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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3. 우리의 공론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의사소통 권력의 제도화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시민들의 의사소통 권력이 입헌적 절차를 거치는 동안, 공적 자율성을 실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정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회 전반에 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구조의 원리를 강조했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하버마스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입헌 국가의 작동 원형을 나타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핵심적인 매개체로 기능하는 법의 역할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75).


초기 학문적 여정부터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역할에 주목해 왔습니다.

자신의 저서 공론장의 구조변동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1962)에서, 그는 근대 시민 사회에서 형성된 공론장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으로 작동했는지 역사적-사회학적으로 분석했고;

의사소통 행위이론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 I and II, 1984)에서는 공론장을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구현되는 생활세계의 일부로써 이론화했으며;

사실성과 타당성 (Between Facts and Norms, 1996)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그리는 심의 민주주의 이론의 핵심 축으로 다시 정식화하게 됩니다.

이제 사실성과 타당성 속 공론장에 관한 하버마스의 서술을 간략히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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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하버마스의 심의 민주주의 속 공론장

입헌 국가에 관한 논의에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권력이 대의 기구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제정된 법을 통해 행정 권력으로 변환되어야 하는 동안, “공론장에서 발생하는 의사소통의 비공식적 흐름" (the “informal streams of communication emerging from public spheres),” 혹은 “익명의 의사소통의 순환” (“anonymous circuits of communication,” Habermas, Beteen Facts and Norms, 1996, 171)은 지속적으로 이 변환을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그의 강력한 입장을 살펴보자면,


“만약 입법적 국가권력의 형태로 조직되어 있는 정치적 의지형성이 자율적 공론의 자생적 원천을 봉쇄한다거나 평등주의적으로 구조화된 전국가적 영역에서 자유부동하는 주제, 기고, 정보, 근거의 유입을 차단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성적 기능작용을 떠받쳐 주는 시민사회적 기초를 파괴하고 말 것이다.”

"The political will-formation organised as a legislative branch of government would destroy the basis of its own rational functioning if it were to block up the spontaneous sources of autonomous public spheres or shut itself off from the input of free-floating issues, contributions, information, and arguments circulating in a civil society set apart from the state.” Ibid., 183-184.


민주적 공론장에 관한 하버마스의 형식화를 여기서 자세히 논의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형식화에서 한 가지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지점을 간단히 언급하고, 여기서 의미를 확장해 가는 것에 만족하고자 합니다.

하버마스의 심의적 정치모델에서 정교화되는 공론장에 관한 하버마스의 묘사는 의사소통 권력 생성을 촉진하는 기재를 조명합니다.

먼저 그는 공론장을 투 트랙의 개념으로 묘사하는데요.

이때 하버마스는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가 사용한 용어를 차용하고, 두 개의 담론적 영역을 구분합니다: “약한 공중(weak publics)” 그리고 “강한 공중(strong publics).”

여기서 잠시 프레이저를 살펴보면, 그녀는 약한 공중을 “이들의 심의적 실천이 단지 의견 형성으로 구성되고 의사 결정은 포괄하지 않는 것” (those “whose deliberative practice consists exclusively in opinion-formation and does not also encompass decision-making")으로 지칭하고, 강한 공중을 “이들의 담론이 의견 형성과 의사 결정 모두를 포괄하는 것” ( those “whose discourse encompasses both opinion-formation and decision-making”)으로 지칭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Nancy Fraser, "Rethinking the Public Sphere: 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Actually Existing Democracy," Social Text, 1990, pp.56-80을 참조하세요).

하버마스는 '강한 공중'이라는 용어를 완전히 차용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편의상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겠습니다.

하버마스에게, 이 두 담론적 영역은 상호보완적이며 순환적인 구조를 통해 의사소통 권력이 제도화되는 통로로 작동합니다.

# 참고로 덧붙이자면, 프레이저는 이 구분의 차용 속에서, 현실 민주주의가 약한 공중과 강한 공중 사이에 구조적 비대칭을 포함하며, 이들의 상호작용이 항상 순조롭거나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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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약한 공론장

하버마스는 약한 공중을 비공식적으로 조직된, 그리고 절차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공론장에서 의견형성에 참여하는 존재들로 식별합니다.

