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서 '말'이 '법'이 되는 방식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정당화되지 않은, 비민주적인 권력 순환의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i) 시민 사회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시도를 살펴보았습니다. 헤겔, 맑스, 그리고 그람시와 달리, 하버마스는 시민 사회의 본질이 일반적 이해관계 이슈들에 관한 문제-해결적 담론들을 조직된 공론장의 구조 속에 제도화하는 결사체의 네트워크 속에 쌓여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민 사회를 향한 하버마스의 시각은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사회적 전체라는 개념, 그리고 사회를 자율적인 하부 체계들의 집합으로 보는 (루만 식의) 체계 이론을 거부합니다. 이 맥락에서, 그에게, 사회의 통일성, 혹은 사회 통합이 모든 하부 체계에 동일하게 제시될 수 있는 '공유된 언어', 즉 '법의 언어'는 다시 강조됩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77)
이제 정당화되지 않은, 비민주적인 권력 순환의 위험성과 관련하여 하버마스가 (ii) 의사소통 권력에 기반한 법 매체를 통해 약한 공론장과 강한 공론장 간의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강조한 방식을 살펴봅시다.
I. 주변, 중심, 그리고 수문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의사소통 권력에 기반한 법 매체를 통해 해명하고자 할 때 (참고로 하버마스는 그 실패가 부르주아적 사회주의의 전체주의적 국가들 속에서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Bernard Peters의 모델을 따라, 입헌적 체계 속 의사소통적, 그리고 의사 결정적 과정들이 어떻게 배열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약한 공론장과 강한 공론장은 각각 '주변(periphery)'과 '중심(centre)'을 따라 배치되고, 두 가지 유형의 문제 해결 접근법을 특징화 하면서, '수문(sluices)' 체계를 통해 구조화됩니다.
이 모델의 선상에서, 하버마스는 구속력 있는 결정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방식을 제안하게 되는데요.
그에 따르면, 첫째, 진행 중인, 열린 결말의 의사소통의 산물인 비주체적인(subjectless) 공론 형성은 약한 공론장 주변부에서 기원해야 합니다.
둘째, 이 의사소통의 흐름은 “의회나 법정의 입구” (the "entrance to the parliamentary complex or the courts")에서 “민주적이고 입헌적인 절차들의 수문” (the "sluices of democratic and constitutional procedures,"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996, 356) 으로써 역할을 하는 강한 공론장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분산된 공론은 통합된 의지로 나타나고, 법으로 번역되게 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에게, 이 과정들이 행정 권력이나 핵심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간 매개적 구조들의 사회 권력이 의회에서 발전한 의사소통 권력에 맞서 자율적이 되는 위험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반대로, 이 틀은 또한 비공식적이고 비민주적인 권력의 순환을 막는데 필수적인 두 가지 가정들을 다음과 같이 윤곽화 합니다.
"민주적으로 산출된 의사소통 권력에 맞서 사회적, 행정적 권력의 부당한 자립화는 다음의 범주까지 전도될 수 있다: 주변부는 (a) 특정한 역량과 이 역량을 시행할 수 있는 (b) 충분한 동인을 가져야 한다. 첫 번째 가정 (a)는 (정치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사회 통합의 잠재적 문제들을 감지하고, 확인하며, 효과적으로 쟁점화할 수 있는 역량을 지칭한다; 더욱이, 활성화된 주변부는 의회적 (혹은 법원의) 수문에서 일상적인 것들을 교란시키는 방식에서 정치 체계를 향한 이 수문들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 "The illegitimate independence of social and administrative power vis-à-vis democratically generated communicative power is averted to the extent that the periphery has both (a) a specific set of capabilities and (b) sufficient occasion to exercise them. The first assumption, (a), refers to the capabilities to ferret out, identify, and effectively thematise latent problems of social integration (which require political solutions); moreover, an activated periphery must then introduce them via parliamentary (or judicial) sluices into the political system in a way that disrupts the latter’s routines." Ibid., 358.
하버마스가 보기에, 가정 (b)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따라서 점차 자율화되고 탈중심화된 체계들의 통합을 위한 요구들로 충족될 수 있습니다.
좀 더 어려운 가정 (a)의 충족을 다루기 위해, 하버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약한 공론장은 반드시 “시민 사회의 자발적 결사체들 속에 고정되어야 하고, 자유로운 정치 문화와 사회화 유형 속에 배태되어 있어야 한다" (“anchored in the voluntary associations of civil society and embedded in liberal patterns of political culture and socialisation,” Ibid).
II. 민주적 규범들의 문화적 특성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하버마스는 다양한 방식에서 민주적 규범들의 문화적 특성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민주적 입헌 국가에 관한 자신의 틀을 다음과 같은 용어들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자기 구성이 갖는 수행적 의미” (the "performative character of the self-constitution of a society of free and equal citizens,” Ibid., 384)로 인해 해명되는;
“공민권을 가진 시민들의 민주적인 윤리적 삶(Sittlichkeit - 이 용어는 헤겔에서 따온 것으로, 좀 더 정확하게는, 그리고 가능한 축약 해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통으로 형성해 온 윤리적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를 충족하는 자유주의적 정치 문화” ("nourished by the ‘democratic Sittlichkeit’ of enfranchised citizens and a liberal political culture that meets it halfway,” Ibid., 461)에 의해 촉진되는; 그리고
“자유주의적 정치문화의 맥락 속에 새겨진” ("embedded in the context of a liberal political culture,” Ibid., 499).
이러한 점에서, 하버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따라서, 평등한 주관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도움을 받아 시도되는 법적 코드의 확립은 의사소통적 자유의 공적 사용을 위한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의사소통적 권리와 참여적 권리를 통하여 완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담론 원리는 민주적 원리의 법적 형태를 획득한다."
> "Thus the establishment of the legal code, which is undertaken with the help of the universal right to equal individual liberties, must be completed through communicative and participatory rights that guarantee equal opportunities for the public use of communicative liberties. In this way, the discourse principle acquires the legal shape of a democratic principle." Ibid., 458.
이러한 민주적 규범들의 특성들 속에서,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의 공화주의적 모델과 자유주의적 모델을 심의 민주주의에 관해 자신이 선호하는 절차주의적 관점으로 통합하게 됩니다.
이는 하버마스가 민주주의의 규범적 기초를 단지 정치적 절차에 맡기지 않고, 생활세계의 문화적 전제들과 어떻게 접속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고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이 두 가지 모델을 어떻게 자신의 심의 민주주의 속으로 통합하고 있을까요?
>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