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칸트'했다.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4. 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근대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자유의 개념들 중에서 첫 번째로 소극적 자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개인의 자유는 외적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그리고 타인을 향한 어떤 책임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 개인의 모든 독특한 욕망들을 포함하여 -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소극적 자유 개념에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극적 자유에 몰두하고 있는 (순수하게 사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개개인을 가능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이들의 방해받지 않을 주관적 권리를 확립하고 강화하는 것."
그리고 이 정의의 원리는 국가에 의해 실현됩니다.
개인의 주관적 권리 보장을 위해 강제 권력의 독점을 가진 국가는 이를 법으로 강화하고, 누구든 이 권리를 위반하는 자는 법에 의해 제재받게 됩니다.
호네트는 이러한 소극적 자유의 사례로서 법적 자유를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입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자유로서 제도화된 소극적 자유는 누군가에게 현존하는 모든 상호적 의무와 결속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자신만의 삶의 기획을 위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사적 자율성의 공간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필수 조건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이 소극적 자유의 제도화 속에서 국가는 개인의 주관적인, 순수하게 사적인 권리들을 위해 재산권이나 생명권과 같은 기본권을 보장합니다.
그렇다면 소극적 자유를 법적 자유로서 승인하고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호네트가 이 (소극적) 자유 개념과 여기서 파생된 정의 개념을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것으로 이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호네트는 크게 소극적 자유 모델에 관해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첫째, 호네트가 보기에 소극적 자유의 개념은 우리에게 일종의 부자유로서 강력한 내적 충동과의 구별을 허용할 만큼 충분히 정교화되지 않았습니다.
즉, 내적 본성, 혹은 '익명의 정신 (anonymous spirit)'과 행위 간의 인과성은 우리 자신의 것으로서 식별할 수 없는 충동이나 영향력으로부터 오는 행위들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생존을 위한 모든 혹은, 혹은 모든 형태의 본능적 욕구 등등) 주체의 행위나 선택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 분명히 말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 결과,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에 몰두해 있는 주체들이 주체성의 진정한 자기실현을 향해 내적으로 연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All the flaws inherent in the idea of negative freedom ultimately derive from the fact that they stop short of the threshold of individual self-determination... In none of these cases does the freedom of the individual entail the ability to select the aims it wishes to achieve in the world; instead, the causality of an inner nature or an anonymous spirit guides the subject's actions and choices 'behind its back'.
Axel Honneth, Freedom's Right, 28.
소극적 자유의 사고 속에서 내재한 모든 결함들은 결국 이들이 개인의 자기 결정의 문턱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로부터 온다... 이러한 사례들 어떤 것에서도, 개인의 자유가 개인이 세계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들을 선택하는 능력을 수반하지 않는다; 대신, 내적 원천의 인과성, 혹은 익명의 정신은 주체들의 행위와 선택을 '그 이면'으로 인도한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28.
보통 철학자들의 말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소극적 자유에 관해 호네트가 첫 번째로 비판한 부분은 칸트가 "실천 이성 비판(The Critique of Practical Reason)"에서 '자유'에 관해 서술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호네트의 이 첫 번째 비판을 칸트를 통해 좀 더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동물에게 자유가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칸트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동물에겐 자유가 없다. 우리는 흔히 초원을 누비는 사자가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배고플 때 사냥하고, 피곤하면 그늘에 누워 잠드는 것처럼, 모두 자신의 행위와 의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들은 내가 자율적으로 승인한 것이 아닌, 나의 본능과 욕구가 그렇게 명령한 것이다. 자유란 모든 본능과 욕구가 나에게 지시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본능과 욕구에서 기인한 행위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 진실하게 승인한 산물이 아니다. 자유란 (이성의 정화 과정을 거친) 행위자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식적 의지의 산물이어야 한다."
호네트에게, 그리고 칸트에게 소극적 자유에 몰두한 개인의 행위는 욕구나 본능에서 기인한 행위들과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이들은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이지요.
호네트에게, 그리고 칸트에게 자유의 목적이란 모든 욕망과 본능의 원천에서 독립적으로 우리 스스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승인한 내용물이어야 합니다.
소극적 자유에 관해 호네트가 지적하는 두 번째 문제는 이 모델이 좋은 삶에 관해 순수하게 자기 본위적으로 동기화된 사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호 호혜성, 혹은 타자에 대한 비강제적 의무와 같은 미덕, 그리고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주장들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각 구성원의 사회적 역할과 규범적 의무, 우리의 상호 주관적 관계망, 그리고 상호 간 연대와 책임들은 소극적 자유에서 쉽게 설명되지 않는데요. 소극적 자유 속 개개인은 오직 자신들에게 유익할 때 만이 사회적 협력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즉, 소극적 자유 속 개개인은 자유를 위한 외적 장애물의 제거(혹은 최소화)가 요구될 때 만이 자신들의 자유를 일부 양보해가며 (혹은 희생해가며) 협력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누군가 모든 자신들의 욕망과 의도를 소극적 자유의 형식적 권리라는 범주 속에서만 표명하고자 한다면, 그는 사회적 삶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요?
만일 누군가 기존의 계약과 합의를 통해 도출된 ‘좋음’ 이외의 다른 ‘좋음’을 추구하고 싶어 졌다고 합시다.
이 경우에 다른 '좋음'은 자유를 위해 독립적으로 보장된 공간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파트너의 승인 없이 독백적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요?
결국 소극적 자유 속 개인은 스스로를 법의 형성적 (혹은 발전적) 과정으로 확장해 내는데 실패하면서, 다른 법적 주체들과의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에 매몰된 개인이 결국 의사 결정의 진공 상태 속에 머물게 될 것이고,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어디에서도 승인되지 않는 ‘비 규정성의 고통(Suffering from Indeterminacy)’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다양한 법적 주체들 간의 다양한 상호작용이 소극적 자유의 개념 속에서 잘 설명되지 않는 것이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 속에서 확립된 법적 자유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여러 문헌을 통해 법적 자유만이 극대화되었을 때, 즉, 법적 자유가 그 자유 자체의 최고 이상이 될 때 발생하는 사회 병리들을 지적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호네트는 1979작 영화 Kramer Vs. Kramer를 인용하는데요.
이 영화는 한 이혼 커플과 그들의 어린 아들 이야기를 다루면서, 법적 소송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되는 서로의 관계를 묘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두 명의 Kramer는 이혼을 앞두고 법적 절차들의 관점에서 서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산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그리고 상대의 성향을 모두 법적 다툼의 전략적 접근으로 도구화하면서 점차 사회적 삶, 그리고 관습과의 관계망을 망각하게 됩니다.
결국, 이 두 Kramer는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이혼 절차와 판결에 영향을 주는 전략으로 향하게 하면서, 부모로서 한 아이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과정 속에, 우리의 이야기에 '인간'이 소외되는 과정 속에 스스로를 내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의 협소함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지적하면서, 자유에 있어, 진정한 자기 결정에 있어 근대에서 더욱 구체화된 자유의 모델인 '반성적 자유 (Reflexive Freedom)'로 향합니다.
호네트에게 반성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보다 분명 여러 면에서 그 우월성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호네트가 소개하는 반성적 자유란 무엇일까요?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