - 좋은 삶(good life) - 정의(justice)"라는 세 가지 강력한 연결 고리를 보여줄 텐데, 이 고리는 같은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자 속에서 내가 되는 것(Being oneself in the other)"이 한 사회의 핵심적인 테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조건들, 사회 병리, 그리고 최근 "자유"까지, 우리 일상의 주제들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악셀 호네트가 국내에서도 "인정 투쟁"을 너머 더 활발히 알려지게 되고 논의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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