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h 11. 우리의 '말'은 권력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의사소통 권력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스스로 재구성한 권리 체계와 함께 - 시민들이 서로를 법적 동료로서 인정하고, 민주적 공동체 안에서 상호 자율성을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다섯 가지 기본권 - 하버마스가 분명히 한 두 가지 함의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그가 법치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 역시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데요. 이를 통해 우리는 하버마스가 그리는 민주적 입헌 국가의 이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72).


tempImage9NokBh.heic


I. 입헌 국가: 정당한 법, 의사소통 권력, 그리고 행정 권력

하버마스가 보기에, 법을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해야만 하는 정치권력은 본질적으로 사실성과 타당성 간의 긴장 속에 있습니다. 정치권력이 (혹은 국가가) 법의 형식 속에 전제되어 있고 새겨져 있는 한, 이 권력은 오직 "법 코드를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고, 법적 관점에서 기본권의 형식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이지요.

법과 정치권력 사이의 이 내적 관계와 함께, 하버마스는 법적으로 조직된 정치 질서에 관한 발전을 관찰하고, 입헌 국가의 원리들을 정치적 자율성에 관한 자신의 담론-이론적 틀 속에서 재구성합니다.

이 원리들은 (i) 정당한 법 산출을 위한 시민들의 의사소통적 자유를 품고 있는 국민주권의 원리; (ii) 독립적인 사법부에 의한 개개인을 위한 포괄적인 법적 보호의 원리; (iii) 행정의 합법성에 관한 원리; 그리고, (iv) 국가와 사회 분리의 원리를 포함합니다 (이 원리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은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996, 168-176을 참조해 주세요).

입헌 국가에 관한 하버마스의 시각은 이 원리들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즉, 그는 궁극적으로 “정당한 법은 의사소통 권력으로부터 나오고 의사소통 권력은 다시 정당하게 제정된 법을 통해 행정 권력으로 전환” ("legitimate law is generated from communicative power and the latter in turn is converted into administrative power via legitimately enacted law," Ibid., 169)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tempImageTA2jGl.heic


II. 의사소통 권력이란?

여기서 하버마스가 의사소통 권력과 행정 권력으로 의미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 요구됩니다.

하버마스 해석 속에서, 의사소통 권력은 국민주권 원리에 관한 그의 시각을 나타내는데요.

Kevin Olson이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의 의지에 관한 담론-이론적 등가물” (a “discourse-theoretic equivalent of the will of the people, Kevin Olson, “Deliberative Democracy” in Jürgen Habermas: Key Concepts, Edited by Barbara Fultner, 2014, 147)로 묘사되는 것으로써, 이 권력은 정당한 법의 산출을 위해 요구되는 시민들의 의사소통적 자유의 응축된 힘을 구체화합니다.

한나 아렌트를 따라, 정치적 자율성에 관한 자신의 담론-이론적 독해를 통해, 하버마스는 입법이 시민들의 의사소통적 권력에 의존한다는 점을 해명합니다.

그의 주장은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을 포함합니다.

(i) 시민들이 공적으로 동의한 의견 속에서 법과 의사소통 권력의 “상호근원적 원천"("co-original source”); 그리고

(ii) “법을 제정하는 의사소통 권력” (a “jurisgenerative communicative power”) 속 정부 행정 권력의 토대 (Habermas, 1996, 147).

하버마스가 보기에, 방해받지 않는 의사소통적 자유를 통한 의견형성 및 의지형성의 논증적 과정들은 인지적, 실천적 함의를 포괄하고, 따라서, 법과 의사소통 권력 모두를 산출합니다.


tempImageLiJq8H.heic


III. 의사소통 권력의 생산적 힘

하버마스에 따르면, 인지적으로, 적절한 절차를 통해 추론된 결과의 합리성은 정보, 추론, 관련된 주제, 그리고 공헌에 있어 자유로운 처리에 근거를 둡니다.

