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승인하는 자유는 무엇인가요?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2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에게 좋음, 혹은 우리의 좋은 삶에 관한 최고의 윤리적 가치는 '자유' 입니다. "마치 마법적 마력에 의한 것처럼, 모든 근대의 윤리적 이상들은 자유의 마법 아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최고의 윤리적 가치인 자유는 자연스럽게 '정의(justice)'의 규범적 토대를 형성합니다:
"정의를 위한 요구는 개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일종의 참조를 통해서만 오직 적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The demand for justice can only be shown to be legitimate by making some kind of reference to the autonomy of the individual." (Axel Honneth, Freedom's Right, 17)
즉 어떤 사회 질서든 그 적법성은 각 구성원의 개인적 자유를 보호하고 실현하는 정도에 따라 측정되는 것입니다. 정의란 구성원들이 좋은 삶을 위한 자유의 동등한 기회를 요구하는 것이 되면서, 좋은 삶, 자유, 그리고 정의가 그렇게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좋은 삶, 자유, 그리고 정의를 하나의 선상에 둘 때, 호네트는 정치 철학의 전통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호네트가 이 전통에서 슬그머니 이탈하게 되는 순간은 그가 전임자들과는 다른 자유의 개념을 승인할 때입니다. 좋은 삶을 위해 호네트가 승인한 자유의 모델이 전임자들의 모델과 다르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요. 왜냐하면 각각의 자유 모델이 품고 있는 좋은 삶을 위한 정의의 개념이 모두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즉, 다양한 자유의 모델은 각자에게 어울리는 정의의 모델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 자유에 관해 증식된 사고가 변한 것처럼, 정의에 관한 이미지와 심지어 방법론적 개념 역시 변화해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18).
"... it has become clear that as the propagated idea of freddom changes, so does the image and even the methodological conception of justice" (Axel Honneth, Freedom's Right, 18).
호네트에 따르면, 서구 근대 사회의 "도덕적 담론 속에서, 자유의 의미에 대한 모진 갈등들 속에서," "역사적으로 우세했던 개인의 자유에 관한 사고들"은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그는 근대 역사 속 이 우세한 개인의 자유에 관한 사고들을 (1) 소극적 자유 (Negative Freedom), (2) 반성적 자유 (Reflexive Freedom), 그리고 (3) 사회적 자유 (Soical Freedom)로 구분합니다.
호네트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지배적이었던 개인의 자유에 관한 사고들이 개인의 의도에 관한 구조와 특징의 분명한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각 모델은 개개인 성향의 구조와 특성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정의에 관한 개념을 구체화해 나갈 때,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 관한 다양한 모델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가장 적절한 정의의 개념을 형식화해 나갈 때,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자유의 모델은 제거될 것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호네트는 앞선 두 개의 자유 개념이 - 소극적 자유, 반성적 자유 - 우리 삶에 있어 필수적이긴 해도, 이들을 통해 우리가 좋은 삶을 묘사하고, 따라서 가장 선호할 만한 정의의 개념을 도출하고자 한다면, 그 내용은 불완전하고 불충분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에게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는 모두 자유의 가능성(the possibility of freedom)에 지나지 않습니다.
호네트가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승인하는 것은 사회적 자유인데요. 그가 보기에, 사회적 자유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자유의 실재(the reality of freedom)를 보게 됩니다. 즉, 호네트에게 사회적 자유란 자유의 서약일 뿐만 아니라, 그 진정한 실현인 것이지요.
인류의 지적 유산의 역사에서 개념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호네트의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에 관한 해석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제공한 자유 모델 - 소극적 자유,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 - 과 큰 범주에서 유사하지만, 호네트는 이후 자신의 용어 '사회적 자유' 속에서 벌린의 '적극적 자유'를 좀 더 세분화 한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그렇다면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란 무엇이고, 호네트는 이 두 가지 모델의 어떤 요소들을 비판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호네트는 이 두 가지 모델에서 도출되는 정의론에 어떤 결함들을 지적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는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사회적 자유의 어떤 요소들을 적극 지지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사회적 자유가 도출해낸 정의의 개념은 어떤 모습일까요?
> 다음 회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 앞으로 소극적 자유, 반성적 자유, 그리고 사회적 자유가 소개될 때,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자유는 어떤 모습인지 이들과 비교해 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차차 소개하겠지만, 저는, 호네트가 주장한 것처럼,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가 우리 삶에 필수적이긴 해도 그 내용이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데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당수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이 불충분한 자유의 개념들이 극대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또한 저는 정치나 법을 통해 충분히 해소되지 못해 왔던 우리 일상의 다양한 갈등과 병리, 문제들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를 상상하는 방식 - 프롤로그에 소개했던 테일러의 말을 빌려 - 즉 '사회적 상상'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네트를 통해 우리가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자유' 개념을 상상하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