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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민주주의에 말을 건네다

하버마스의 사실성과 타당성 해설을 마치며

by Sui gene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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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까지 Prologue를 포함하여 총 17회 차의 연재를 통해,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프랑크푸르트 학파 2세대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 (Between Facts and Norms/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해 왔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저는 사실성과 타당성 속에서 하버마스가 심의 민주주의 이론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가능한 이해하기 쉬운 방식에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철학적 언어 자체가 가진 난해함, 그리고 하버마스 이론 전체를 종합해야 하는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었는가 여부에 '그렇다'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불가피하게 이론적 정합성을 위해 '누구나 이해 가능한 방식'보다 '철학적 폐쇄성'을 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의 시도가 사실성과 타당성이라는 철학 서적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 하버마스 이론 전반에 관해 독자분들께 작게나마 내적 친밀감 형성에 기여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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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rationality)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하버마스가 자신의 기획 속에서 언제나 붙들고 있었던 하나의 난제였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단지 인식론적 조건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보다, '우리 사회 속에서 공통의 규범, 그리고 제도적 정당성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사회 철학적 물음과 연결되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사실성과 타당성은 바로 이러한 물음들에 답하는 하버마스의 장대한 기획이자, 그의 독창적인 심의 민주주의 이론의 구성적 현장입니다.

이 저작에서 그는 법과 민주주의를 각각의 독립된 항목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전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바탕으로 하버마스는 법이 근본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의사소통 구조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히고,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 이론의 규범적 토대를 구성해 가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 회차에서 제가 차례로 소개했던 것처럼, 이 과정은 하버마스가 시도했던 다양한 해설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법의 이중적 성격(사실성과 타당성) 분석,

공론장에서의 정당화 가능성과 법적 타당성 간의 매개,

근대 법철학 전통의 비판적 재해석,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간의 상호 근원성 확립,

담론 윤리에서 도출한 민주주의 원리 구성

행정 권력과 의사소통 권력의 구분 등등.


이들은 모두, 하버마스가 '심의(deliberation)'라는 개념을 단지 절차적 모델로서가 아닌, 법의 정당성과 시민적 자율성이 만나는 수행적 구조로 구성하고자 했던 노력의 일환입니다.

즉, 시민들이 타당성 요구를 서로에게 제기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정당화하는 언어적 실천, 곧 의사소통적 행위의 제도화된 구조로서 심의의 외형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에게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적 체계의 총 합이 아닙니다.

그 보다, 민주주의는 '법의 저자이자 수신인'인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형성한 공적 담론을 통해 법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심의적 실천 그 자체인 것이지요.

이는 현대 민주주의가 어떤 철학적 조건 위에서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하버마스의 답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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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이러한 기획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어떻게 말을 건네볼 수 있을까요?

대부분 체계적 관점에서 - 대의 민주주의로 -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소비하는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의 규범적 원리들은 여전히 낯선 대상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스스로를 주로 시민으로서 '법의 저자'가 아닌, '법의 수신인' 정도로 이해하는 것도 아마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규범적 원리들에 대한 이질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규범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우리가 하버마스의 심의 민주주의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은 단순한 정쟁적 갈등이나 쟁점으로 소비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정당성의 절차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버마스를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과 함께 이러한 이슈들을 재검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의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어떤 타당성의 언어로 교환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언어들의 수용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가?

우리는 서로에게 타당성을 요청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주장들만 나열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이슈들에 맞서 공동의 규범을 어떻게 생산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정치적 절차는 단순한 찬반의 구도인가, 아니면 공통의 규범 형성을 위한 시도인가?


여전히 규범성(Normativity)보다 적법성(Legality)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하버마스가 보다 널리 다시 읽혀지길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이 연재글을 읽어주셔서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Sui generis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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