실천적으로, 담론적으로 산출된, 그리고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확신은 또한 동기적 힘을 발휘하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확신은 합리적 담론의 참여자들이 함축적으로 자신의 행위와 관련된 의무들을 수용한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버마스는 시민들의 의사소통적 자유가 이러한 확신을 기반으로 정당한 법을 산출하는데 동원될 때, 이 확신에 내재한 발화수반적 의무들은 행정 권력을 가진 이들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잠재력으로 모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버마스에게 (그리고 아렌트에게), 법은 애초부터 정당한 법을 산출하는데 필수적인 의사소통 권력과 내재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하버마스는 법이 (국가) 폭력과(Gewalt) 동일시된 권력과 (Macht), 즉 권력의 전략적 활용을 위해 법을 도구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의사소통 권력은 법을 통해 공동의 삶을 규제하고자 하는 여느 특정 공동체가 행위 기대의 규범적 규제라는 문제를 집합적 목표 설정이라는 문제와 분리시킬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 단락의 주요 내용을 위해, Ibid., 147-151 and 168-169을 참조해 주세요).


tempImagesKza3F.heic


IV. 행정 권력이란?

다른 한편으로, 하버마스는 행정 권력을 법을 매개로 한 “의사소통 권력의 변형” (a “transformation of communicative power," Ibid., 150)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행정 권력이 오직 “법률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within the framework of statutory authorisation," Ibid.)만 권한이 부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행정 권력은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없고, 오직 의사소통 권력의 변환으로부터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 맥락에서, 법은 행정 과정들을 조정하는 권력 코드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권력을 행정 권력으로 번역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역할을 합니다.

하버마스는 행정 권력이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시민들의 의사소통 권력을 통해 정당하게 제정된 법에 의해 조직되고 제도화되기 때문에, 이 권력은 폭력성을 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행정 권력이 민주적인 법의 틀 속에서 행사되는 한, 본질적으로 기술적이긴 해도, 억압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tempImagefEPxxn.heic


V. 행정 권력의 범주

하버마스의 틀 속에서, 입법과 사법에 의한 행정 권력의 사용은 오직 이들이 상응하는 담론들의 제도화에 필수적인 범주까지 허용 가능합니다.

행정 권력이 입법과 시행 과정을 확립하고 조직하기 위해 활용될 때, 이 권력은 민주주의를 위한 가능 조건들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행정부가 자신의 범주를 너머 법적 기획의 이행 너머로 향해 간다면, 즉 입법이나 사법 과정들에 개입한다면, 이 행정부는 이러한 과정들에 제약 조건들이 되고, 따라서 입법적, 사법적 담론에 내재한 의사소통적 전제들을 위반하며, “논증에 의해 인도되는 상호 이해과정” (the “argumentation-guided processes of reaching understanding,: Ibid., 173-174)을 교란시키게 됩니다.

결국, 하버마스에게, “행정 활동의 합리성은 주로 실용적 담론을 통해 보장” (the “rationality of administrative activity is secured mainly through pragmatic discourses,” Ibid., 186) 되는데, 이와 함께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법이 지배를 조직화하는 단순한 사실적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당화의 규범적 원천이어야 한다면, 행정 권력은 의사소통적으로 산출된 권력과 다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목표를 실현하는 행정 권력과 법을 산출하는 의사소통적 권력 간의 이러한 피드백 관계는 기능적 권력분립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적 법치국가는 정치적 권력을 단순히 같은 비중으로 분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합리화를 통해 권력에서 폭력성을 벗겨내는 과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 "To the extent that the law should normatively be a source of legitimation and not just a medium for the exercise of political authority, administrative power must remain bound to communicatively generated power. A functional separation of powers can serve as the link coupling the administrative power involved in goal attainment with the communicative power that generates law because the constitutional state has a twofold task: it must not only evenly divide and distribute political power but also strip such power to its violent substance by rationalising it." Ibid., 188.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제 하버마스가 염두에 두고 있는 입헌 국가의 이상을 쫓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버마스가 그리는 민주적 입헌 국가는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요?

> 다음 회차들을 통해 순차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keyword
이전 11화Ch 10. 우리의 법은 누구의 의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