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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4. 시민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방식은?

시민 사회가 민주주의를 생기 있기 하는 방식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기술했던 공론장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서술 속에서 그는 공론장을 두 개의 담론 영역이 - 약한 공중과 강한 공중 - 상호보완적으로 순환하면서, 의사소통 권력의 제도화를 위해 기능하는 통로로써 묘사합니다. 하지만, 하버마스 역시, 여러 이론가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정당화되지 않은, 비민주적인 권력 순환의 위험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도 바깥에서 생성된 의사소통 권력이 의회나 정당, 사법 제도 등과 효과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반대로 미디어 자본이나 관료주의 체계를 통해 왜곡되는 현상을 떠올려 보세요. 이를 참고하여, 그는 (i) 시민 사회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ii) 의사소통 권력에 기반한 법 매체를 통해 약한 공론장과 강한 공론장 간의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강조합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76)


이제 (i) 시민 사회에 관한 하버마스의 현대적 해석을 먼저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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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시민 사회: 욕구 체계에서 담론 네트워크로

하버마스는 시민 사회를 헤겔이 자유주의 전통의 부르주아 사회 속에서 욕구 체계로 개념화했던 방식과 동일하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한 시민 사회를 사법으로 구성된, 그리고 노동과 자본시장, 그리고 상품 교환으로 규제되는 경제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맑스적 전통과도 나란히 서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시민 사회에 관한 하버마스의 시각은 그람시의 시각과도 구분됩니다.

참고로 그람시는 시민 사회를 패권적 권력 투쟁을 위한 토대이자 전쟁터로써 기능을 하는 국가의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부분으로 여깁니다.

여기서 다양한 사회 집단과 이데올로기들은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힘으로 영향을 받는 틀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경쟁합니다 (참조: Antonio Gramsci, “State and Civil Society” in The Anthropology of the State: A Reader, Edited by Aradhana Sharma and Akhil Gupta, 2006).


이러한 이론가들과 달리, 하버마스는 시민 사회의 제도적 핵심이 공론장의 의사소통적 구조들을 생활 세계의 사회적 구성에 고정시키는 비정부적이고 비경제적인 관계들과 자발적 결사체로 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따르면,


시민 사회는 다소간 자생적으로 출현한 결사체들, 조직들, 그리고 운동 단체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사회 문제들을 사적 생활 영역 속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조정되면서, 이러한 반응을 증폭된 형태로 공론장으로 증류하고 전달한다.

> "Civil society is composed of those more or less spontaneously emergent associations, organisations, and movements that, attuned to how societal problems resonate in the private life spheres, distil and transmit such reactions in amplified form to the public sphere"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996, 367).


하버마스에게, 시민 사회의 본질은 일반적 이해관계 이슈들에 관한 문제-해결적 담론들을 조직된 공론장의 구조 속에 제도화하는 결사체의 네트워크 속에 쌓여 있습니다.

“시민사회 속 의사소통 실천의 자기 참조적 특성” ("self-referential character of the practice of communication in civil society")이라는 용어와 함께, 그는 “활기찬 시민사회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 (“kept intact by an energetic civil society,” Ibid., 369) 되어야 하는 공론장 내 의사소통 구조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 여기서 ‘자기 참조적’이란, 시민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의사소통이 외부 권위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참여자들의 자율적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기준을 형성하고 조정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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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시민 사회의 자기 제한

