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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0. 우리의 법은 누구의 의지인가?

법치와 민주주의의 내적 관계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 가능한 최대의 평등한 주관적 행위자유의 권리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본권

(2) 법적 동료들의 자유의지적 연합체 속에서 그 구성원의 지위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본권

(3) 권리의 소송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개인적 권리보호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직접 생겨나는 기본권

(4) 시민들의 정치적 자율성이 행사되고 정당한 법이 산출되는 의견형성과 의지형성 과정에 시민들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본권

(5) 생활조건 보장에 대한 기본권: (1)에서 (4)까지 나열된 시민적 권리를 균등한 기회를 갖고서 사용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한에서 사회적, 기술적, 생태학적으로 보장된다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22-123).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제시했던 다섯 가지 기본적인 권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 시민들이 서로를 법적 동료로서 인정하고, 민주적 공동체 안에서 상호 자율성을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 이 다섯 가지 기본권은 각각의 성격에 따라, Kevin Olson이 적절히 구분한 것처럼,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살펴보았습니다 - 처음 세 개의 범주들은 민주적 법률의 전반적인 구조를 윤곽화 하는 반면, 마지막 두 개의 범주들은 시민들이 이러한 법률들을 스스로 형식화하는데 필수적인 전제 조건들을 식별한다. 하버마스는 이렇게 재구성된 권리 체계와 함께 두 가지 함의를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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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보편적인 것으로써 권리 체계

첫째, 하버마스는 입법자들에게 주어진, 미리 결정된 자연법으로 더 이상 이해될 수 없는 권리 체계가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체계는 시민들이 실정법을 통해 공동의 삶을 조정하기 위해, 혹은 “실정법의 매체 속에서 자기 입법의 상호주관적 실천" (the “intersubjective practice of self-legislation in the medium of positive law,” Ibid., 129)에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조건들을 구성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따라서, 그는 권리 체계가 헌법 제정을 위한 구성 요소인 것은 분명해도, 권리 체계를 법적으로 구속력 있게 하는 헌법의 규범적 내용들은 역사적으로 변화할 수 있고, 개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버마스는 헌법이 생동감 있는 프로젝트이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헌법 해석을 통해, 그리고 모든 입법 차원에서 시민들의 공적 자율성 시행을 통해 지속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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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개인적 자유로 이해되어야 하는 공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권리

둘째, 하버마스는 사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권리와 마찬가지로, 의사소통 권리나 참여의 권리와 같은 공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권리가 개인적 자유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적 권리의 담지자로서, 법적 인격체의 지위는 법 코드에 의해 의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서의 의사소통이나 참여를 위한 이러한 권리들의 활용은 관여된 개개인의 재량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는 공적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권리들의 이 이해를 통해서 만이, 우리는 법 형식의 특수한 형태를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도덕과 달리, 법은 그 수신인들에게 상호 이해를 지향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시행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민주적 제도들의 생명력은 오직 법을 통해서만 제정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제도들은 자유로운 정치 문화 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는 이러한 제도들의 본성이 자유의 전통을 통해 쇄신되고, 자유로운 정치 사회의 구성 속에서 보존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서술은 Ibid., 129-131을 참조하세요).


결과적으로, 하버마스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권리 체계의 담론 이론적 독해가 이중적 차원을 포착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편으로, 법을 정당화하는 부담은 시민들의 사적 자질에서 법적으로 제도화된 논증적인 의견형성과 의지형성의 절차들로 넘어가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의사소통적 자유의 법제화는 법이 자신의 통제 너머에 있는 정당화의 외적 원천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지칭합니다.

이는 법의 정당성 근거가 단순히 법 내부의 체계나 위계에서 나오지 않고, 시민들의 상호주관적 의견교환과 공적 담론의 실천, 즉 법 외부의 의사소통적 조건에 의존함을 의미합니다.

