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절차적 정당화 구조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정당화되지 않은, 비민주적인 권력 순환의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ii) 의사소통 권력에 기반한 법 매체를 통해 약한 공론장과 강한 공론장 간의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강조한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틀 속에서 강한 공론장은 중심에 배치되면서, 약한 공론장에서 형성된 의사소통을 법으로 번역할 수 있도록 하는 수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버마스는 또한 다양한 방식에서 민주적 규범들의 문화적 특성을 묘사했습니다. 이는 결국 '담론 원리의 민주적인 법적 제도화'에 관한 그의 기획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78).
민주적 규범들의 특성들을 따라,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의 '공화주의적' 모델과 '자유주의적' 모델을 심의 민주주의에 관해 자신이 선호하는 '절차주의적 관점'으로 통합하게 됩니다. 이제, 이 두 가지 민주주의 모델이 어떻게 하버마스의 심의 민주주의 속으로 통합되는지 살펴봅시다.
I. 민주주의의 자유주의 모델과 공화주의 모델
지금까지 논의를 배경으로 자신의 심의 민주주의를 구성할 때, 하버마스는 자유주의 모델보다 다소 간 강한, 그렇지만 공화주의적 모델보다는 약한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심의와 의사 결정의 이상적 절차” (an “ideal procedure for deliberation and decision making,”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996, 296)에 관한 자신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방식에서 양쪽 모델의 몇몇 특징들을 통합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가 묘사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모델은 “합리적인 정치적 의사 형성의 input” (the “input of a rational political will-formation”) 보다는 권력균형과 이익 균형에 기반하여 (혹은 결과의 공정성에 기반하여) 성공한 “정부 활동의 output” (the “output of government activities,” Ibid., 298)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그가 보기에, 이 모델은 주로 사적 개인의 자발적인 사회적 교류를 방해할 수 있는 행정 권력으로부터 분열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즉,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모델은 사적인 삶의 기획과 행복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비정치적 공동선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회적 이익과 가치 지향을 도모하기 위한 입헌적 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모델과 달리, 하버마스는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민주주의의 (강한) 공화주의적 모델이 공유된 윤리적-정치적 자기 이해 속에서 “심의적 시민들의 민주적 자기 결정” (the “democratic self-determination of deliberating citizens,” Ibid.)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강한) 공화주의적 모델은 정치적 의견형성 및 의지형성 과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민주주의의 참여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모델 속 정치적 담론들은 종종 “시민들이 공유한 문화적으로 확립된 배경적 합의의 실재적 지원,” (the “substantive support of a culturally established background consensus shared by the citizenry,” Ibid., 296) 혹은 공동선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즉, 이러한 배경적 합의나 공동선은 문화적·윤리적 실체성을 공유한다는 전제를 포함하며, 이는 특정 담론을 사전에 봉쇄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요.
II. 심의 민주주의 (Deliberative Democracy)
하버마스는 자신의 심의 민주주의 모델을 정치적 의견형성 및 의지형성의 과정에 대한 공화주의적 강조 속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용주의적 숙고, 타협, 자기 이해와 정의에 관한 담론의 네트워크" (a “network of pragmatic considerations, compromises, and discourses of self-understanding and of justice,” Ibid.)가 형성되는 민주적 절차에 관한 그의 시각은 공화주의 모델이 추구하는 공유된 윤리적-정치적 담론 너머로 확장됩니다.
즉, 하버마스의 이 네트워크는 “관련된 정보의 흐름과 그 적절한 취급이 방해받지 않는 한” (“insofar as the flow of relevant information and its proper handling have not been obstructed," Ibid.) 합리적이거나 공정한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의 관찰을 토대로, 하버마스의 초점을 정돈해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초점은 “언어적 의사소통과 사회화의 의사소통적 양식의 구조” (the “structure of linguistic communication and the communicative mode of sociation,” Ibid., 297)를 따라, 민주적 의견형성 및 의지형성에 요구되는 의사소통 형태의 법적 제도화에 맞춰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하버마스의 민주주의 모델은 입헌 국가와 사회 간 자유주의적 구분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 사회를 경제 체계와 공적 행정과는 구분되는 “자율적 공론장의 사회적 토대” (the “social basis of autonomous public spheres,” Ibid., 299)로 개념화 함으로써, 그는 분화된 자율적 공론장을 “연대성에 있어 사회적으로 통합적인 힘” (“socially integrating force of solidarity,” Ibid.)을 위해 중요한 것으로 강조합니다.
이 관점은 분명 민주적 의지형성이 입헌 국가적 틀 속에서 “정치권력의 시행을 정당화하는 것”
(“legitimating the exercise of political power,” Ibid)에 한정된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모델과 분기됩니다.
결국, 하버마스에게, 민주주의는 자원의 동등한 분배뿐만 아니라 집합적인 정치적 의지형성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조건들을 확립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고 있는 것이지요.
III. 법의 형식성과 권력의 정당성
재차, 하버마스의 형식 속에서, 생활세계 속 의사소통 행위를 조정하는 운행 매체의 법적 제도화는 행정 권력을 정당화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에게, '법의 절차적 정당화 구조'는 생활 세계에서 발생한 의사소통의 타당성 주장을 제도화하며, 이를 통해 행정 권력이 권력의 정당성 조건을 충족하는 중요한 매개체인 것이지요.
하버마스는 이 과정을 통해, 정치권력이 단순히 결과나 효율을 근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화 가능성’을 의사소통에 뿌리내린 규범적 구조 속에서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법의 형식 안에서만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법으로 매개하여 권력을 정당화하는 구조 자체가 민주주의의 구성 원리인 것이지요.
결국 하버마스에게, 민주주의는 단지 의견 표현의 자유나 선거 절차의 정당성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사소통의 규범적 잠재력이 법이라는 제도 형식을 통해 정치적 권력 행사로 전환되는 복합적 구조이며, 이 구조 속에서만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스스로 법의 저자이자 수신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 이 브런치북의 마지막 장인 다음 회차의 Epilogue에서 저는 (i) 사실성과 타당성(Between Facts and Norms) 속에서 하버마스가 심의 민주주의 이론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간략히 재검토하고, (ii) 이 모델을 참조하면서, 우리 민주주의에 관한 간략한 회고를 시도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