다른 한편으로, Jean L. Cohen and Andrew Arato를 참조하여, 하버마스는 시민 사회를 “사회 전체의 자기 조직의 선상들이 집중되는 하나의 초점” (a "focal point where the lines of societal self-organisation as a whole would converge,” Ibid., 371)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그는 급진 민주주의적 실천들이 '자기 제한(self-limitation)'의 형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는 “Cohen과 Arato가 시민사회와 공론장이 제도화되지 않은 정치 운동과 정치적 표현의 형식들에게 허용하는 제한된 행위의 범주를 적절하게 강조하고 있다 [Ibid.]”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보기에, “다양한 체제로 흩어진, 그리고 탈중심화된 것으로써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 (a “functionally differentiated society as dispersed into multiple systems and decentred,” Ibid., 47)에서, 급진 민주주의는 더 이상 “목표 지향적인 거대 주체로 표상되는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사회적 전체라는 개념” ( the "notion of a social whole centred in the state and imaged as a goal-oriented subject writ large," Ibid., 298)을 차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보다, 하버마스는 급진 민주주의가 국민주권의 절차화에, 특히 정치 체제들과 정치적 공론장의 '주변 네트워크 (the peripheral networks)' 간의 피드백 루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다음 섹션 말미에서 하버마스가 약한 공론장을 특징화 하기 위해 ‘peripheral’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방식에 대해 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버마스가 사회를 자율적인 하부 체계들의 집합으로 보는 – 여기서 하부 체계 각각은 “독자적인 의미론”(“its own semantics,” Ibid., 334)으로 정의되고, 그 주변의 환경들로써 다른 모든 체제들과 상호 작용합니다 – '체계 이론(Systems Theory)'을 거부한다는 점을 함축합니다.

그가 보기에, 체계 이론은 “참여하는 행위자의 의도나 이익” (the “intentions or interests of participating actors”)을 포함한 “개개인과 집합적 agency에 관한 개념” (the “notion of individual and collective agency”)을 간과하면서, “각 체계에 내적인 작동 양식들” ( the “modes of operation internal to each system,” Ibid.)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자신만의 코드와 의미론으로 발전시킨 각 체계의 자율성은 결국 서로 간의 직접적 의사소통을 막고, 서로를 향한 관찰자로 남게 됩니다.


#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식의 체계들은 각자의 의미론과 코드로 자율적으로 작동하며, 외부로부터의 의미 전달을 ‘교란’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폐쇄적 자율성이 상호이해 기반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합니다.

# 체계 이론의 결과로써 나타난 감시 국가[supervisory state]에 관한 하버마스의 묘사, 그리고 이에 관한 그의 코멘트에 관해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see Ibid., 341-351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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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우리의 공유된 언어

이 선상에서, 하버마스 역시 의사소통 행위의 통합적 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능적으로 분화된 정치적, 행정적, 그리고 경제적 하부 체계의 자율성을 승인합니다.

그러나 체계 이론과 달리, 그는 사회의 통일성, 혹은 사회 통합이 모든 하부 체계에 동일하게 제시될 수 있는 '공유된 언어'를 강조합니다.

이제 지금까지 이 연재글을 함께 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처럼, 하버마스에게, 이 공유된 언어는 사회에 스며 있는 '법의 언어(the language of law)' 입니다.

이 언어는 하부 체계들을 사회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생활세계 속 의사소통 행위를 조정하는 “운행 매체의 법적 제도화" (the “legal institutionalisation of steering media,” Ibid., 354).

법의 정당성에 관한 그의 논의에 비추어보면,


"민주적 의견형성과 의지형성의 절차와 의사소통적 전제들은 법과 법규의 구속을 받는 행정부의 결정에 있어 담론적 합리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문으로써 기능한다."

> "The procedures and communicative presuppositions of democratic opinion- and will-formation functions as the most important sluices for the discursive rationalization of the decisions of an administration bound by law and statute" (Ibid., 300).


하버마스에 따르면, 행정부는 집합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전문화된 하부 체계인 반면, 공론장의 의사소통적 구조들은 광범위한 사회 문제들의 압력에 민감한, 그리고 영향력 있는 의견을 자극하는 “넓게 퍼진 센서들의 네트워크” (a “far-flung network of sensors,” Ibid.)를 나타냅니다.

결과적으로, 하버마스에게, 급진 민주주의의 목표는 하부 체계들을 민주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라기보다, 이들을 법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조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법은 단지 강제력이 아닌, 사회 담론들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형식이자, 서로 다른 하부 체계 간의 이해를 중재하는 공통의 매개 언어로 작동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참조하여, 우리는 하버마스가 정당화되지 않은, 비민주적인 권력 순환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ii) 의사소통 권력에 기반한 법 매체를 통해 약한 공론장과 강한 공론장 간의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강조했던 방식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이 두 공론장 사이의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하고 있을까요?”


>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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