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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May 16. 2022

Chapter 2. 좋은 삶, 자유, 그리고 정의

좋음에 관한 최고의 윤리적 가치: 개인의 자유(Feat. 윤석열 대통령)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1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가 보기에 당대 주류 정치 철학이 저질러 왔던 오류는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들(또는 사회 질서의 도덕적 적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규범적 규칙들)을 먼저 도출해 내고, 이를 사회 현실에 2차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비판은 자유의 권리에서 호네트가 사회 분석에 기반한 정의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동력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그는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 만의 정의(justice)에 관한 개념을 공고히 해 갑니다 (사실 이 작업은 인정투쟁 발간 전후로 지속된 호네트의 학문적 성취이기도 합니다).




사회 분석에 기반한 정의론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호네트는 한 가지 전제에 의존하는데, 그것은 바로, 근대 속 최고의 가치는 개인의 자유,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점입니다. 즉 근대를 거쳐 좋음에 관한 모든 윤리적 가치들 중 최고의 자리는 개인의 자유가 차지하게 되는데, 호네트가 보기에, 좋음에 관한 다른 개념들 - 그것이 자연 질서의 이신론이든, 낭만주의든 간에 - 모두 자율성이라는 개념 아래 포섭됩니다. "좋음(the good)"이란 결국 한 개인에게 자신만의 자유를 향유한다는 것 이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결국 우리가 좋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호네트가 보기에, 사회적 영향력 (혹은 외적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좋음에 관한 다양한 가치들은 결국 개인의 자유, 혹은 자율성에 관한 구성적 사고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이 "자연 질서를 기원"하든, "내면의 목소리를 이상화" 하든, 혹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지하든 간에 모두 개인의 자기 결정으로 의미하는 것에 추가적인 요소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호네트에게, "마치 마법적 마력에 의한 것처럼, 모든 근대의 윤리적 이상들은 자유의 마법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As if by magical attraction, all modern ethical ideals have been placed under the spell of freedom)." Axel Honneth, Freedom's Right, 15.







좋음, 혹은 좋은 삶과 개인의 자유 실현이라는 연관성에 관한 이 강력한 주장을 위해 호네트는 '역사-경험적' 논증과 '형이상학적' 논증을 제시하는데, 여러 이유로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또한 이 주장은 지금까지 논쟁의 소재가 되어왔고, 될 수 있음을 밝혀야겠네요.



개개인이 좋음으로 여기는 최고의 윤리적 가치인 이 자유라는 개념은 이제 자연스럽게 우리가 정의(justice)를 말할 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적법한 사회 질서는 무엇인지에 관한 지표들을 포함합니다. 사실 정의의 개념에 관한 호네트의 이 출발점은 홉스, 로크, 루소, 칸트, 롤스, 그리고 하버마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이들 모두는 (사회) 정의에 관한 한 가지 핵심적인 사고를 공유합니다: 법적으로 구성된 사회 체계는 (국가든 사회든) 오직 각 구성원의 개인적 자유를 보호하고 실현할 때만 적법할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사회 질서의 규범적 적법성은 사회 질서가 개인의 자기 결정, 혹은 자율성을 얼마나 보증하느냐에 따라 측정됩니다. 정당한 사회 질서에 관한 사고가 개인의 자유에 관한 사고와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한, 개인의 자유는 이제 정의를 위한 토대가 되는 것이지요. 사회 정의의 개념들, 그리고 사회가 조작된 방식이 그 구성원들의 관심과 욕구를 정당하게 다루는가를 보증하는 방식은 개인의 자율성에 관한 원리들과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개인의 자율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당한 사회 질서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이상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여러 투쟁들을 떠올려 볼까요? 다양한 혁명 운동, 여성 운동, 노동 운동, 시민권 운동에서 인종 차별, 동성애 권리, 성적 자기 결정권을 위한 투쟁까지, 어떤 것도 개인의 자율성을 위한 (법적, 사회적인) 동등한 기회의 요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국민적 염원을 담아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다수 국민이 (20여만 표 격차는 논외로 하고) 공정과 상식이라는 슬로건을 선택했다는 것은 (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시각도 논의로 하고요) 결국 자신의 자율성, 자기 존중과 자기 결정을 위해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는 어떤 정부보다 개인의 자유 개념, 자율성과 관련한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텐데요. 공정과 상식이란 결국 자신의 자율성을 위해 적법한 사회 질서들이 무엇인지 묻고, 이 질서들에 도덕적 적법성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취임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대통령이 사용하는 자유란 어떤 모습일지 저는 앞으로 흥미롭게 지켜볼 작정입니다. 앞으로 소개될 다양한 자유의 모델과 비교해 보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그리고 중요한 점은 호네트가 승인하는 자유의 개념은 앞서 언급된 철학자들이 승인했던 자유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인데요. 홉스에서 하버마스까지, 근대 정치 철학의 전통에서와 마찬가지로 호네트가 근대성의 성취로서 좋음, 개인의 자유, 그리고 정의 사이의 융합을 서술할 때,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그가 강조하는 것은 개인적 자유의 '사회적 영향력' 입니다. 즉 호네트는 정치 철학의 전통에서 등장했던 자유에 관한 지배적인 개념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여기서 도출된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들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자유의 개념들은 무엇이고, 호네트가 채택한 자유의 개념은 이 전통과 어떻게 분기되고 있을까요?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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