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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May 20. 2022

Chapter 4. 소극적 자유, 법, 그리고 권리

아마도 우리 대다수가 머물러 있을 그 자리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3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서구 근대 사회의 "도덕적 담론 속에서, 자유의 의미에 대한 모진 갈등들 속에서," "역사적으로 우세했던 개인의 자유에 관한 사고들"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 반성적 자유(Reflexive Freedom), 그리고 사회적 자유(Social Freedom).

그가 보기에, 이 각각의 모델은 분명하게 개인의 성향 구조와 특성의 이해를 반영하고, 이에 어울리는 정의의 개념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에서 호네트의 관심들 중 하나는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가장 적절한 정의의 개념을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호네트가 정의 개념을 구체화해 나갈 때, 이 개념이 도출된 개인의 자유에 관한 다양한 모델을 구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정의의 개념에 어울리지 않는 자유의 모델은 그의 선택지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호네트가 구분하는 첫 번째 자유 모델은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입니다.

그는 소극적 자유 개념을 16-17세기부터 추적하는데, 홉스(Thomas Hobbes)의 절대주의[Absolutism], 로크(John Locke)의 자유주의[Liberalism]를 거쳐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 샤르트르(Jean-Paul Sartre)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 그리고 노직(Robert Nozick)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까지 이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네트의 따르면, 그 의미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공유하는 자유에 관한 핵심적 사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외적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그리고 타인을 향한 어떤 책임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 개인의 모든 독특한 욕망들을 포함하여 -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자유의 목적은 개인에게 부여된 특정한 개성을 (혹은 개인의 특질을) 보증하기 위해 자기중심적 행위를 위한 자유로운 공간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극적 자유의 핵심적 사고를 고려해 보면, 호네트가 이 자유 모델을 '소극적(negative)'라고 명명한 이유는 분명해집니다.

누군가 이러한 유형의 자유를 밀고 나갈 때, 자유의 조건들이 충족되는가 여부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즉 이들에게 자유를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들보다 - 그것이 자발적 의식의 원천이든, 욕망이든, 혹은 심지어 실존적 선택이든 간에 - 순수하게 스스로 외부의 방해 없이 '선택'했다는 점이 더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호네트에게 이런 자유의 모델은 소극적입니다. '자유'라는 개념을 '외적 방해 없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만 소극적으로 해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This type of freedom is 'negative' because a person's aims are not judged according to whether they themselves meet the condtions of freedom. Regardless of which existential choice one makes, and regardless of which desires are fulfiled, the pure, unhindered act of choice suffices for the resulting action to qualify as being 'free'.

Axel Honneth, Freedom's Right, 24.


이러한 자유의 유형은 '소극적인데, 왜냐하면 한 인간의 목적들은 이들 스스로가 자유의 조건들을 충족하는가 여부에 따라 판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떤 실존적 선택을 했는가와 관계없이, 그리고 어떤 욕망들이 충족되는가와 관계없이, 선택의 순수한, 방해받지 않는 행위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결과적 행위를 위해 충분하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24.



이렇게 소극적 자유를 소개한 후, 호네트는 여기서 도출되는 정의의 개념으로 향합니다.

소극적 자유의 핵심적 사고가 '외적 방해 없이,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의무를 고려치 않고, 모든 욕망을 자유롭게 충족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여기서 발견되는 유일한 도덕적 의무는 가능한 소극적 자유에 몰두하고 있는 개개인을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극적 자유에 상응하는 정의의 개념은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입니다. 소극적 자유 속에서 정의란 순수하게 사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개개인을 방해하지 않는 주관적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정의를 위한 방법론적 접근은 대부분 동일합니다: 사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한 사회계약.





사유 실험이란 가상의 (자연) 상태를 상상함으로써, 모든 주체들이 정치 이전의 (혹은 사회 이전의) 상태에서 동의할  있는 원리를 도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극적 자유에서 타자를 향한 도덕적 의무는 가능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타자를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에게 비간섭을 보증할 최선의 방법은 가능한  비간섭의  양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동등한 개인의 권리를 끌어낼 목적으로 신중한 1회성의 계약에 참여하는 이지요.

그리고 이 계약으로 완성된 권리는 보장의 강제성을 띄기 위해 강제 권력의 독점을 가진 국가에 위임됩니다.

소극적 자유에서 정의가 사회적 협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며, 정의는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 권리들을 보장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국가의 형태 또한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 형태가 독재적이든, 과두 정치적이든, 혹은 민주적이든 상관없이, 이 주관적 권리와 관련된 법의 기본 원칙에만 충실하면 그만이니까요.



돌이켜보면, 근대 사회는 소극적 자유에 관한 개념을 토대로 발전해 왔고, 현대 사회 곳곳에서도 우리는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명화된 현대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사적 재산권을 보장하고, 구성원들은 어떠한 외적 방해 없이 각자의 계산이나 이익에 따라 사전에 합의된 원칙 안에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립니다.

누구나 경제 활동을 통해 재산을 축적할 수 있고, 각종 재테크를 통해 재산을 증식할 수 있으며, 적법한 과정을 통해 취득한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또한 누구나 사적 공간 안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좋음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권리는 국가의 법률에 의해 보장되고 다양한 제도와 체제들로 구체화됩니다.


이러한 자유 개념을 부정하는 국가를 우리는 더 이상 문명화된 국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문명화된 국가는 구성원들에게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국교가 정해지지 않는 문명국가는 또한 구성원들에게 종교 선택의 자유도 보장하고, 이러한 국가의 구성원들은 누구나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상기 언급된 자유의 권리들을 헌법에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고, 구성원들에게 이 권리를 보장합니다.

대한민국의 다양한 제도와 체제들 역시 시민들의 이 기본 권리를 구체화해 왔습니다.

대한민국 구성원은 누구나 재산이나 생명, 혹은 여러 주관적 권리들이 외적 방해물로부터 부당하게 위협받는다면, 법의 도움을 받아 여러 제도들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해방 이후 굴곡을 경험해 왔고, 이 자유의 권리를 성취하기 위한 아픈 투쟁의 역사가 존재하긴 해도, 현시점에서 누구도 대한민국이 다양한 제도와 체제들을 통해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 관한 주관적 권리들을 충분히 보장하는 문명화된 국가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 이러한 자유의 권리를 부정할 때, 그를 문명인, 혹은 지성인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뜻 보기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일 이를 부정한다면 현대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더 이상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이 자유의 개념을 호네트는 왜 우리 삶에 필수적이긴 해도,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자유의 모델로 여기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 극대화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쩌면 한국 사회가 그런 모습이진 않을까?)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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