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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May 14. 2022

Chapter 1. 좋은 삶과 현실 분석

현실과 분리된 모든 규범적 원리들의 비판 (feat. 자기 계발서)


"인정 투쟁(Kampf um Anerkennung)" - The Struggle for Recognition, 영문판 1995년 발간 - 에서 호네트는 인정에 관한 압도적인 선호도를 보여줍니다. 그가 보기에 상호 간 인정은 자율적이고 개인화된 주체로서, 한 개인이 좋은 삶을 위해 실천적인 자기 관계를 발달시키는 데 있어(자기실현) 토대이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인 것이지요.


호네트는 가정 내에서 (사랑을 통한 자신감: self-confidence), 사회 속에서 (법적 권리자로서 자기 존중: self-respect), 그리고 연대성 안에서 (가치 공동체 혹은 사회적 공헌을 통한 자긍심: self-esteem), 실천적 자기 관계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각각 세 가지 형태의 상호 인정이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 형성을 위한 일종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호네트가 인용하는 G. H. Mead의 "주격 나(I)"와 "목적격 나(Me)"의 관계는 꽤나 인상적인데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주격 나(I)"는 개인적 욕망으로서, 주체로서 자아를 의미합니다. (일반화된) 타자가 나를 바라보는 "목적격 나(Me)"는 사회적 자아로서, "주격 나(I)"는 언제나 "목적격 나(Me)"에 반응합니다. 호네트에게 (그리고 Mead에게), 태어나자마자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상호 관계망 속에서 이 둘 간의 관계는 언제나 특수성(particularity)과 보편성(universality)의 문제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나의 특수성이 보편성과 통합되는, 반대로 보편성 안에 나의 특수성이 표명되는 과정에서 타자의 인정은 필수적이고, 인정은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반드시 예비되어야 하는 요소인 것이지요.




이후 인정에 대한 이 압도적인 선호도는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에서 (헤겔적) 자유 개념을 따라 인정의 제도들로 옮겨갑니다. 즉, 호네트는 좋은 삶이라는 개념을 우리 현실의 모든 제도적인, 관습적인 인정의 관계망 속에서 구체화하고자 하는데요. 이러한 그의 시도는 좋은 삶을 향한 당대 주요한 접근들과, 좀 더 정확하게는, 당대 주요한 정치 철학에서 논의되었던 접근들과는 완전히 결별하며 새로운 길로 향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보충 설명적 작업이 바로 그의 후속작 "사회주의 재발명(The Idea of Socialism)"입니다.



# 한국에서는 언제쯤 붉은색을 걷어내고 사회주의를 전면에 드러낸 채 논의할 수 있을까? 호네트가 밝힌 것처럼, 나는 자본주의가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변모시켜 온 것만큼이나 사회주의 역시 그 고루함을 벗어나 "사회가 사회다운" 모습을 갖추도록 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여기서 핵심은 자유의 개념에 관한 헤겔적 사고인데 ("인정투쟁"에서 호네트는 헤겔의 초기 예나 시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후 "자유의 권리"에서 그는 헤겔의 "법 철학"을 재해석합니다), 호네트는 이 사고를 더욱 급진적으로 해석하여 좋은 삶과 정의에 관한 새로운, 그리고 다소 간 논쟁적인 주장을 펼쳐냅니다. 이 주제에 있어 스스로를 헤겔적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만큼 호네트는 자신의 작업을 헤겔에게 크게 빚지고 있는데요. 이 부분은 여기서 상세히 다룰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제가 작성 중인 논문 전체 9개의 하위 구성 중 1개를 차지할 만큼 양이 방대하기도 하고, 내용 자체가 과도하게 학문적입니다).


호네트는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 서문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데, 이 비판은 이후 그의 "사회적 자유(Social Freedom)" 개념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좋은 삶과 정의에 관한 개념으로 뒷받침됩니다.




One of the major weaknesses of contemporary political philosophy is that it has been decoupled from an analysis of society, instead becoming fixated on purely normative principles. Although theories of justice necessarily formulate normative rules according to which we can assess the moral legitimacy of social orders, today these principles are drawn up in isolation from the norms that prevail in given practices and institutions, and are then ‘applied’ secondarily to social reality.


Axel Honneth, Freedom's Right, 2014, Introduction



당대 정치 철학의 주요한 결함들 중 하나는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들에 고정된 채 사회 분석과 분리되어 왔다는 점이다. 정의론들이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회 질서의 도덕적 적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규범적 규칙들을 형식화했지만, 오늘날 이러한 원리들은 기존의 관습들과 제도들 속에서 성행했던 규범들로부터의 고립에 빠져버렸고, 따라서 사회 현실에 2차적으로 적용된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2014, 서문.




제가 이 서문을 좀 더 풀어보자면...


#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정의, 혹은 정의론을 이야기할 때, 사회 현실에 대한 논의나 숙고 없이, 그리고 이 현실 속에 스며있는 우리의 규범적 재생산을 간과한 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혹은 추론할 수 있는 규범적으로 정당하거나 도덕적으로 옳은 규칙들, 원리들, 격언들을 우선 떠올려내고 이후 이를 현실에 적용한다.

# "~하라... 그렇다면 ~할 것이다" 혹은 "...을 위해 우리는 .... 해야 한다"라는 식의 (칸트적) 정언명령들,

# "모두들 해가 졌다고 말할 때 별이 떴다고 말할 수 있다면...” 등등의.. 격언이나 명언들,

# 자기 개발서에 나오는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들까지도,

# 호네트는 이들 모두가 현실과 분리된 채, 혹은 현실이 어떠한지를 배재한 채,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형식적 원리들에 머물러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네트는 이런 접근의 문제점을 어떻게 지적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는 우리의 좋은 삶과 정의, 혹은 정의론을 어떻게 매개시키고 있을까요?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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