즉, 법은 자율적인 시민들의 합리적 의견 형성과 의지 형성의 배양에 의존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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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법치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

권리 체계의 담론-이론적 독해, 그리고 이 체제의 법적 제도화에 관한 옹호와 함께, 하버마스는 법치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를 다시 재구성합니다.

법이 우리가 상호 간 인정해야 하는 권리 체계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법의 효과적인 이행은 사적 인격체의 주관적인 행위 자유와 시민의 의사소통적 자유를 포함한 권리 실행을 위해 요구됩니다.

이는 “정치적 자율성의 실행이 공동 의지의 담론적 형성을 함축하는 것이지, 여기서 발생한 법률의 이행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the “exercise of political autonomy implies the discursive formation of a common will, not the implementation of the laws issuing therefrom." Ibid., 150)라는 점을 시사하는데요.

따라서, 하버마스는 “법의 실행뿐만 아니라 법의 제정에도 구속력을 제공하는” (“to which the making as well as the enforcing of law owe their binding character”) 정치권력이 법제화 과정 속에서 “정치 질서의 정당성, 그리고 정치권력 행사의 정당화” (the “legitimacy of a political order and the legitimation of the exercise of political power." Ibid., 132) 관점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전 챕터들을 통해, 우리는 법이 자신의 완전한 규범적 의미를 정당성을 산출하는 입법 절차를 통해 얻게 된다는 하버마스의 주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만일 “법의 정당성이 결국 의사소통적 제도” (the “legitimacy of law ultimately depends on a communicative arrangement” Ibid., 104)에, 좀 더 정확하게는, “의사소통 행위의 사회 통합력과의 내적 연결” (an “internal connection with the socially integrating force of communicative action” Ibid., 84)에 있어 법의 보존성에 의존적이라면, 정당한 법의 기원에 필수적인 의사소통 형식들의 법적 제도화는 권리 체계의 법적 제도화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하버마스는 권리 체계와 법에 관한 자신의 담론-이론적 독해를 법치 국가 이념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또 다른 사실성과 타당성 간의 긴장을 식별합니다.

그가 보기에, 법의 실효성 (혹은 제재와 관련한 법적 타당성)을 위해, 첫째, 집합적으로 구속력 있는 결정을 집행할 수 있는 중앙 집권적 정치권력, 혹은 국가는 정당하게 제정된 법에 의해 권위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국가 기구의 행정 권력은 시민들의 정치적 자율성 행사를 통해 정당성을 얻게 된 법에서 기원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법을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해야만 하는 정치권력은 본질적으로 사실성과 타당성 간의 긴장을 품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의 기능을 수행할 때, 국가는 법을 시행하고, 법적 공동체를 안정화하며, 집합적인 정치적 의지 형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과 함께, 제재 권력, 조직 권력, 그리고 실행 권력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하버마스에게, 정치권력에 대한 권리 체계의 의존성은 단순히 기능적으로 필수적인 보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관적 권리 속에 포함된 객관적인 법적 함의들로써, 정치권력은 (혹은 국가는) 법의 형식 속에 전제되어 있고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정치권력은 오직 법 코드를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고, 법적 관점에서 기본권의 형식 속에서 구성된다” (“political power can develop only through a legal code, and it is, in the legal sense of word, constituted in the form of basic rights.” Ibid., 134)고 생각합니다.

이는 법과 정치권력 사이에 내적 연결이 존재한다는 점이 뒤따르게 되는데요.


이 관계를 염두에 두고, 하버마스는 법적으로 조직된 정치 질서에 관한 발전을 관찰하고, 입헌 국가의 원리들을 정치적 자율성에 관한 자신의 담론-이론적 틀 속에서 재구성합니다.

이 재구성은 하버마스가 염두에 두고 있는 입헌 국가의 이상과 연결되는데요.

그렇다면, 하버마스의 입헌 국가 개념은 무엇일까요?


> 다음 회차들을 통해 순차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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