앞으로 저는 이 공론장을 약한 공론장으로 지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과 별개로, 약한 공중은 “유동적인 시간적, 사회적, 실재적 경계를 가지면서 서로 중첩하는 하위문화적 공중의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네트워크” (an “open and inclusive network of overlapping, subcultural publics having fluid temporal, social, and substantive boundaries," Habermas, 1996, 307) 속에서 단순히 자신들의 의견을 발전시켜 나가는데요.

이 맥락에서 사적 결사체에서 대중 매체까지 공적 의사소통의 흐름은 제한적이지 않고, “권력에 장악되지 않은 정치적 공론장의 구조” (“structures of an unsubverted political public sphere,” Ibid., 308) 속에서 전개됩니다.

이 흐름은 또한 절차적으로 규제된 공론장에서 전형적인 것보다 더 약한 강제력과 함께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더욱 민감하게 식별하고 해석하며 제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약한 공론장은 가장 넓은 관점에서 정치에 관한 담론-이론적 관점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개념화될 수 있습니다: “열린 결말의, 진행 중인 의사소통의 산물인 subjectless 한 공론 형성”의 장 (a domain of “subjectless public opinion formation that is the product of open-ended, ongoing communication,” Kevin Olson, “Deliberative Democracy” in Jürgen Habermas: Key Concepts, Edited by Barbara Fultner, 2014,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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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강한 공론장

그러나, 하버마스에게, “전체적인 조직을 거부하는 야생의 복합체” (a “wild complex that resists organisation as a whole,” Habermas, 1996, 307)로써 공론의 비공식적 구조는 국민주권 개념에 공헌하긴 해도, 그러한 공론의 효과성 관점에서 부족합니다.

결국 그는 정치적 의사 결정이 정당화의 맥락을 요구하고, 이는 주로 의회와 같은 제도화된 공론장에서 구조화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따라서, 절차적으로 규제된 공론장은 (앞으로 저는 이를 '강한 공론장'이라고 지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약한 공중이 제기한 문제들을 다루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의사형성과 의지형성 모두의 민주적 과정들을 구조화하게 됩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강한 공론장은 약한 공중의 의견 형성 속에서 발견되는 맥락적 즉시성이 결여되어 있지만, 이들은 비공식적 의견 형성을 정당화하고, 이를 의지 형성의 맥락에서 민주적으로 제도화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심의 정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따라서 심의 정치는 민주적으로 제도화된 의지형성과 비공식적 의견형성 간의 상호작용으로 살아간다" ("Deliberative politics thus lives off the interplay between democratically institutionalised will-formation and informal opinion-formation.” Ibid.,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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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두 공론장의 상호작용

이 두 가지 공론장 사이의 업무 분담은 입헌 국가의 원리들에 따라 조정되는 정당한 정치 체계 속 권력 순환에 관한 하버마스의 시각을 상징합니다.

그는 약한 공론장이 우선 강한 공론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후 국가 기구들의 행정 권력을 조정하는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프레이저가 언급한 것처럼, 하버마스 역시 “사적인 사회적 권력과 확고한 관료적 이익이 입법자들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private social powers and entrenched bureaucratic interests control lawmakers and manipulate public opinion, Nancy Fraser, “The Theory of the Public Sphere: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in The Habermas Handbook, Edited by Hauke Brunkhorst, Regina Kreide, and Cristina Lafont, 2017, 250)” 사회 복합성으로 야기된 팽배한 비공식적이고 비민주적인 권력의 순환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정당화되지 않은 권력의 비공식적 순환” ( the "unofficial circulation of this unlegitimated power,” Habermas, 1996, 328)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과 함께, 하버마스는 (i) 시민 사회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ii) 의사소통 권력에 기반한 법 매체를 통해 약한 공론장과 강한 공론장 간의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순환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현대적 시민 사회를 어떻게 해석하고, 약한 공론장과 강한 공론장 사이의 민주적 권력 순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 다음 회차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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